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 - H.O.T 이후 아이돌 팬덤의 ABC 이슈북 8
이민희 지음 / 알마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팬덤과 팬질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팬덤인지 빠순인지 그게 뭔 차이냐며 별 생각 안할테지만, 가수든 배우든 뮤지컬배우든 그 누구의 팬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신경쓰일 단어다, "빠순이"라는 단어. 절대 좋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었다고 들은 이 단어는 어느순간부터 팬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돼 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팬을 비하하며 뭉뚱그리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그런 단어가 제목에 등장한다. 제목만 보면 딱 오해하기 쉬운 <팬덤이거나 빠순이거나>.

맨처음, 작가가 글 쓴 의도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면서 '팬덤의 본질에 다가서려했다'던 작가의 말이 궁금함을 돋웠다. 게다가 덜렁 네개의 차례는 날 더 궁금하게 했다. 그러나 책을 받아 들었을 땐, 코웃음을 쳤던 게 사실이다. 이 얇은 책에서 뭘 어떻게 풀어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남들은 간단하게 치부해 버리는 팬들의 세계에도 일정한 룰이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꽤 복잡할텐데 여기 어떻게 다 들어간다는거지?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팬덤에 속해있지 않고서는 그들의 행동들을 사례들를 모으고 정리한다고 개념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 작가는 꽤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 내가 속해있지 않았던 서태지 시절, 1세대 HOT를 위시한 전성기를 지나 2세대 동방신기 그리고 현재 3세대라 불리는 수많은 아이돌에 이르는 그 체계를 말이다. 나는 2세대부터 속해있기 때문에(그렇다고 나는 동방신기 팬은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꽤 많이 알고 있다 자부한다. 그래서 이 책을 굉장히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물 론 책이 한쪽으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주변에서 물어볼 친구들 혹은 동생친구들이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인지 대체로 동방신기에 관한 이야기들로 주를 이룬다. 그래서 아주 보편적이지 않은 국소적인 이야기들도 보편적이게 다뤄지고 있고, 조금은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도 보인다. 그러나 그건 작가가 조사한 자료의 한계라고 보지 작가의 한계라고 보지는 않는다. 얼마만큼의 자료를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두서없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팬들의 세계를 잘 요약해 놓았고 설명해놓았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한 게 여러 번. 팬페이지, 움짤, 플짤, 찍덕, 서포트, 조공, 차트 지붕 뚫기, 팬픽 등등 주위에서 늘상 접하던 단어들을 이렇게 책 안에서 보니까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팬이 아닌 사람이라면 팬들에게 문득

그 열정과 애정으로 아이돌이 아닌 다른 관심사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러면 자아계발은 물론 사회에 이바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뛰어난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그 근성으로 고시를 준비하라는 제안과 비슷하다. 팬덤은 나의 아이돌을 위해서일 때에만 강력한 에너지를 터뜨린다.

 

 

이 나이에 무슨 아이돌 팬질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일코라고 불리우는 '팬질하는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한다. 정말 위의 말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봤기 때문이다. 팬들도 잘 안다. 오빠 학력고사가 있다면 전국 1등은 나일거라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곤 하니까. 알고 있기에 사회에선 조용히 하는 것이다.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애정을 보이는 것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리 없고, 엄청나게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는데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단락이 꽤나 마음에 박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관심이 아니다

계 몽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바람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활동기간 동안 사고없이 성취를 거듭하는 자랑스러운 아이돌을 원한다. 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취향에 대한 말없는 존중을 원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HOT의 데뷔로부터 지금까지 팬덤이 획득하지 못했던 사회적 배려들이다.

 

 

 

많 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정말 작가의 저 단락은 팬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내 놓은 답인 것 같다. 취미생활은 일상생활에 활력을 주는 존재이지 해악을 입히는 존재가 아니듯,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가진 이들에게 굳이 색안경을 끼고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취미생활을 하는 걸 가지고 욕을 듣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이가 피아노가 취미라고 하면 별 말 없이 넘어가는 것처럼, 오늘도 팬들은 누군가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해도 말 한마디 보태지 말고 별 말 없이 넘어가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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