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시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콘텐트 '영화'. 영화에는 다양한 주제가 있고, 각 장르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이처럼 각 영화의 장르는 특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영화 장르 중에서 쉽사리 보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범죄 영화'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범죄 영화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와 잔인함 때문인 것 같다.
이로 인해 범죄 영화를 상대적으로 기피하는데, 다른 장르처럼 범죄 영화도 반드시 필요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장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넘어, 범죄 영화 속에 인간의 심리와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은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교수와 '씨네21'의 이다혜 기자가 진행하는 동명의 네이버 오디오 클립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에 실린 영화들 모두 인물의 심리와 사회상을 담고 있다.
1944년작 '가스등'(감독 조지 큐커)은 남편 '앤턴'(샤를르 보와이에)에게 세뇌당하는 부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의 이야기다. 폴라를 향한 앤턴의 행위는 지금의 '가스라이팅'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자 작품 제목인 '가스등'이 이를 은유한다. 영화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행위와 함께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시대상도 담겨 있다. 결국,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사람과 이에 당하는 사람의 심리, 가스라이팅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아카데미시상식을 휩쓴 영화 '기생충'(2019, 감독 봉준호)에서는 모멸감에 의한 사건이 벌어진다. 누군가로부터 멸시를 받았다는 생각에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는 낯설지 않으며, 이에 의한 범죄 역시 현실 속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인 예로 극심한 모멸감 때문에 전 남편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고유정'을 들 수 있다. '기생충'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과 같은 계급에게 가하는 '수평 폭력' 개념이 있다. 이것은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를 연대의 대상인 동일 계급에게 푸는 행위로,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 반대하지만 해당 시스템 속 자신의 이득을 지키려는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 이를 봤을 때 '기생충'은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화두를 던지고, 이 같은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만들어지는 각 인물의 심리와 그 결과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조커'(2019, 감독 토드 필립스)의 주인공 '아서 플랙'(호아킨 피닉스)은 어떤 상황에서든 웃어 버린다. 아서의 병은 '희로애락'을 웃음으로 표현하는 정신 질환의 일종인 듯한데, 이는 그의 유년기와 연관되어 있다. '과대망상'과 '병적 자기애 성향'을 지닌 어머니 페니가 아서를 학대 및 방치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이뤄진 학대는 기억 손상 등을 유발했다. 학대가 아서의 병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밖에 아서가 조커로 변신한 이유로 '복지 제도'를 들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아서는 치료를 위한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된다. 가난한 아서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일이다. 결과적으로 아서 플랙이라는 인물의 심리적 문제와 복지 제도의 취약성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맞물리면서 조커가 탄생했고, 이는 엄청난 혼란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책에 실린 15편의 작품 중 3편을 추렸고, 각 작품 속 인물의 심리와 사회의 모습을 정리했다. 이를 통해 범죄 영화라는 장르가 범죄 행위와 가해자·피해자만을 다루지 않음을 알게 됐다. 정리하자면 범죄 영화에는 범죄 행위와 가해자 및 피해자의 모습에 더해 우리 삶의 모습과 인간의 심리, 이를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적 측면도 존재한다.
그래서 작품 속 다양한 코드를 읽어내고, 이를 발판 삼아 개인적·사회적 변화를 꾀하도록 하는 것이 범죄 영화의 존재 이유이자 관객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장르의 영화처럼 범죄 영화도 인간의 삶과 심리, 사회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여실히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