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
천성호 지음 / 넥서스BOOKS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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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반짝 튀어 오르는 불꽃놀이가 아닌 은은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장작불처럼 서서히 더 좋아지고 따뜻해지는, 꾸준히 장작을 밀어 넣어 불꽃이 움츠러들지 않게, 은은하게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나란히 발을 뻗고 앉아 오손도손 이 얘기 저 얘기 꺼내드는, 별다른 스토리 전개가 없는 밋밋한 로맨스 영화처럼 잔잔한 물결만 일렁이는 그런… 소란하지 않은 산문적 연애이길.(145쪽)


언뜻 스쳐간 글귀 하나가 마음에 들어와 자리잡는 일. 내게 <사라은 그저 사랑이라서>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별 생각없이 책 소개를 보다 발견한 '소란하지 않은 산문적 연애이길.'이란 한 문장,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연애의 형태를 글로써 마주한 기분이었다. 사실 책 소개는 대충 훑는 스타일이다. 책의 한 부분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일 같은 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문장을 스쳐보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난  책 소개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고,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됐다. 꽤 운명적인 책과의 만남이었다.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천성호 작가. 전작들을 보지 못했고, 단순히 한 문장에 이끌려 책을 선택했기에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마주했다.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는 절절한 슬픔과 불타오르는 사랑의 순간들 보다는, 그런 감정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사랑을 이야기한다. 몽글몽글 사랑의 감정도 등장하고, 아픔을 간직한 헤어짐도 등장하지만 말이다. 책 속의 화자는 감정을 토해내지 않는다. 어찌보면 조금은 건조하다 할 만큼.


사랑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사랑은 타인으로부터 동화되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이 존재하는구나, 그걸 새삼 깨달을 뿐이다. (21쪽)


이별이란 게 접촉사고 같은 거더군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엔 잘 모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후유증이 밀려오는 것. 아프지 않았던 곳들이 하나둘 아려오는 것. 그러다 어느 날, 불쑥 주저앉고야 마는 것. (36쪽)


싫지 않은 찬 공기가 불어오는 이 계절, 쟁여둔 몇 벌의 마음을 꺼내놓고서 그 마음들을 한 벌씩 다려 갑니다. 당신의 계절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133쪽)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랑 에세이라면 응당 존재하는 폭발적인 감정들의 파편들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아팠던 어떤 날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어서, 순간의 감정들을 옮기는 게 아니라 순간이 아닌 감정들을 옮겨 놓아서 말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저 사랑의 보편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술에 취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순간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에서 당신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의 괴로움까지 전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나간 사랑으로 얻은 깨달음들을 적어 두었을 뿐.


작가는 '나의 계절은 사랑입니다'라 소개하며 자신의 계절들을 책에 소개했다. 글 속의 섬세함이 그 당시의 계절에 얼마나 반영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나온 계절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따뜻한 계절들을 지닌 작가기에 따뜻한 글을 쓰는 걸지도 모르겠고. 책의 처음에서 작가는 여전히 자신은 사랑으로 가는 계절 속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계절은 지나가는 것. 영원히 머무를 수도 있지만, 왔는지도 모르게 지나칠 수도 있다. 지나간 계절에 화를 내지 않듯, 다가올 계절에 미리 지레짐작하지 않듯, 그저 다가올 계절로 걸어갈 뿐이다.


책을 통틀어 사랑을 계절로 표현한 첫 부분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군데군데 예쁜 문장들도 많이 있는, 내 마음과 퍽 많이 통하는 '산문적 연애'가 등장하는, 퍽 따뜻한 사랑 에세이 <사랑은 그저 사랑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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