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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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이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작년, 아니 재작년에 참 많이도 들었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생각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도 세트로 떠오른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지 않음에 분노했던 나날들, 그래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주권이라는 것을 다시 깊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16년 10월을 지나왔음에도 나에게 헌법 1조 2항은 가깝고도 멀다. 헌법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무게감과 묘한 거리감을 상쇄시킬 만한 그 무엇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여기, 대중에게 아주 친숙한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이 헌법 관련 에세이를 펴냈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라는 기다란 제목을 달고. (저자는 '말 잘하는 법'이란 제목을 내세웠지만출판사의 반대에 부딪혀 사라졌다는 비하인드가 책 속에 적혀있다)

서문에서 제동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헌법 37조 1항이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 같다 생각했다고. 헌법 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인데 이게 마치 "내가 여기 안 적어놨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처럼 보였다고 말이다. 마치 사랑을 가득 담아 쓴 연애편지의 마지막에 추신으로 또 덧붙이는 사랑고백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이 부분에서부터 나는 신선함을 느꼈다. 헌법을 딱딱한 법으로만 한정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앞으로 어떤 글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겠다란 생각도 했다. 제동 씨는 이 책이 에세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무거울지도 모른다고 적어뒀지만, 서문에서 느낀 신선함이 본문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본문을 읽어나갔다.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김제동이 느낀 헌법'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헌법이 낯설기만 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헌법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라고 온 몸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물론 제동 씨가 이해하고 책 속에 적어둔 헌법 해석이 무조건 옳은 해석은 아니다. 제동 씨 나름대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고민하며 적은 거겠지만, 원래 헌법이 의도했던 해석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약간의 물꼬만 터두어도 사람들이 헌법에 갖는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을 거다. 제동 씨의 말마따나 '누구나 헌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우리가 헌법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헌법을 아는 것이 나쁠 리 없다. 게다가 비타민, 빼빼로, 방탄, 판관포천천 등 헌법을 쉽게 기억하라고 닉네임도 붙여뒀으니 어느 정도는 기억에 남지 않을까.

하지만 처음 예상과는 좀 다르게 헌법 해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김제동식으로 해석된 헌법보다는 에세이스러운(?) 내용들도 많이 담겨있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5:5 정도가 아닌가 싶다) 결국 헌법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거니까, 제동 씨가 살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 헌법을 조금씩 녹여냈다. TV고려(..)를 보는 가게 할아버지와의 대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광장에서 겪었던 여러 이야기, 종북과 좌파와 우파와 정치 이야기, 민주주의, 정치참여 등등 김제동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제동 씨의 말투로 적혀 있다. 읽고 있노라면 어느 방송에서 봤던 제동 씨의 목소리가 음성지원되는 듯이 따뜻하고 정중하고 위트있게. 헌법이란 낯설고 무거운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읽어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중간 곁들여진 일러스트들은 마치 이모티콘을 달아둔 것처럼 아기자기하고, 제동 씨의 위트와 만나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또한 헌법 관련 조언을 얻기 위해 국내외의 헌법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내용도 실어 너무 가볍지 않은 책을 만들려 노력한 모습도 보인다.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헌법 관련 에세이를 낸다면 이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꽉꽉 눌러 담은 느낌. 정성이 느껴져 또한 좋았다.

물론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제동 씨와 내 견해가 다른 부분도 엄연히 존재하니까. 다른 것은 다른 대로, 동의하는 부분은 동의하는 대로. 어떤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데 헌법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를 권하고 싶다. 어렵지 않고, 소소한 위트로 재미도 있고, 잘 읽히고, 생각도 하고, 선입견을 타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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