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건너다
홍승연 지음 / 달그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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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건너다>라는 제목을 보고 선택했는데, 정작 책을 받아보고 나니 제목 아래 있는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앞모습인지 뒷모습인지조차 알 수 없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인, 빨간색 표지 위 동그마니 인영 하나. (인영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정확히 인간인지도 의문이지만 말이다.) 발밑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함께 있지만 왜인지 쓸쓸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책을 한참 바라보고만 있으니 엄마가 묻는다. "오늘은 무슨 책이야?" "오늘? 이거 그림책." 빨갛고 얇은 책이 엄마 눈에도 특이하게 보였나보다. "다 커서 무슨 그림책이야?" "그러게." 나는 이 책을 왜 읽고 싶었더라.




<슬픔을 건너다>라는 다소 무거운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책은, 사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은 아니다. 세상사에 아직 발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슬픔'을 제대로 인지한다는 건 말도 안되니, 이 그림책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까진 이 그림책이 어떤 책인지 감이 잘 잡히지는 않았다. 작가의 말이 따로 없는 책의 특성상, 마지막 페이지 작가 소개란에 적힌 몇 줄로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다소 어둡고 깊은 메시지를 담은 <슬픔을 건너다>를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연이어 잃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이 책을 작업했고, 다시 작고 소중한 경험들을 모으며 살고 있습니다."

채 열 줄도 되지 않을 것 같은 글들이 그림들 사이에 적혀 있었다. 사실 글만 놓고 봤을 땐, 어딘가에서 비슷한 느낌의 글을 읽어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네가, 우리가 겪었던 흔한 아픔과 익숙한 위로. 특별하다기보다는 평범하기 때문에 처음 글만 휘리릭 읽어나갔을 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앞의 그 마음이 깡그리 잊혀졌다. 흔한? 익숙한?아니, 익숙하기는커녕 오히려 특별한 책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바로 그림 때문이다.




앞서 표지에서 이야기 했었던 그 쓸쓸했던 인영. 그 심상찮은 인영이 등장하는 그림들과 함께 했을 때부터 그 흔하다 생각했던 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들은 한 가지의 명확한 목표성을 가졌다기보다는 뭔가 상황이 복합적으로 뭉뚱그려진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림을 보면 여러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면서 옆에 적힌 글을 그림과 함께 읽으면 왜인지 그 짧은 글 속에 또 다른 의미가 담기진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다. 적힌 문장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리 만무한데, 당연하게도 다른 문장들이 떠오르는. 글도 그림도 추상적이다. 그래서 독자의 생각이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다분히 작가의 고의성이 느껴졌다. 그것이 좋았다.

'누구나 말하지 못한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거예요'였던가. 예전 어떤 드라마에서 패러디로 자주 쓰였던 대사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던 기억.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치는데도 계속 늪으로 빠져들었던 순간. 나만 아는 비밀스런 기억들이 작가의 글과 그림과 합쳐져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잊고 있었던 묻어두었던 상처가 불쑥 솟았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불쑥 솟고 해결점이 없었다면 그림책의 제목이 <슬픔을 건너다>가 되지는 않았을 터. 빨간 작은 새가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분위기가 확 바뀐다. 




당연하게도 앞부분보다 밝은 색채가 쓰였고, 그 쓸쓸했던 인영도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뾰족뾰족하고 날카롭고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분위기가 빨갛고 푸르고 하얀 배경들과 만나 동글동글해졌다. 뭔가 긴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드는 후반부는 보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눈 코 입도 없는 인영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는 건 그저 내 착각만은 아닐테다. 결국 그 인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그 인영 자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결론이다.(이렇게 얘기하면 스포는 아니겠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슬픔을 건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슬픔도 조금씩 무뎌진다. 물론 슬픔 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생각이 없다면 영원히 그 곳에 침잠하겠지만,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 해도 예전만큼의 절망은 없을 것이다. 그림책은 그것을 알려준다. 그래도 슬픔에 빠졌던 그때와 달라진 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뭔가 조금 더 단단해지지는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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