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사실에 근거하면서 글을 쓴다 해도 어찌됐든 그 시대의 정확한
고증과 재현은 남아있는 사료로는 힘들다. 다큐멘터리조차 현실의 상상력이 들어가야 하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러니 영화나 소설이란 장르를
갖고선 그 인물이 겪어온 삶을 똑같이 만들어 낸다는 건 어불성설- 그래서 일단 <명량>이라는 영화와 소설은 'Faction'임을
인지해야 한다. 사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사료들과 취재를 사용하되, 극의 쫀득함을 위해서 인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
어느정도는 만들어졌음을 인정해야 하는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순신의 리더쉽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끓고 있다. 영화가 1700만을 넘어섰다는 것만 봐도 사람들이 그에게 갖고 있는 마음은 단순함을 뛰어 넘게도
보인다. 이순신이라는 장군이 가진 백성을 위하는 마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신의, 왜구에 맞서 싸운 용기까지.
이순신이라면 의당 따라오는,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영화를 계기로 각성했다고 해야할 것 같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지만 그 허구조차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만큼 이순신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들은 보는 이의 입장에선 감동스럽다.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겠지만, 글을 읽다보면 내가 백성의 일부분이 된 것 양 일본의 뻔뻔함에 어이가 없고 백성들의 용기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의 서평을 신청했을 때는 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영화 극본을 소설로 옮겼을 때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궁금증을 좀 해결해보려고 했다. 소설이 원작인 것이 아닌, 영화 극본이 원작으로
소설로 출간됐기 때문이다. (이때는 영화가 돌풍이기는 했으나 이정도의 돌풍은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 있었었다.) 영화가 소설로
출간된 경우를 찾아보면 많이 있겠지만 내가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이번 기회에 풀어보려고 했지만, 내가 아직 <명량>을 보지 못했으므로
아쉽게도 비교는 할 수 없게 됐다. 영화가 너무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 역대 최대 관객 스코어를 매일 갈아치우게 되자, 왜인지 나는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돼서다. 뭐 그건 둘째 이유고 실제로 보러 갈 기회가 없었다. 시간을 빼서 시사회들은 보러 간 적이 있지만, 8월에는 시간을 빼서 영화관에
가야 할 만큼 일들이 많았다. 시사회가 아니고선 영화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추석 지나면 영화를 내릴 것 같은데,
소설에서 본 전투씬을 큰 화면으로 영화관에서 볼 수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영화를 만든 자본과 영화를 배급하는 곳이 같은 곳이어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개봉관을 줬기 때문에 이만큼의 흥행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영화가 너무 잘 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테다.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일단 소설에서는 "이 소설은 일본군과 조선의 이야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최대한 전투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명량대첩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으므로 모든 포커스가 후반부에 있는 전투를 위한 포석들인 것이다.
일본이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에 보낸 정유재란의 장수들의 권력싸움이라든지, 조선 내 선조의 눈치를 보는 사대부들의 이야기라든지, 그들을 돕고
있는 허구의 일본군 첩자와 탐망꾼과 수군을 돕는 백성들까지. 모든 이야기는 새로운 전투가 펼쳐지기 전의 각자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대망의 전투씬에서는, 글을 읽어나가면서 영화는 이랬겠구나..정도로 꽤 급박한 상황들로 하여금 전투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영상보다야 다가오는 것은 적겠지만, 전투씬 만큼은 포가 날아다니고 배가 불타는 걸 영상으로 보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이순신 장군의 휘하 부하들조차 두려워할 때 대장선이 홀로 적진에 진격하는 모습은 사실이지만 왜인지 허구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말이 안됐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말이 안될만큼 모든 것이 열세한 채로 시작된 전투였고, 전투가 시작되고 끝날때까지 이길
수 없음이라는 전제를 두고 진행된 전투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는 천행이 따랐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순신을 그렸다.
"울돌목의 회오리를 이용하실 생각을
어찌 하셨습니까?"
"천행이었다."
"그렇다면... 회오리가 아니었다면
아주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랬지. 또 그 급박한 순간에
백성들이 날 구해주지 않았으면 필시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조선 수군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을 두고 천행이라 하신
겁니까? 아니면 회오리가 천행이었다는 말씀입니까?"
"네 생각엔 무엇이 더
천행이었겠느냐?"
책을 덮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천행이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줬던 탓이다. 이 또한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는 없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감독의 상상력인지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조차 어려울만큼 하나로 뒤섞인 이야기에서, 아마도 우리는 실존했을 법한
이순신을 만나게 됐다. 그게 사실은 한낱 팩션 속 주인공 일지라도 이순신은 언제까지나 '사실'로
다가온다. 영화로 본다면 스토리가 끊기고 편집도 뭉툭해서 보기 힘들었다는
의견들도 꽤 있었는데, 아무래도 책이다 보니 그런 부분은 전해 괘념치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기에 오히려 책이 많은 부분을 더 보여주는 듯도 하다.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거란 생각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봤던 한 장면도
책에서는 꽤 깊이 다가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술술 읽히는 소설책은 아니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부분은 잘 읽히지가 않아 꽤 애를 먹었다. 하지만 탄력이 붙고 후반 전투씬에 가면 그때부터는 잘 읽을 수
있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말 것. 아마 나는 영화를 따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