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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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책은 다 읽어보고 싶은 내게 또 다시 다가온 반가운 책 <하기 힘든 말>. 이번에는 문학동네의 또 다른 브랜드인 출판사 애니북스에서 책이 나와서 이봄에서 나오던 그동안의 에세이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책이 다가오기도 했다. 이 책 <하기 힘든 말>은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그리 무거운 뜻이 아니다. 처음 제목만을 접했을 땐 무슨 하기 힘든 말이 그렇게 있어서 책 제목으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뚜껑을 열고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부류의 내용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에 대체 뭘 생각한건데?ㅋ)

 

작가 마스다 미리가 잘하는 에세이 + 만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책이라 읽기도 편했고, 잘 읽혀서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어냈으며, '폭풍공감'은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겠구나..' 정도의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책이다. 그 전까지는 보편적인 느낌의 이야기를 했던 내용들이 주여서 공감과 폭풍공감을 했었는데, 이 책은 아무래도 나와 세대차이가 좀 있어서인지 일본어의 느낌을 잘 알아야 하는 책이어서인지 몰라도 예전만큼의 폭풍 공감은 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면 아쉬웠던 점. 일본에서 찬물을 일컫는 궁중말투 '오히야'라든가 남자친구를 뜻하는 단어 '카레'라든가 백화점을 뜻하는 '데파토'라든가. 방금 예로 든 단어들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어'와 관련된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어 고유의 가타카나식 영어발음에 대한 이야기, 일본 특유의 발음 혹은 단어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고, 일본어가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행간을 파악하는데 있어 불편한 점이 좀 있을 듯 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번역이 재미있게 잘 되어 있어서 공감할 부분을 찾는 것 또한 어렵지는 않다. 

 

책을 읽다 발견했는데, 책의 제목은 아마 이 부분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싶다.

머릿속에서 줄곧 어렴풋이 떠도는 말이 있어서,

왜 이러지? 왜 이럴까?

라며 그냥 떠돌게 놔뒀다. 그런데 슬며시 끌어다 찬찬히 살펴본 바 그것은 '하기 힘든 말'이란 결론이 나왔다. (p 156)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단어' 혹은 '문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 본인이 자주 쓰지 않는 말에 대한 의문을 담고 있고, 신세대 용어에 대한 신기함, 그리고 어색한 문장에 대한 고찰 또한 담고 있다. 별 것 아닌 단어에 고심하는 작가의 모습이 뭔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데, 만화가라는 직업과 에세이스트라는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녀가 대하는 '글'이라는 것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은 종류일테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화 대사를 적고 에세이를 쓰는 그녀가 말하다 툭하고 나온 단어에 대해 고심하고 사전도 찾아보고 유의어도 생각해보면서 그 단어의 쓰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모습이 귀엽게도 느껴졌달까. 일종의 직업병 비슷한 것이 그녀에게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서도 와 닿는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다. 

 

'썰렁하다'도, '달다'도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아프다'는 말은 '무섭다'로 연결된다. 그런 섬뜩한 말은 정말로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만 입에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섣불리 쓰고 싶지 않다. (p 91)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것은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힘내" "어떻게든 잘 풀릴거야" "기운 내"라는 단어는 상대와 별로 가깝지 않아도 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다. "남의 일이라고 적당히 지껄이긴." 생각없이 쓰면 상대가 꽁하게 받아들일 위험도 있다. 고로 나는 남을 격려하고 싶지 않다. 되도록 격려하지 않으려 한다. (p 124)

 

나도 모르는 새에 '백모'니 '조카'니 '사촌'이니 '육촌'이니 하는 말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의 '딸'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p 143)

 

작가가 조금은 옛날사람 스럽다고 느끼기도 했었던 에피소드1. 

"저어.. 볼연지는 어디 있나요?"

화장품을 사러 갔다 '치크'가 떠오르지 않아 옛날 말을 쓰고 말았다. (p 139)

화장품 가게에서 치크 대신 볼여지를 찾았다던 한 컷짜리 만화였다. 볼연지가 언제적 볼연지던가. 우리 엄마도 볼연지까지는 쓰지 않는다만.. 아무래도 '볼터치'같은 느낌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도 치크나 블러셔 대신에 볼터치란 말을 잘 쓰니 말이다. "엄마 볼터치 진하니?" 같은 뉘앙스로- 그럼 나도 대답한다. "아니. 오늘 볼터치 적당해." 가끔은 치크보다 볼터치가 더 정감이 가기도 하니 여러 말을 쓴다고 나쁠 건 없지 않나,란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작가가 나와 비슷하다 느꼈던 에피소드2.

레어와 미디엄, 웰던은 어렵다!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서 고기 굽기를 주문할때 되게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늘 같이 간 지인에게 주문을 맡기곤 한다. 뭐 내가 원하는 느낌은 아니더라도 '나쁘지는' 않으면 된거고, 이런걸 잘 모른다고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주문할 수 없는 건 '레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는 손 대고 싶지 않다. 그리고 글에 나타난 작가 마음이 꼭 내 마음이다.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고기에 핏물이 배어 있는 상태는 안 된다. 완전히, 제대로 익혀주길 바라는 유약한 타입이다. 레어로는 먹지도 못할 뿐더러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털끝만큼도 안 든다. 이렇듯 고기 본연의 맛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인간이, "웰던으로 부탁해요."라고 점잔 빼며 말해도 될까? 상관이야 없겠지만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그래서 늘 가능한 한 주위 사람들에게 안 들리도록 모기 같은 목소리로 부탁한다. 저어, 잘 익혀주세요... (p 117)

하지만 나는 다음부턴 당당히 이야기 하려 한다. 빠짝 익힌 소고기가 좋으면 웰던으로 당당하게. 이건 부끄러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에 대한 문제니까!


 

어떤 말이 하기 힘든 건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 혹은 살아온 환경에 따로 좌지우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이라는 이유를 대서라도 쓰고 싶지 않은 말이 있는가 하면 생각없이 나오는 말들도 꽤 많을테니 말이다. 책을 보니 조금은 생각이 복잡해진다. 말 속에서 뜻을 제대로 찾아내야 하는 때는 언제인지 그냥 흘려 넘겨야 할 때는 언제인지. 말이 가진 가벼움과 그에 반해 말이 가진 무거움에 괜스레 생각이 많아졌다고나 할까. 앞으로는 이 책 덕분에 나도 생각을 좀 해 보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 이 사람은 이런 말을 썼네. 나는 어떤 말을 쓴 걸까 혹은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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