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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모든 것 영화에서 배웠다 - 영화 48편이 내 인생에 답하다
수이앙 외 지음, 정주은 옮김 / 센시오 / 2019년 10월
평점 :
영화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들-거대 빌런이 등장해 도시를 때려부수고, 슈퍼 히어로가 등장해 그런 빌런을 혼쭐내 세계평화를 되찾고, 현재에는 상상력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 각종 CG로 실현된 세상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상상력 속 이야기조차 현실에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창작해 낸 것은 현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어서다. 모든 상상력은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내 인생의 모든 것 영화에서 배웠다>는 그럴 듯한 책 제목이라 생각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영화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존에도 영화와 인생을 함께 이야기한 책은 많아서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훑어보니, 조금은 다른 점이 보였다. 언뜻 봐서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영화 두 개를 하나의 주제로 묶었다는 것(이어질 것 같은 영화들이 묶인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묶인 영화 중 하나는 무조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더 임파서블>, <빅 히어로>와 <인턴>, <싱 스트리트>와 <벼랑 위의 포뇨>, <아이언 맨>과 <모아나>.
책의 처음, 그러니까 첫 번째 주제의 첫 번째 이야기가 <아이언 맨>과 <모아나>의 이야기였는데, 토니 스타크와 모아나가 같이 묶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굉장히 신선했다. 둘은 공통점은 고사하고, 장르부터 확연히 다르지 않나. <아이언 맨>은 여기저기 팡팡 터지는 SF 블록버스터, <모아나>는 디즈니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여주인공(족장 딸)의 성장형 애니메이션. 하지만 작가는 <아이언 맨>과 <모아나>를 '나는 누구인가?'라는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용한다. 가 닿은 결론은 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까지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으므로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기대하게 했다. (물론 목차에서 봤던 여러 영화들이 내가 봤던 영화들이 많아서 라는 사적인 이유도 좀 컸다.)
<빅 히어로>를 보면서 좀 울었었고 <인턴>을 몇 번이나 돌려봤던 사람으로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마음을 나눌 수 없는 프로그래밍 된 로봇,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업무 보조 인턴. 이 둘은 주인공 옆에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주인공들과 함께 겪은 상황들과 행동들과 시간들은 이들을 친구가 되게 했다. 하지만 형이 마지막으로 남긴 메디컬 로봇과 정부 정책에 등떠밀려 고용한 시니어 인턴을 친구라는 카테고리에 당연하게 넣을 수는 없다. 이들을 통해 친구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응당 당연한 것들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If you need me, I'll be there. If you don't, I won't leave either.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면 여기 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156쪽)
친구가 언제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며, 언제라도 도움의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57쪽)
작가는 책의 시작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화가 현실과 환상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위안과 치유를 주었다면 그 마음들을 다시 안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현실을 치열하게 살면서도 어린아이의 유연한 마음을 잃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단순히 영화는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해줄 무언가 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으며 조금은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영화에서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현실을 더 잘 살아낼 힘을 얻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영화 속에서 힘을 얻는다. 영화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보다 좀 더 좋은 의미인 것 같아 '그거 좋네'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