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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말을 읽는다.
"저는 이 작품이 하나의 원작 소설처럼 읽혀지길 기대합니다. 하여 영화를 먼저 접한 독자는 영화와는 또 다른, 소설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재미와 감흥을 얻게 되길 바라고, 이 소설을 먼저 읽는 독자에게는 그로 인한 흥미가 영화로까지 이어지기 를 희망합니다.
작가는 길을 놓고 독자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작가는 길을 보여주기만 그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그저 제 걸음만 재촉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옷깃을 스치는 바람과 길섶의 조그만 풀꽃에도 마음을 빼앗기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각자의 마음 주머니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것은 바로 여러분 이니까요.
이미 길은 놓여 있습니다. 첫걸음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작가가 만든 길을 따라갔다. 영화가 원작인 소설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대부분 원작이 있는 소설은 영화의 감동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혹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져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의 말에 담긴 진정성 때문에 어쩐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장은 여리고 간결하다. 그 문장 사이로 소피아와 이튼의 마음이 잘 전해진다. 이튼은 세계 최고의 마술사였지만 14년전 마술 도중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 이후 그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다. 현재 책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불려진다. 그의 옆에는 남편에게 구타받고 남편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면서 힘겹게 그를 간호하는 아름다운 여자 소피아가 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데비아니 그의 많은 팬들... 그들은 이튼을 응원한다.
하지만 이튼은 자신의 생이 끝나길 원한다.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한 채 죽은 듯 누워 있는 삶에 진저리가 났으며 행복해지고 싶어 청원을 낸다.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모든 사람들이, 모든 팬들이, 그의 죽음을, 그의 청원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법원에서 패소한다. 그를 간호하는 소피아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혼소송을 했고 소송에서 이겼다.
한 사람은 패소했고, 한 사람은 승소한 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소피아는 사랑하는 이튼이 행복해지는 길은 그가 생을 마감하는 길임을 알고 그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행복한 날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고 책은 끝난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상처를 해결하고 서로의 행복을 기원해 주는 모습은 따뜻하다. 이튼의 사고는 친구의 배신으로 인한 것이었고 이튼은 친구를 용서한다. 그에 대한 해답으로 자신에게 마술을 배우러 온 친구의 아들에게 마술을 가르쳐준다.
삶은 순간이며, 덧없음을... 빨리 용서하고, 진실로 사랑하라고 이튼은 말한다.
"람들은 천재에게 경외심을 품고 부러워하지만 반면에 그들의 몰락을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때로는 천재가 악마와 계약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천재의 영화는 짧고, 그야말로 비참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평범한 삶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위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쪽 인용
꼭 동의할 수도 없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이튼을 질투해 그를 사고로 다치게 한 야사르의 행동과 비교해보면 사람의 심리를 잘 말한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