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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책을 처음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부모와 다른 아이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서였다. 확실히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지. 맞아, 그래서 자신의 꿈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욕망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기도 하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아마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이 책은 그런 류의 내용이 아니다. 훨씬 더 무겁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 그들이 힘들고 어렵게 선택한 자리를 꿋꿋이 지켜나가는 이야기는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세상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는 책 한권으로 엮어도 모자랄만큼 굉장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세상에서 '평범'하다거나 '일반적'이라는 범주에 넣지 못하고 심하게는 배척까지 당하는 조금은 다른 이들의 부모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평범'이나 '일반적'이라는 단어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닌 세상에서 정해놓은 일률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인터뷰했던 한 어머니는 <사람들이 늘 <<하느님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주십니다>>같은 조언을 쉽게 던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난 아이들은 선물로 운명 지워진 존재가 아니다. 그 아이들이 선물인 이유는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동안 거의 기술되거나 그려진 적 없는 바로 그런 선택들을 주목한다. 부모들은 어떻게 그러한 결단을 내리고, 그들의 결단은 자녀와 그들이 속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12쪽) 서문에서 이 글을 보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요즘은 뭐든 쉽게 버리고 쉽게 놓아버리는 시대가 아니던가. 이 책은 10여년 간 저자가 인터뷰하고 모은 자료들을 바탕을 쓴 책이기 때문에 아주 최근과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0여년 전에도 현재만큼이나 많은 것이 쉬웠던 시대라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것이 쉬운 시대에 청각에 장애가 있거나, 자폐를 가졌거나, 다운증후군이나 소인증을 가지고 있다거나, 정신분열증을 갖게 되었다거나 하는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아이의 부모라는 책임감 만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여러 부모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어떤 것이 진정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해 허둥대고, 잘못된 선택을 해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마음을 졸인다. 무리하게 세상의 틀 속에 집어 넣으려 몰아붙여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이 선택했음에도 남들 앞에 선뜻 드러내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일단 부모도 사람이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많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좌절하고 힘든 시간들을 아이들과 함께 걸어나가길 희망했다. 아이가 아파하면 곁에서 아파하면서 끝까지 함께 있기를 말이다. 아이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남들과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알려주고 또 알려주면서 보살펴주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차라리 어떤 상황이 더 낫겠다'라는 이야기는 내뱉을 수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온 힘을 다해 버텨내는 이들에겐 더 쉬운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장은 저자 본인의 이야기다. '아들'이라는 제목은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1장의 1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페이지를 할애해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이 있다. 뒷쪽의 여러 제목들과는 다르게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다른 것이 아닌, '성소수자들'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부모들에게도 같은 시각을 적용했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니 저자가 생각한 대로 성소수자인 아이들의 부모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는 다른 입장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입장이다.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도, 자신의 아이를 변화시키거나 이해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상황도 말이다. 저자는 이들을 한데 묶어 '우리의 몸집도 크다'라는 것을 어필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수수께끼는 소개된 대부분의 가족들이 피할 수 있었다면 절대로 마다하지 않았을 경험에 대해 결국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94쪽) 라는 문장을 1장의 마지막쯤에 남겼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부모들이 '결국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들이다.
세세한 예시들이 줄을 잇는다. 저자와 인터뷰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의 세세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로 인해 부모와 아이가 어떤 상황에 놓였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독자에게 충분히 주지한다. 그래서 책이 방대해진 감이 없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부모들의 행동과 관련된 또 다른 사례들을 집어 넣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하면서 조금이라도 답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내용은 309쪽부터 나오는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Holland)라는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다. 무려 30년 전인 1987년도에 에밀리 펄 킹슬리가 이야기 한 내용은, 장애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부모들의 입장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는 휴가를 이용해서 이탈리아로 떠나는 멋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쯤이라고 한다면 출산은 여행지로의 도착으로 치환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이탈리아로 여행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것에 비해 착륙했을 때 승무원들은 이야기 한다.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하지만 단지 장소만 다를 뿐이다. 네덜란드에 질병이나 기아나 테러위협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럴 때는 새로운 여행안내서를 구입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적응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물론 이탈리아에 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특별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가게 되면 그곳에서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냈는지 하나같이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도 원래는 그곳에 가려고 했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게 바로 그거다" 라고 이야기 한다고-
이 이야기는 부모들의 마음이 정확하게 비유되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지금 막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또한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잃지 않게 도와주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들도 꽤 마음에 깊게 다가왔고, 대체로의 가정들은 정상적인 부모 아래서 장애와 어떤식으로 관련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이므로 부모들도 당황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 어려운 이야기는 전혀 없기에 읽어 나가는데에 무리가 없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나가게 되는 저자의 필력도 있다. 두께를 보고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면 데려다가 권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어가면 책의 두께따위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다리가 저리긴 하지만) 부모의 위대함은 감히 내가 상상하거나 따라갈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아주 클리셰적인 이야기 또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마 내 주변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케이스라면 그렇게까지 공감은 못했을 텐데, 이 책 속의 부모들과 같은 입장의 '엄마'인 여자를 알고 있다. 내가 언니라 부르는 그녀. 그래서 좀 더 그녀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새삼 그녀가 위대해보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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