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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 시나리오 ㅣ 영화 윤희에게
임대형 지음 / 클 / 2020년 1월
평점 :
오는 3월 8일(월)은 '세계 여성의 날'로, 1908년 3월 8일에 근로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행동이 기폭제였다. 이후 UN은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는 2018년에 법정 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지위 향상을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곧 다가올 '2021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 서사가 빛나는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바로 '윤희에게'(2019)다.
'윤희에게'는 '레몬타임'(2012), '만일의 세계'(2014)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 등을 연출한 임대형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제18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비평가상, 제4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각본상·음악상·영평 10선, 제21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자연기자상, 제7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41회 청룡영화제 감독상·각본상을 수상했다. 벡델데이 2020의 '벡델 초이스 10'에 선정되었으며, '윤희'를 연기한 김희애 배우는 '벡델리안'에 선정되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윤희에게'는 이혼 후 딸 '새봄'(김소혜)과 함께 사는 '윤희'(김희애)에게 '쥰'(나카무라 유코)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엄마보다 먼저 쥰의 편지를 확인한 새봄은 윤희에게 일본 오타루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모녀는 오타루로 향하는데, 그곳에는 윤희에게 편지를 부친 쥰이 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러브레터'(1995)의 설원과 유사한 풍경을 지닌 오타루에서 전개된다. 이는 '러브레터'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윤희에게'의 핵심은 윤희와 쥰의 관계와 상처로, 국내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던 '중년 퀴어물'의 형식을 띠고 있다. 윤희와 쥰은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받아왔고, 이 때문에 오랫동안 숨죽여 지내야 했다. 그러다 윤희에게 도착한 쥰의 편지와 새봄의 활약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윤희는 무기력했던 초반부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했다는 점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어온 윤희, 이로 인한 무기력과 상처를 딛고 세상에 뛰어드는 윤희. 영화는 이 같은 윤희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윤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윤희의 편지에 적힌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등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도 좋다는 점과 쥰을 만난 후 세상에 뛰어든 윤희처럼 알을 깨고 나오라는 격려·응원이 담겨 있다. 그래서 '윤희에게'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넘어,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수많은 윤희들을 위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윤희의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에 기인하지만, 가까운 사람 덕분에 조금이나마 치유된다. 이러한 구성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더 크고 아프게 느끼면서도, 이들로부터 위로를 받는 우리의 삶을 그려낸다(실제로 임대형 감독은 이 부분을 고려하면서 영화를 연출했다-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이는 우리 주변의 '윤희'들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가 이들에게 가하는 유무형의 폭력과 차별 등을 성찰하도록 한다.
평점-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