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재 ㅣ 시인의일요일시집 42
부영우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6년 1월
평점 :
부영우 시인의 『양재』는 얼어붙은 바다 위로 다시 눈이 내리는 새벽처럼, 차갑고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 시집은 삶이라는 거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내려는 시인의 고독한 여정이다. "너무 멀리 보는 게 문제예요"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눈앞의 기린을 쫓듯 겸허하게 삶의 파고를 헤쳐나간다. 그의 언어는 때론 칼날처럼 날카롭고, 때론 물결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독자의 감각을 예리하게 자극한다.
시집 전반에 흐르는 '경계'에 대한 사유는 압권이다. 인간관계의 모호한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꿈의 경계... 시인은 이 경계에 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조율"이라는 시에서 보여주듯, 사회의 불협화음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지친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양재』는 표피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비루함과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노래한다. 이 시집을 읽고 나면, 맹목적으로 달려왔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물받게 될 것이다.
바다를 건너 섬에 가는 시인들이 이상해요 서울 사람도 차도 빌딩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건데 자연만 자연스레 자연인 것처럼 말해요 자란 곳에선 시가 잘 안 써지나 봐요 나도 여기 숨으려고 왔어요 - P14
나는 과일 집 아들 히치콕과 같은 신분 내가 위대한 시인 되면 세계의 모든 과일 집 아들들 시인될 꿈을 꿀 거예요 - P37
어떤 것들은 버려도 버려지지 않으니까 버려지지 않는 것들로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 해 올여름엔 비가 너무 많이 오지 않으면 좋겠고 - P44
오늘은 배우지 않아도 돼요 부끄러움에 대하여 벌써 배웠잖아요 딴딴해 보여도 우리 마음이 얼마나 푸석푸석한지 - P54
이쯤 되면 난 끝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거죠 끝보다 처음은 더 모르겠고 그러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중간에도 끝이 있다는 것에 대해 중간에도 꽃이 만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 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