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 - 21세기 한국영화와 시대의 증후
김경욱 지음 / 강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큰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과 취미에는 뭐가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영화' 아닐까?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현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화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 영화평론가 김경욱 씨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살인의 추억',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곽경택 감독의 '친구',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등과 같은 작품을 통해 이 영화들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해당 작품과 한국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시작하자마자 무시무시한 괴물이 한강에 출몰하게 된 원인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면서 정치색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맥팔랜드 사건'으로 알려진 주한 미군의 실제 범죄를 인용했다. 이렇게 대놓고 정치적인 영화 속 공권력은 괴물이 잡아간 사람들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공권력과 미군은 괴물의 위험성을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의 위험성으로 바꿔치기한다. 소위 '물타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괴물을 잡을 시도는 하지 않고, 한강을 통제하면서 괴물과 접촉한 이들을 격리하고 조사한다.

 공권력은 괴물에게 잡혀간 강두(송강호)의 중학생 딸인 현서(고아성)를 구하는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몰두한다. 이에 괴물과의 싸움은 강두와 그의 가족 구성원에게 떠넘겨진다.

 드디어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강두는 괴물의 입속에 있는 현서를 구해내려 하지만, 현서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분노한 가족은 괴물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공권력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현서를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이 영화에서 괴물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면 한국은 미국의 반식민지에 가깝고, 공권력은 무능한 데다 무기력하다. 영화의 에필로그, 한강에는 프롬알데히드를 대량 흡입한 괴물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강두만이 총을 준비한 채 두 눈을 부릅뜨고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까 지켜본다. 만약 괴물이 출현한다면, 강두는 또 다시 혼자 괴물에게 맞서야 한다. 결국, 괴물의 출현과 이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2001년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조폭 영화 '친구'를 거쳐 탄생한 '비열한 거리'(2006)의 병두(조인성)는 29살의 밑바닥 청년이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아프고, 돌봐야 할 동생들이 있다. 집은 철거 직전이다.

 하지만 병두에게는 든든한 스폰서가 있다. 바로 황 회장(천호진)이다. 그는 무식하고 촌스러웠던 1990년대 조폭 영화 속 두목들과는 다른 보스다. 그는 주먹보다는 계산기를 강조하고, 부하들을 세워놓은 채 지시하기보다는 넘버 2와 3를 불러 사업을 논한다.

 이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황 회장의 뒷면은 여느 조폭 두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필요할 땐 이용하고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두는 이런 황 회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병두를 죽인 세 사람인 황 회장, 민호(남궁민), 종수(진구)는 한자리에 모여 술을 마신다. IMF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소위 말하는 '88만 원 세대'에 해당하던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비슷한 세대인 친구와 형님을 배신하고, 부모 세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들은 황 회장의 자리에 오르려고 싸우지 않고 그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먹으려 혈투를 벌인다. 이들의 유효기간이 다하면 황 회장은 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그들을 제거할 것이다. 결국, 비열한 거리는 비루한 청년 세대와 이들을 이용한 후 버리는 비정하고 비열한 기성세대, 이와 같은 기성세대로부터 젊은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혹은 않는 사회를 나타낸다.

 문화와 예술은 사회와 시대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문화 속 하나의 범주로 존재하는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는 현 시대와 사회의 모습과 맥락 등을 담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화는 관객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직시하도록 돕는다. 나는 이 같은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며,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앞의 기준에 부합하는 영화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국내 영화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코로나19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면, 좋은 영화들이 더욱 많이 공개돼 영화팬들과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믿으면서 기다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