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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닌 순간이 있을까
수수하다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그동안 많이 밝혀왔듯이, 나는 제목에서 뭔가 느낌이 오는 책을 선택하는 편이다. <사랑이 아닌 순간이 있을까>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다. 책 제목을 읽자마자 '이거 읽어보고 싶어!'라는 느낌을 받았다. (왜인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못하겠지만.) 더불어 파란색 계열로만 이루어진 표지 그림도 궁금증에 한 몫을 담당했다.
<사랑이 아닌 순간이 있을까>는 제목에도 이미 밝혔듯이 사랑했던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이 시간에 흐려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게 됐다'는 저자 수수하다는, 들어가는 말에서 '오늘의 사랑에 소홀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한다. 책 뒷표지에도 나오는 '매번 같은 상황은 있을지라도 매번 같은 사랑은 없을 거예요.'라는 문장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사랑이니, 오늘의 사랑이 어제의 사랑과 같다며 사랑하는 어떤 순간에도 소홀하지 말자는 이야기. 들어가는 말부터 콱 하고 꽂힌 이 이야기말고도 책 속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루 종일은 아니더라도
하루 중 한 번은
내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길 바라. (45)
내 시선이 향하고
내 마음이 닿는 곳에
당신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모든 순간이 참 행복한 요즘이야. (65)
<사랑이 아닌 순간이 있을까>는 모든 글들이 1인칭 시점이다. (당연하다. 저자의 입장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이겨보려 시작한 작업 아니던가.) 그림이 글의 부연설명을 하기 때문에 쉽게 감정이입도 된다. 읽기 쉬운 책이고, 읽다보면 당연하게도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의 사랑을 시작하는 '나'의 감정들이 참 좋았다.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그 몽글몽글한 마음이 꼭 어느 순간의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그림이 반드시 함께 자리하고 있다. 모든 부분에 선이 있지도, 그렇다고 모든 부분에 선이 있지도 않은 신기한 그림이. 동글동글한 그림 속 주인공들은 이야기에 맞춰 추상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그려져 있다. 모두 파란색 계열의 색상들로만 이루어진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보다 그림이 더 좋을 때도 있었고, 그림으로 인해 글이 훨씬 빛나던 때도 있었다. 저자가 모두 직접 그리고 쓴 글이기 때문에 시너지가 더 일어난 듯 보인다. (둘의 조합이 퍽 좋다.) 가끔은 그림들 옆에 작은 글씨로 이야기가 요약되어 있기도 한데, 본문보다 마음의 소리를 내놓은 듯한 그 작은 글씨들이 더 와 닿기도 했다.
당신은 금방 보내버렸는데
당신과 함께 만든 무수한 작은 추억들은
한 번에 지워버릴 수 없어 너무 괴롭다. (134)
포기도 선택의 일종이라 믿고
현실과 타협하며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차선을 최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186)
사랑을 하기까지, 사랑을 하고 나서의 사랑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한 후 느끼는 감정들이 모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믿음, 기대, 실망, 체념 등 상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많은 감정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다 결국 사랑을 손에서 놓아버리게 되고, 옆에 늘 있던 누군가의 빈자리를 느끼며 힘들어한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하기 위해 잃어버린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마음을 다독인다. 사랑에 빠져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순간 / 사랑하면서 느끼는, 절대로 상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소소한 불안함 혹은 찌질함 / 이별 후의 허한 마음 / 다음을 위한 나 다독이기. 책 속의 4개의 주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꽤나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나.
사랑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 읽어봄직 하다. 예쁜 문장, 공감가는 문장을 좋아하는 이들도, 아기자기한 책을 좋아하는 이들도, 연애를 하고 싶은 이들도,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도. 아니, 세상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파란색으로 그려낸 사랑의 순간을 싫어할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