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 라이벌 난장사
남무성 그림.각색, 황희연 글 / 오픈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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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산업 분야가 타격을 입으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이처럼 어려움에 빠진 분야 중 하나로 '영화 산업'을 들 수 있다.

 지난 12월 14일에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코로나19 충격: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가결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정도에 따라 관객수 급감 현상이 두드러졌고, 그 결과 올해 11월까지의 극장 매출액은 4,98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동월 기간 매출액인 1조 7,273억 원 대비 71.2% 감소한 결과다. 최근 3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12월 전망도 흐리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년 동월 대비 가장 큰 감소율을 기록한 4월의 93.4%를 2019년 12월 극장 매출액에 적용해 산출한 올해 12월 매출액 추정치는 123억 원이다. 이를 더한 2020년 극장 총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1조 4,037억 원) 감소한 5,103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며 희망에 부풀었던 영화계와 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다.

 이렇게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업계 종사자와 영화팬들이 기념할 만한 날이 다가왔다. 바로 '영화 탄생의 날'로, 이른바 영화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12월 28일은 영화 탄생 125주년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업계 종사자들과 팬들이 함께 즐기며 보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영화 탄생 125주년 기념하기 위해 영화의 역사를 짚어 보고자 한다.

 영화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참고할 책은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이다. 이 책은 만화를 통해 영화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설명한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 영화감독들의 라이벌 구도에 기초해 영화 발전의 흐름을 짚는다.

 '제7의 예술'로도 불리는 영화의 생일은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1895년 12월 28일이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 사는 상류층들은 4번가에 있는 '르 그랑 카페'로 몰려 들었다. 평상시 이 카페는 커피를 마시면서 예술과 문화, 사회, 정치를 논하는 곳으로 쓰였지만, 이 날의 쓰임새는 달랐다. '뤼미에르 형제'의 주최 아래 세계 최초의 영화 상영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촬영과 영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치에 더해 한 장소에서 여러 명이 영화를 관람하는 형식이 현재의 일반적인 상영 방식과 같기 때문에 1895년 12월 28일을 '영화 탄생의 날'로 본다.

 사실 영화의 발명가는 '토머스 에디슨'이다. 축음기를 개발한 후, 에디슨은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는 '소리방'을 열어 큰돈을 벌었다. 1889년, 그는 사진을 이어서 볼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해 1893년에 완성한다. 이 기계의 이름은 '키네토스코프'. 이후 에디슨은 영화 촬영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에디슨의 기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한 사람씩만 볼 수 있는 데다가 상영 시간이 20초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독일 베를린의 '막스 스클라다노프스키' 형제는 '바이오스코프'라는 영사기를 만든다. 이 장치는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의 것보다 상영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스클라다노프스키 형제는 기계의 상업화에 실패했고, 이때부터 뤼미에르 형제의 활약이 시작된다.

 뤼미에르 형제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만든 영사기를 활용해 대대적인 상영회를 가졌다. 이들이 상영회를 연 르 그랑 카페에는 '판타지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르주 멜리에스'도 있었다. 상영회가 끝난 후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와 협상을 벌이지만, 뤼미에르 형제는 멜리에스의 제안을 거절한다.

 결과적으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산업은 오래 가지 못했다. 비슷한 기계를 발명한 사람들이 늘어났고, 사람들은 더 좋은 시설을 갖춘 극장으로 옮겨 갔다. 뤼미에르 형제는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결국 제작을 중단하고 만다.

 한편 조르주 멜리에스는 당시 '로베르우댕'이라는 마술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1896년 초, 멜리에스는 독학으로 영사기를 개발했다. 이로써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의 경쟁이 시작된다. 뤼미에르 형제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담은 반면에 멜리에스는 마술적 트릭을 영화에 적극 적용했다. 멜리에스가 만든 최초의 트릭 영화는 '사라진 귀부인'(1896)이다.

 1897년, 멜리에스는 온실 형태의 스튜디오를 만든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스튜디오다. 이 스튜디어에서 만든 영화는 총 500편에 이른다. 대부분이 편집이나 특수효과를 이용한 공상과학 영화였다. 제작 도중 일어난 카메라 고장으로 '이중 노출', '페이드 아웃', '조리개 기술'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제작한 영화 중 대표작은 '달나라 여행'(1902).

 멜리에스의 공상과학 영화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1903년에는 미국에 사무실을 차리고 영화 판권을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큰 규모의 회사들이 영화 제작에 뛰어들고, 멜리에스의 작품이 낡고 촌스러운 것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미국에서 산업으로 진화한다. 미국 영화는 전쟁 이전까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화와 경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이 전쟁에 휩싸이자, 미국은 유럽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들여와 산업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영화'다. 영화가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미국 최초의 상설 극장인 '니켈로디언'이 문을 열게 됐고, 영화는 미국 노동자들의 최고 유흥 거리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할리우드 시스템'과 함께 '스타 시스템', '스타 배우'가 탄생하며 영화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영화의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등의 스타 배우, '하워드 호크스'와 '존 포드', '앨프리드 히치콕'과 '오손 웰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세르지오 레오네', '마틴 스코세이지'와 '우디 앨런' 등의 감독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영화의 발전과 진보에 기여했다.

 현재 코로나19는 한국 영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계에 큰 시련을 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영화는 영광의 순간뿐만 아니라 좌절과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진일보했다. 그렇기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 '인터스텔라'(2014) 속 명대사처럼 영화계가 반드시 답을 찾아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팬들에게 이전보다 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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