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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빈 공간 - 영혼의 허기와 삶의 열정을 채우는 조선희의 사진 그리고 글
조선희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11월
평점 :
나의 마음은 여전히 20대다. 언제나 20대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아직 20대인 내가 좋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하나씩 채워가는 일이 좋다. (6쪽)
프롤로그에 적힌 글이다. '사진작가 조선희'라는 내가 가진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문장들이기도 했다. 언제나 파이팅 넘치고, 큰 목소리로 촬영장을 이끌어나가며, 앞에 있는 모델(배우)의 컨디션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일을 함에 있어선 열정적인. 앞으로의 글들도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했다. 자신감 충만하고 자기애 가득한 글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을까.
결국 찍는 순간에는 혼자다. 세상 일의 대부분이 이렇다. (30쪽)
하지만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그건 내가 가진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을 보여지는 면만으로 판단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내면 속 그 사람은 보여지는 것과는 딴 판 일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작가의 이미지를 싹 지워버리기로 했다. 본래 작가를 따져서 읽는 편은 아니라 작가를 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온 적은 없었는데, 본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내 눈을 가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의 빈 공간>이라는 책은 조선희 작가가 직접 찍고 쓴 책이다. 일단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 이야기부터 해 볼까. 지금껏 그녀가 찍어왔던 사진들처럼 색감이 좋고, 구도가 예쁘고, 대상이 오롯하게 찍힌 사진들이 책에 한가득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찍었던 사진들의 찐함을 좋아하는 편인데, 외려허한 느낌이 드는 사진들도 많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국적 느낌이 가득한 사진들은 따로 사진집을 보지 않는 나로서는 뭔가 공부가 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사진은 많이 볼수록 잘 찍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전문적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도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욕심은 갖고 있으니,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막의 광활한 밤하늘이라든가, 자작나무가 가득한 설원이라든가,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묘지라든가, 나와는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가진 어느 누군가의 눈이라든가.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과 사람들, 사물들이 글보다 더 다가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글이 나쁜가하면 그건 또 아니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생각이 담기기도 했고, 별 것 아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얼마나 덜 잃느냐가 문제야. 그 말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했다. 덜 잃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얻거나 잃거나, 둘 중 하나. 그런데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덜 한다는 것, 더 한다는 것. 그런 간단한 명제를 인식조차 못하고 살아왔네.(172쪽)
에세이 형식으로 주욱 이어 쓴 글도 있었고, 아주 짧은 글도 있었다. 메모를 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짧은 글들에서 와 닿는 내용들이 더 많았다. 그 짧은 와중에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도 좋았고. 글들이 그리 길지 않아 읽기 수월했다. 사진과 함께 감상하면 금상첨화이니, 책을 휘리릭 읽어내는 것보다는 시간을 들여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이렇게 좋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마른 꽃들이 내게 말을 걸면, 그 시간과 나는 친구가 된다. (93쪽)
생이란 순간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밑바닥에서 가진 것 없었으나 꿈꾸던 나와 너무 많이 가졌으나 불안에 가득 찬 내가. (98쪽)
책을 덮을 때쯤 쓰여있는 이야기에는 어딘가로 또 떠나야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담겨있다. 작가는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려 또 어딘가로 떠난다. 그것이 작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란다. 내 마음 속 빈 공간에는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꾹꾹 눌러담은 <내 마음의 빈 공간>을 보며 나는 내 빈 공간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