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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五月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16명 지음, 차일드 하삼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평점 :
알다시피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은 김영랑 시인의 시다. 그런데 책을 보면 저자는 윤동주 외로 되어있다. 왜지? 그런데 눈 앞에 더 크게 보이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이라는 문구는 신선했고, 시화집이라는 형태 또한 꽤 신선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이라서. 알아보니 <열두 개의 달 시화집>은 1년 12달을 총 12개의 시화집으로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여러 유명 작가들의 시를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함께 한 권의 책에 실어내는 프로젝트. 저녁달 출판사에서 텀블벅으로 출판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 봄편인 3월 4월 5월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5월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을 꼽으라면 원래는 12월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태어난 달이라서다. 요즘 5월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 (이유는 굳이 적지는 않겠지만) 생각하면 몽글몽글 웃음이 지어지는 달이기 때문인데, 마침 5월이 있었기에 과감히 선택했다.
목차를 보면 1일부터 31일까지 시가 쭉 나열되어 있다. 책 속에는 5월달의 날짜와 같은 갯수의 시가 실려 있는 것이다. 탄생화, 탄생목이 있는 것처럼 탄생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윤동주나 김영랑 시인처럼 일반인들도 알 만한 시인들의 시도 존재하고, 하이쿠처럼 짧은 시들도 존재한다. (물론 우리나라 시인들보다는 인지도가 없을테지만.) 5월엔 윤동주와 김영랑 시인의 시가 꽤 많이 등장한다. 다른 달에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5월은 그렇다. 5월이라고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봄, 꽃, 벚꽃, 초록 등등 밝은 분위기 일색이다. 그런 밝은 분위기와 윤동주는 조금 어울리지 않지 않나 생각을 해보면서 시화집을 펼쳤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5월 31일의 하이쿠였다. '모두 거짓말이었다며 봄은 달아나버렸다' 이 짧은 한 문장으로 이 책 뿐만 아니라 봄이 확실히 정리되는 느낌. 하이쿠 옆에 실린 그림이 꽃잎이 떨어지는 꽃병이라서 더 확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시들 몇 편을 소개한다.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이길래
내 숨결 가볍게 실어 보냈지
하늘가를 스치고 휘도는 바람
어이면 한숨을 몰아다 주오.
ㅡ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김영랑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그대는 결국 그대를 사랑하는 겔세.
그대 넉의 그림자가 그리워
알들이 알들이 따라가는 겔세.
ㅡ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 할 때. 김상용
오늘은 십년보다 얼마나 더 귀한고
어제도 이별되고 내일도 모를 일이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마음놓고 살려오
ㅡ오늘. 장정심
5월이라서인지 장미와 관련된 시들이 몇 편 보였고, 역시나 윤동주 시인의 시는 생각처럼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사랑의 속살거림을 담았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랑의 슬픔들도 많이 보였다. 하이쿠가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는 하이쿠는 새롭기도 마냥 반갑기도 해 좋았다. 이 서평에 옮겨적은 '오늘'이라는 시는 처음 보는 시였지만 느낌이 좋아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차일드 하삼이란 화가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림을 보니 낯이 익기도 하다. 작가 설명을 봐도 여전히 그는 낯설지만, 그림은 참 좋았다. 그의 그림 스타일이 붓 터치감을 남겨두는 것이었는지 많은 그림에 거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풍경화가 주는 안온함은 작은 그림 속에서도 느껴질 정도였고, 그가 그린 꽃들은 화려하지 않아도 어여뻤다. 그림 속에 등장한 여인들은 모두 편안해 보였고. 5월의 시들과 그의 그림들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것인지도.
한정된 숫자의 시만 담겨 있으니 책을 덮을 때쯤엔 시가 더 보고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짧다는 느낌이 든다. 한 달이 늘 빨리 지나가듯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달이 찾아오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듯이, 이 책이 끝이 아니다. 여름편이 출간되면 그 속에 어떤 시들이 담길지 궁금해진다. 시화집이란 게 이렇게나 퍽 매력적이라니. 앞으론 시화집이라고 하면 눈길을 한 번 더 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