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 - 사고의 틀을 바꾸는 유쾌한 지적 훈련 ㅣ 인문 사고
최원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2월
평점 :
재미있다. 알고 있는 내용에 관한 색다른 물음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은 피식 웃음을 전해준다.
깔끔하다. 확실히 기자 출신 저자라서 그런지 글에 군더더기가 없다.
늘어난다. 남들보다 내가 좀 더 알고 있다는 우월감까지 갖게 된다.
이 모든 게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이하 한 뼘 인문학)의 책을 읽고 난 짧은 감상이다.
<한 뼘 인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상식들의 오류들에 대한 이야기 책이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책의 시작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정말 상식일까? 혹시라도 천동설처럼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상식 중에 틀린 것은 없을까?" 이 물음에서 시작된 이 책은 상식의 오류들을 비롯해서 뜻 밖에 만들어진 역사들과 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 담은 책이다. 상식을 깨는 상식책을 만들고 싶었다던 저자의 바람이 담긴 책은, 생각보다 많은 상식을 깨 부수었고, 그로 인해서 소소한 재미와 생각의 전환을 내게 전달해주었다.
일단, 1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에 대한 오류들을 바로 잡는다.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은 원래 '오페라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좌석이 아니다'라는 새로운 사실, 한글 띄어쓰기는 서양인 선교사가 조선말을 가르치기 쉽게 하기 위해 임의로 구분해서 쓴 게 최초였다거나,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닌 최전방을 이야기 하는 단어였다거나, 신문고는 일반 백성들이 치기에는 너무 복잡한 과정과 글을 알아야 하는 핸디캡 때문에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거나, 에디슨이 사실은 흑색선전을 해대던 포용력 넓은 이가 아니었다거나, 사약을 마신 후 한 시간 이상 살아있던 이가 있었다는 이야기 등- 알고보면 사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들에 대한 속 이야기를 해준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6장 또한 상식에 관한 이야기로, 간디와 마틴 루터킹이 사실은 색정광이었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으며 (내가 이들을 신봉한 것은 아니지만 이면을 알고보니 그들의 업적까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19세기의 발레리나들은 부유층과의 매춘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생활을 했으며,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부의 개입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닌 부의 균등한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 헬렌켈러와 아인슈타인은 사회주의자였으며, 공정무역이 사실은 그냥 무역보다 아주 조금 더 그들에게 이득을 줄 뿐이라는 사실 등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이야기들에서 나는 꽤 허탈해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조금은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상식들에 관한 것들도 나온다. 커피 이름 '카푸치노'는 사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입는 옷에서 유래한 단어이며, 조커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서 모티브를 따 온 캐릭터이고, 징크스는 사실 새 이름이며, 방사성 물질인 라듐이 한 때는 만병통치약과 뷰티크림에 사용됐다는 이야기 등등은 흥미로우면서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상식들이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조금은 혼란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증거'가 충분히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 상식이 틀렸다고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라서다.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린지에 대한 고민은 차후에 하게 되더라도 상식이 상식이 아닌 것에 대해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오는 말에 적힌 작가의 말을 읽고 그가 이런 글을 쓴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을 보는 색다른 눈을 가지는 것도 좋을 테지만, 파편적인 하나의 이야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흔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파편들만을 좇다가 큰 그림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조각 조각 파편이다. 그 파편들 속에는 사람냄새 나는 상식들이 숨어 있다. 다만, 이 상식들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조금 위배된다고 해서 여기에 언급된 인물들이 행했던 모든 일들이 깡그리 무시되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란 얘기다.
작가가 걱정했던 대로 이 책을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넓은 눈을 갖게 해 주는 데 한 뼘 정도, 딱 그정도의 기여를 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원래 고기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 아니던가.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이야기도 한 번 거꾸로 뒤집어 보고 바로 보면서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