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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 개화와 근대화의 격변 시대를 지나는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 ㅣ 표석 시리즈 2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단순했다. 표지의 전차가 많이 낯익어서다.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 이거 드라마에서 봤는데?" 요즘들어 가장 집중해서 봤던 드라마인 <미스터 션샤인>에서 매 회차마다 등장해 자주 봤었던 전차였다.(드라마에선 주인공의 유모격인 함안댁이 '쇠당나구'라고 불렀다.) 전차의 위쪽에 붙어 있는 '표호산'이란 단어가 낯설어서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남아 있는 터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의 작가진도 <미스터 션샤인>을 언급했다. 드라마 덕분에 많은 이들이 대한제국의 관심을 갖는 지금, 이 책이 대한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말이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는 말 그대로 '표석'이 주인공이다. 표석이 지니고 있는 장소성과 시간성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연구활동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고. 일단 책을 쭉 훑어보다 책의 맨 뒤쪽에 '표석 찾아보기'가 부록처럼 붙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책 속에 등장한 표석들이 사진으로 찍혀 쭈욱 첨부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00 터'의 형식으로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지만 그곳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지표. 아마 광화문 근처 어디를 걸어다니다가 표석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서울의 곳곳에 표석들이 자리잡고 있는 게 꽤나 신선했다.
사실 하나의 표석이 이야기하는 것은 많지 않다. 적혀 있는 글자도 많지 않고,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표석이 무얼 의미하는 지 알기도 쉽지 않다. 낱개의 표석만 본다면 그렇다. 하지만 이 표석들이 지닌 각자의 이야기를 잘 연결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면 말은 달라진다.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표석들을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 조선 얼리어답터 고종의 전기, 전차, 전화와 관련된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부강몽 길), 근대 신문들인 대한매일신보, 독립신문, 황성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창간 사옥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신문사 길),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거나 몸 담았던 곳들의 표석들을 한데 묶는다거나(심우장 길) 하는 식으로. 각자 가지고 있던 이야기들을 큰 주제로 한데 모아 정리했다.
사료에서 찾은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 문헌 속에서 찾은 당대의 분위기나 생각들, 장소의 번영과 몰락, 그 당시 장소가 가지던 의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 가던 장소의 의미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보니 꼭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보자. '태화관 길'의 경우에는 현종 후궁의 처소인 순화궁이 이완용의 별장이 되었다가 다시 기생 요릿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장소는 같으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던 장소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던 길이다. '서양의학 길'은 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한성에 서양의학이 뿌리내리던 과정을 그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운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부터 현재의 연세대학교병원이나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등의 전신들에 관한 이야기, 현재에도 많이 먹는 부채표 까스활명수의 동화제약이 동화약방으로 시작해 판매금을 독립운동에 보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다루는 것은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제목은 틀렸다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표석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표석들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사진자료들과 미처 알지 못했던 신선한 내용들은 책읽기를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흥미롭고,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혹시 내가 모르는 내용이 등장하진 않을까 흥미롭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라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왜 전작이 우수 콘텐츠로 선정되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후속작인 이 책도 우수 콘텐츠로 선정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