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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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네임벨류라는 것이 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그 작품은 볼 만하다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네임벨류인데, 작가의 이름을 잘 외워두지 않는 내 성격상 네임벨류 작가에 포함되어 있는 이는 몇 안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김중혁 작가다. -김중혁 작가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내 서평에 등장하는 팟캐스트 '빨간 책방'이라 안 할 때도 됐건만 내가 김중혁 작가를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프로그램이라 또다시 언급하고 넘어간다- 김중혁작가는 빨간 책방 덕분에 알게 된 작가로, (빨간 책방의 흑임자를 맡고 계신다ㅋㅋ) 사실 그 전에 작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나 역시나 작가 이름을 기억 못 했을 뿐이었더라. 그러다 빨간 책방의 김중혁 작가가 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나온 김중혁 작가의 글은 다 읽어본 것 같다. 이렇게 서평단을 통해서든 직접 빌려서든 어떻게서든지간에 말이다.    

 

김중혁 작가의 산문은 그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들린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옆에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산문은 즐겁고 번뜩이는 소설 속 상황들이나 문장들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중혁 특유의 괄호 속 말장난 같은 것도 좋고 말이다. 무튼, 김중혁이 낸 산문집이라는 말에 득달같이 신청한 책이 이 책 <메이드 인 공장>이다. 책이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진짜 공장 견학을 다녀와서 쓴 글들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소설가와 공장이라는 조합이 어찌보면 잘 어울리는 듯도 해 보여서 말이다. 물론 내 취향은 공장이 아니지만 말이다. 공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갖는 선입견이 있다. 영화 <모던 타임즈>의 그런 공장, 아니면 개성공단의 그런 공장, 즉 익히 봐온 공장이란 공간은 인간보다는 기계가 우선시되는 그런 곳이라는 인식 말이다.


이 책을 받아들면서도 갸웃갸웃 했었다. 작가는 왜 굳이 공장에 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일까. ㅡ작가가 공장에 가 보고 싶어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프롤로그에 등장한다. 작가는 일단은 자신이 사용하는 것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궁금하고, 어렸을 적 느꼈던 '공장 공포증' 일명 "너 공부 안 하면 공장 보낸다"의 부모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지레 겁 먹었던 어린날도 이미 지났으며, 20대 초반 기자시절 방문한 공장의 '생산성'에 대해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작가가 느낀 "나는 무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에 대한 회의도 모두 떨쳐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궁금해서!랄까. 과연 김중혁다운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공장에 대한 작가의 감상보다는 그 뒤에 붙어 있는 talk에 더 눈길이 갔다.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공간이자, 방문한 공장과 연관되어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읽기 시작했는데 '제지공장'편에서의 talk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수첩과 노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제부턴가 365일 다이어리는 잘 쓰지 않게 됐다. 적을 게 없다. 새롭게 발견하는 일상의 기쁨도 줄어들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상도 평이하다. 수첩 속 빈 공간들을 보고 있으면 삶이 쓸쓸해진 것 같아 마음이 허할 때도 있다." (32p) 라고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나와 생각이 많이 비슷해서 폭풍 고개 끄덕임을 시전하고 있는 나를 발견, 역시 김중혁작가의 산문은 폭풍 공감력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talk들을 주의깊게 읽기 시작했으나, 책에는 talk과 함께 작가가 공장을 견학하면서 사물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그리고 적어넣는 '사물의 뒷면'이 담겨 있었다. talk과는 다른 매력으로 마치 박광수의 에세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


갑티슈ㅡ갑티슈를 보며 시간을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닥치지 않은 가지런하게 쌓여 있는 시간들. 한 번 뽑히면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46p)

안경ㅡ 난시 교정용 안경을 쓰고 있다. 안경에 작은 얼룩만 있어도 눈앞이 온통 흐려진다. 티끌이 태산을 가린다. 가까이 있는 것은, 그래서, 생각보다 큰 것이다. (112p)

온도계ㅡ 온도를 알고 나면 이상하게 더 더워지거나 더 추워진다. 앎이 몸을 속이는 것 같다. (216p)

바둑판ㅡ "만일 인생에 후회가 없다면 사는 게 얼마나 지루할까요?" 왕가위의 영화 <일대종사>의 대사다. 이런 대사가 뒤를 잇는다. "인생은 이미 둔 바둑알처럼 후회가 없는 거예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후회하기 위해 새로운 바둑판 위의 빈 곳을 노려본다. (246p)     


작가가 다녀온 공장들 중에는 재미있겠다 생각한 공장이 많이 등장한다. 그곳들은 나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공장일지도 모르겠다. 라면공장, 맥주공장, 간장공장. 특히나 간장공장은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예의 그 간장공장이라서- '간장 공장 공장장'님의 레전드 일화는 그 공장장님의 유머를 알 수 있게 해 줬다. (궁금하면 찾아 읽어보길) 공장 목록들을 쭉 살펴보면 나도 관심있는 부분들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근데 그곳의 작업과정을 모두 보고 나면 결국 작가가 프롤로그에 밝혔듯 '사람'이 보인다. 아이러니컬하다. 공장, 말 그대로 기계들이 가득한 곳이고 점점 기계들이 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도 사람이 있고, 결국엔 모든 것이 사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말이다. 밖에서 보는 공장이 안에서 보는 공장과 다른 이유는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간장 공장의 벽이 기억에 남는다. 공장의 벽은 대체로 회색인 경우가 많은데, 이 공장의 회사 대표와 경영진들이 공장 전체를 작품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는 그 벽. '사람의 마음을 위해 낭비하는 공장이 마음에 든다''무엇보다 식품을 만드는 공장이라서 더 그렇다' (72p) 고 작가는 퍽이나 마음에 들어했는데 나 역시도다. 사람을 기계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서 생각해주는 마음이 담긴 그 조그마한 것에 직원들은 벽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말랑해진다'고 말했단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의 간장은 맛있게 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렇게나 두서없는 서평은 통통튀는 김중혁 작가의 글공장의 표어 하나로 마무리한다. 늘 서평에 대해 질질질 끌고 다니는 내게도 필요한 표어라서.

"멍하니, 바라보자, 오랫동안, 바라보고, 끈기있게, 바라보고, 오랫동안 생각하자, 모든 게 끝났으면 빠른 시간에 쓰자"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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