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내는 용기 - 아들러의 내 인생 애프터서비스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엑스오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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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
작년을 뜨겁게 달구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tvN 드라마 <미생>, 그 속의 짠한 우리네 아버지 '오차장'이 한 말 중 하나다.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했으며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말. 왜인지 어느 무협지나 패싸움 영화에 등장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인 것도 같다. 사실 나는 드라마 <미생>을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 않아 동질감을 느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굳이 보지 않아도 인기가 많은 드라마라서 말이다. 하지만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오차장의 말은 <미생>의 어록이라면서 여기저기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오늘 하루만 버티자, 지금 이 순간만 버티자, 이렇게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듯 하다.


<미움받을 용기>의 공동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펴낸 <버텨내는 용기>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근간으로 한 책이다. 프로이트나 융보다는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아들러의 심리학 책들이 많이 등장했다. 일본에서 먼저 붐이 일었던 아들러의 심리학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붐이 일더니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과 관련된 일본 저자의 여러가지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개인적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아는 바를 잠깐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자면, 그가 창안한 '개인심리학'이라는 이론은 '나를 먼저 똑바로 직시한 후, 타인과 함께 세상에 나아가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버텨내는 용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속의 내용들은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대한 대중적인 풀이서라고 할 수 있다. 원제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는 아들러 심리학>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삶의 꿋꿋이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지침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저자는 열등감과 우월감, 집착, 공격욕구, 애정욕구, 신경증,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 전반에 관한 이야기와 아들러의 심리학을 잘 접목시켰다. 아들러가 예전에 했던 실험들이나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와 덧붙여서 읽는 이에게 물음을 던짐으로써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라고는 하지만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이론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하고 독자를 설득한다.


책 속에서 저자가 이야기 한 아들러의 심리학 이야기 중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는 이거다. "세상 모든 이야기는 다르게 쓰인다"라는 이야기. 사람은 경험조차 자신에게 맞게 조작한다고 한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우리 모두가 똑같아지지 않는 것은 각각 저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32쪽) 왜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의 가사에도 나오지 않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말이다. 같은 공간,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각자의 생각대로 그 이야기는 기억된다. 그 생각이라는 것을 아들러는 '목적'으로 바라봤고, 이것이 아들러의 목적론의 핵심 이야기다. 아들러는 사람이 행동을 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함인데 그때 이루어진 행동들은 모두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행동이라고 바라봤다. 여타의 핑계나 변명 같은 것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늘어놓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들러는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거는 이미 지난 경험이므로,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한 경험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것을 선택해서 의미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트라우마도 없어질 수 있다는 이론까지 나아간다.


물론 이론이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의미부여를 통해 과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었다. 과거 안 좋았던 기억에서 그 앞 뒤로 일어났던 상황들을 역추적해 좋은 기억을 선택해서 기억한다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흥미로웠다. 기억을 통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말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 아들러는 자기 자신을 직시하기를 원한다. 무의식적으로 행동한 것이라 해도 그 행동의 처음을 잘 살펴보면 그렇게 행동한 목적이 반드시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어 '뭐 이런 것까지'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내 생각과 같은 내용이 책 속에 담겨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어느 날 아들러가 강연하는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한 말은 하나같이 당연한 말 아닌가요?"
그러자 아들러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연한 말의 어느 부분이 좋지 않다는 거죠?"


솔직히 책에 적힌 모든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흥미롭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의 어느 것들은 내게 공감도 일으켰다. 어느 하나 나쁘지 않은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대해서는 결론을 확실하게 내리지는 못했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가 의도한 이야기를 어떻게 더 풀어내야 하는지도 감은 잘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네 탓이 아니다'라는 어중간한 말을 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들과 함께 과거는 너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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