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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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처럼 '공주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공주'이야기가 좋다. (사실 나는 커서 공주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저 상상 속에서 즐거워 했을 뿐.) '00공주'라 이름붙여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늘 착하고 아름답고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며, 언제나 나중에는 왕자를 만나 행복해지는 결말에 도달하곤 하는 뻔한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결론을 알고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세상에 몇 개나 될까. 내게는 유일하게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계속 봐도 지겹지 않은 류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공주계의 고전들은 내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엄마들이 '딸'을 낳으면 가장 먼저 사주는 동화책이 아닐까 싶다. 공주처럼 예쁘게 자라라는 뜻도 담겨 있겠지만 자신들도 이 동화를 보면서 컸기 때문이기도 하고, 왕자처럼 좋은 남자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 담았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공주들은 1930년대 <백설공주>를 영화화 한 것을 시작으로 디즈니에서 새롭게 재창조되어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계의 고전으로써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디즈니는 과거의 동화들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넘어서 캐릭터에게 입체적인 성격과 더 험난한 여정을 주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림형제의 작품 중엔 <라푼젤>이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일텐데, 늘 탑 속에 갇혀 있던 원작의 라푼젤과는 달리 디즈니의 라푼젤은 도둑을 상대하기도 하는 당찬 캐릭터로 등장한다. 디즈니의 동화 재창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과연 원작이 없이도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이 책 <그림 형제 동화전집>은 그림 형제가 독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사실 나는 그동안 그림 형제가 직접 창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수집'한 것이라고 하니 이야기들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210편에 달하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말이다.


원작과 동화는 많이 차이가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잔혹동화라고 해서 야하고 잔인한 장면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책들도 출간되고 하지 않았었나. 210편이나 되는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혔다. 동화책이다 보니 어려울 것도 생각할 것도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내용들이 간결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채 한 페이지가 안 되는 이야기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책은 얇았다. 210편의 동화책이 수록된 책 치고는 양호한 두께였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책 속지의 두께를 느끼는 순간 210편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아주 얇은, 예전에 국어사전 혹은 영어사전에서나 느껴볼 법한 감촉의 종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책 속에서,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내가 모르는 이야기 두 가지로 나뉘었다. 사실 이들이 옮긴 동화가 200편이 넘는다는 것도 이 책을 받아들고서야 처음 안 사실이었으니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고 해야 맞는 말일테지만 말이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권선징악이 뚜렷하다. 악인이 벌이는 행동은 끔찍한 수준이며, 사람을 잡아 먹는다거나 죽인다거나 하는 일도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들이 벌인 짓만큼 처벌도 끔찍하다.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들의 특성상 많이 살이 붙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상상하고자 하면 정말 끔찍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끓는 기름에 산 사람을 넣는다거나 화형을 한다거나 창밖으로 사람을 내던진다거나. 하지만 책을 읽으면 그 끔찍한 부분들을 꽤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는데, 그건 그런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화자의 어조가 담담하기 그지 없어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앞에서 동화를 이야기하던 그 어조 그대로, 자세히 묘사는 하지 않고 그냥 '그 악인은 이러이러한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정도로 끝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차 이런 상황들이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끔찍하단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섯 마리 백조>와 <열 두 왕자>가 그렇다. 오빠들에게는 막내 여동생이 하나 있고, 오빠들이 걸린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몇 년동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것도 있고 말이다. 구전되는 이야기들이 비슷한 얼개를 갖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아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생략된 부분이 여럿 있었고, 생각보다 백설공주는 많이 멍청했으며, 마지막에는 발목이 잘릴때까지 춤만 춰야 하는 <빨간 구두>의 이야기와 비슷하게 끝맺었다. (물론 죽을때까지 춤을 춰야 했던 건 왕비였다.) 끔찍함 속에서도 알고 있는 것과 새로 알게 된 것들을 찾아보면서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이렇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동화책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읽은것도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그리고 옛날 동화들을 읽고 있자니 어린 나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헛웃음이 나오는 허술한 전개들에도 마음이 두근거렸던 그 어린시절의 순수했던 나를 다시 회상해 본다. 그림 형제의 동화책은,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신비한 마법상자이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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