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나일 쪽으로
이희단 지음 / 카논(CANON) / 2023년 9월
평점 :
그 여자의 사랑법
이희단, <청나일쪽으로>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무턱대고 노래말이 흘러나왔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
<청나일 쪽으로> 에 실린 일곱 작품은 모두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 사랑이 하도 쓸쓸해서 아마도 나는 양희은의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화자들은 대부분 잊지 못할 사람과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결혼생활을 안정적으로 영위한다. 문제는 남편과의 관계가 행복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같은 기차에 타고 있지만 다른 칸에 있는 것처럼 거리감이 있다. 그러니 더 쓸쓸하고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그 외로움은 숙명처럼 보인다.
작가는 복잡한 심경을 사물이나 물건으로 대체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그 때문에 독자는 때로는 돌이 되기도 하고, 게나, 나무, 꽃이 되어 화자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돌의 기억> 에서는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과 풋풋함, 아쉬움과 그리움이 돌을 매개로 이어지고, 돌을 호수에 버림으로써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언니의 꽃> 은 가부장적 결혼생활의 피해자인 언니의 삶과 사랑이 칼미아꽃을 통해 보여진다. <오직 하나뿐인> 에서는 반지, <청나일 쪽으로> 는 청나일, <게> 에서는 게, <그 나무> 에서는 나무가 등장한다. <페트라의 돌> 에서도 돌을 매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좋았던 작품은 <청나일 쪽으로> 와 <게> 였다.
청나일은 이집트 나일강의 발원지중 하나인데,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원두가 있다. 푸른빛을 띠는 푸른 원두. 그 커피를 마시기 위해 화자는 청나일을 간다. 하필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녀를 남겨두고. 피라미드를 보고 스핑크스를 보는 사이 그녀가 죽었다. 한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을 응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청나일이라는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무한다.
<게>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마이애미 키웨스트에서 먹었던 게와 한국의 수산물 시장의 게를 맞물리면서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을 조망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특히 '게' 의 다리가 새로 돋아나는 것처럼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화자의 생동감이 좋았다. 어쩌면 일곱 편의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현재의 관계망을 끊고 밝은 미래를 암시한 작품이어서 더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한 마리의 게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두 마리의 게가 옆구리를 맞대며 걸을 수 있게 되리라고. 네가 키웨스트에서 꽃게를 찾아가는 길었던 과정이, 나에게도 그런날이 찾아오리라고 믿어. 어쩌면 게를 찾는 시간이 단축될지도 몰라. 여기선 꽃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아니까. 비록 봄철에 한해서지만, 너의 앞날이 항상 봄만 가득한 날들이길, 봄게처럼 알이 꽉 찬 날들이길" - <게> 중 86쪽
이희단 작가의 앞날이 "봄게처럼 알이 꽉 찬 날들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