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의 시대 - 펭수 신드롬 이면에 숨겨진 세대와 시대 변화의 비밀
김용섭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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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작년 연말에 있었던 '2019년 올해의 인물' 선정에서 누가 1위에 올랐는지 알고 있는가? K-Pop의 대표 주자 BTS? 새로운 트로트 여왕 송가인? 둘 다 아니었다. 1위는 놀랍게도 사람이 아닌 남극 출신의 펭귄인 '펭수'였다. 이것은 최초로 동물이 올해의 인물 1위에 꼽혔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연말을 화려하게 수놓은 펭수는 자신의 인기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출시 하루 만에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펭수로 하겠습니다)와 심심치 않게 광고에 등장하는 광고 모델 펭수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가히 '펭수의 전성 시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펭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안티 꼰대'를 들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안티 꼰대와 관련돼 있는 주체를 소개할 때 '2030 세대', 즉 '밀레니얼 세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2030 밀레니얼 세대의 대다수가 펭수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들이 펭수에게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단순히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펭수가 자신들을 대변해 기성세대와 사회에 바른 말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성세대와 기존의 시각으로 볼 때 펭수는 무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펭수의 행동은 나이가 곧 서열이자 지위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반발이다.

 한편 펭귄은 주로 집단생활을 한다. 그래서 집단 내의 서열과 위계질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은 한국인의 의식과도 연관돼 있다. 집단주의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서열주의가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꼰대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끈끈한 연대를 지향하는 기성세대와 느슨한 연대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 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사실 '꼰대 문제'는 2030 세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서열화된 집단에서 벌어진다. 이 점을 고려해봤을 때, 집단주의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펭귄인 펭수가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펭수의 행동 방향은 위계질서에 눌린 한국인의 욕망과 사회 부조리를 향한 저항과 같은 트렌드에 맞물려 있다. 어떤 말이 유행할 때는 언어적 이슈에만 그치지 않는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가 시대정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티 꼰대는 2019년을 대표하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안티 꼰대 정신'은 트렌드가 됐으며, 패러다임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안티 꼰대가 기성세대의 미덕과 성공 방정식을 뒤집는, 새로운 세대와 시대의 솔직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펭수가 출연하는 <자이언트 펭TV>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양 예능에서 부모와 아이 모두 볼 수 있는 종합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아갔다.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에서 나이는 상관이 없다. 펭수의 행보는 유튜브와 EBS에만 머물지 않고 타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이모티콘을 출시하고, 에세이 다이어리를 내고, 굿즈를 내는 등 다양하게 이뤄져왔다. 이 같은 '콘텐츠 크로스오버'는 장르와 형식을 넘어 타깃 대상까지 넘나든다. 엄밀히 말해 이제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나이로 타깃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펭수의 팬을 가리켜 '펭년배'라고도 하는데, 펭년배의 등장은 나이를 초월해 모두가 펭수를 좋아하고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나이로 세대를 구분하는 기존 관성에 금이 갔음을 보여준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펭수가 보여준 한국 사회 변화의 증거다. 펭수가 한국 사회를 바꿨다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바뀌고 있고, 시대 진화의 '티핑 포인트'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확하다.

 펭수의 명언은 2030 세대 대부분이 좋아하는데, 사실 그렇게 특별하거나 새로운 메시지는 아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메시지와는 다르다. 이는 펭수의 세계관이 2030 세대의 보편적인 인생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2030 세대가 펭수의 어록을 되뇌고, 유행어처럼 퍼뜨리는 이유는 그들의 현재 모습과 인생관이 기성세대가 평가하는 것처럼 실패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2030 세대에게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인생관이 필요했다. 그리고 기성세대식 성공과는 다른 성공이 필요했는데, 그 속에서 개성과 취향, 솔직함과 자기만족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2030 세대를 필두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펭수는 '연예인'에 가깝다. 따라서 펭수의 인기를 지속시키려면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통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 펭수는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슈퍼 스타로서 자신의 행동과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환경, 젠더, 정의, 윤리 등에 관한 상식적인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이 밖에 펭수의 가치가 커지고 펭수로 인한 수익이 늘어날수록, 이해관계를 둘러싼 사람들이 만들어 낼 갈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을 잘 해결하는 것도 펭수 열풍을 지속시키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펭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꼰대 논쟁의 중심에 있는 2030 세대로부터 큰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펭수의 시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현재의 한국 사회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펭수가 앞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2030 세대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과 고민, 사회와 기성세대를 향한 바람 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춰봤을 때, 펭수의 인기를 단순한 현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이를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떠한 상황에 있으며, 앞으로는 어떠한 사회로 나아가는 게 좋을지 등에 대해 세대와 상관없이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펭수의 성공에는 반드시 합당한 사회문화적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앞으로의 시대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10살이지만, 솔직하고 속 깊은 펭수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위해 이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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