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칫, 쳇 - 수요시포럼 제22집
김성춘 외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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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포럼 앤솔러지 『챗, 칫, 쳇』은 마치 잘 정돈된 디지털 아카이브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일기장 같았습니다. 표지의 세련된 디자인과 달리, 시집 안에는 인간 본연의 따뜻한 감성과 날카로운 통찰이 '챗, 칫, 쳇'하는 언어의 파편들처럼 다채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가진 시인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앙상블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언어의 마법이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권영해 시인의 '동백, 지다-돈오점수'에서 동백꽃의 낙화를 통해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불교적 성찰과 연결하며 우주적 사실까지 덧붙이는 시선은, 작은 현상 속에서 거대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권기만 시인의 '행성 기록자'는 에베레스트와 같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1초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을 병치시키며, 인간과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상상력의 비약이 놀라웠습니다. 이는 시집이 지닌 광범위한 스펙트럼과 시인들의 개성적인 시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챗, 칫, 쳇』은 언어의 다양성과 상상력의 경계를 시험하며, 독자들에게 익숙한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하는 지적인 자극을 선사하는 시집입니다. 시인들은 각자의 고유한 필치로 삶의 다면성과 디지털 시대의 역설을 탐색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습니다. 이 앤솔러지는 그렇게, 현대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정서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의미 있고 풍성한 시적 성찬이었습니다.

봄날 기분은 얼마예요?
사람들은 시장에서 싱싱한 위로를 고릅니다
나를 먼저 떠난 친구와 이웃들
시장에서 간혹 보입니다 - P69

우리 착하게 살지 말자 그렇지, 지금처럼만
한밤중 일어나 오줌을 눈다 거실 구석에 놓인 화분을 본다 싹 트는 소리가 희미하게 철컥,
기다려!
- P81

소원을 빌었다
애인을 주세요
꿀술을 주세요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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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칫, 쳇 - 수요시포럼 제22집
김성춘 외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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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정돈된 디지털 아카이브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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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가고 수목금 시인의일요일시집 39
길상호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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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시인의 『오고가고 수목금』은 언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샘물과 같았습니다. 시집을 읽는 내내, 꾸밈없고 솔직한 시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마치 낡은 일기장을 한 장씩 넘기듯, 시인의 삶의 단면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유들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생산직’이라는 시에서 숲이 나무를 일으켜 세워 시간을 만들고, 도끼질에 달이 몇 토막 나는 이미지들은 삶과 노동, 그리고 자연의 순환에 대한 시인의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 시집은 상실과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시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멀리서 나비'는 '저 세상에서 날아'와 '그의 등에 오래 머물'다가 떠나는 나비를 통해,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갈망을 애틋하게 표현합니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호소하기보다, 자연물과 일상적인 풍경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더욱 큰 공감과 여운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골판지'를 해부하여 뼈가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흉터마다 계단'을 욱여넣는 시인의 시선은 삶의 고통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고가고 수목금』은 그렇게, 삶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었습니다. 시인의 언어는 과장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은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마치 ‘저녁 무렵 커피는’에서 “아쉬운 것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시인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삶의 굴곡진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시인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포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헤어질 의무가 있다 - P62

갈라진 골목을 뒤꿈치라 부른다
새벽도 오래 걸었으니 분명 저런 발을 가졌을 것이다 - P82

이 생은 늦었는데 동백은 멀뚱멀뚱 동백 뒤 향기는 가만가만 그 뒤의 놀란 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도대체가 이곳 조바심엔 속도가 없다. 앞차는 깨끗하게 거기 서 있다
- P93

호수는 내용을 숨겼어요
끝까지 봐도 끝을 모르겠어요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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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 소다수 하늘을 시인의일요일시집 38
황은주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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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주 시인의 『새에게 소다수 하늘을』은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미스터리 영화처럼, 독자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집입니다. 시인의 언어는 간결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심연처럼 깊고, 때로는 예리한 비수처럼 우리의 고정관념을 꿰뚫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구두와 모자,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 속에서 삶의 슬픔과 재탄생을 이야기하는 시인의 시선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서 우주의 섭리를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시집은 익숙함과 낯섦,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유영하며 독자들을 미지의 세계로 이끕니다. '오래된 잠' 시리즈에서 유배지와 은둔 사이를 오가는 '나'의 모습은 현대인의 고독과 방황을 대변하는 듯하며, '아메리카노'처럼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존재의 허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가슴 한편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시인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독자 스스로 그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도록 유도하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마치 "흔들려서 떨어지는 것" (틱)처럼, 시인의 시어들은 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숨겨진 감정들을 툭, 툭 건드려 깨웁니다.


『새에게 소다수 하늘을』을 읽는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마법을 발견하는 경험과 같았습니다. 황은주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처럼,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색깔과 소리를 부여하고, 독자들에게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합니다. ​이 시집은 그렇게, 우리의 영혼에 '소다수'처럼 청량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하늘'처럼 광활한 사유의 공간으로 이끌어주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언어의 향연이었습니다.​

후후, 정답이란 지루한 거란다 - P56

밤새 공중에선 빛들이 반짝이겠지 누군가 걸어오고 빛을 세고 하늘은 다시 누군가의 세계인 거지 추워지기 전에 미친 듯 춤추는 처음이 있었던 거지 그런 우주인 거야
- P59

너의 뺨을 만진다
두 팔로 살며시 공중을 껴안는다
새들의 시간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중이다
그런 메아리라며 소금밭을 지나 무지개를 지나 사과나무를 돌아오는
마지막 포즈를 취할게 뺨과 뺨을 맞대는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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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 소다수 하늘을 시인의일요일시집 38
황은주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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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마법을 발견하는 경험과 같았습니다. 황은주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처럼,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색깔과 소리를 부여하고, 독자들에게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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