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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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책을 읽고 글을 쓸까?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를 만들고 확장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글을 제대로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우리가 대표적인 고전인 <<논어>>를 읽으면서 앞서 말한 사람이 되는 것을 간신히 희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자신의 생각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직접 정성스럽게 <<논어>>를 읽은 후 그 뜻을 자신만의 견해로 해석했다.  

 나는 김영민 교수가 언급한 인간상을 '우리가 간신히, 그리고 간절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책을 읽을 때 글을 제대로 읽고 그 뜻을 깊게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두는 동시에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김 교수가 정성스럽게 읽고 해석한 <<논어>>의 내용을 살펴보자.


"고전의 메시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서두르는 동안 콘텍스트가 주는 다채로운 경지는 모두 놓치게 되고, 경주 끝에 얻은 만병통치약은 사이비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명된다. 콘텍스트가 주는 경관을 주시하며 생각의 무덤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인간의 근본 문제와 고투했던 과거의 흔적이 역사적 맥락이라는 매개를 거쳐 서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오래전 죽었던 생각이 부활하는 사상사적 모멘트moment이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 16~17p


"논어에 따르면, 제대로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미워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공자는 어설픈 평화주의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 하고 말하지 않는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에서 "저 사람"을 맡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공자이다. 공자에 따르면, 비타협적으로 살 때라야 비로소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확히 좋아하고 미워해야 한다. 공자는 말한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고.- 94~95p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려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려면, 무능을 넘어 배우는 일 자체에 대해 배우려면, 메타meta 시선이 필요하다.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 극복 대상이 된 3인칭의 자아뿐 아니라, 대상화된 자신을 바라보는 1인칭의 자아가 동시에 있다. 메타 시선을 장착한 사람은 대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발언을 삼가는 사람, 자신이 알 수 없는 큰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메타 시선이 있는 이는 무지를 그저 선언하기보다, 질문한다. 『 논어』 속의 공자는 제자들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가 공자보고 예를 안다고 했나? 매사에 묻기만 하는데." 그러자, 공자는 말한다. "그렇게 묻는 것이 예이다."

 정교한 질문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훈련된 행위이며, 대상을 메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메타 시선을 유지하는 일은 많은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152~153, 155p


"공자가 국가가 지배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한 소규모 가족 단위를 중시했다는 이유로 공자를 국가주의의 선구자쯤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 논어』 속 공자는 대개 국가의 과도한 활동을 제한하는 편이었다. 『 논어』에서는 과도한 세금 징수나 국가의 무력 수행 등에 반대하는 공자의 언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국가 영역이 많은 사회적 기능을 떠맡는다는 점에서, 공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는 '작은 국가'임에 틀림없다. 공자의 이상 국가는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덕을, 바람직한 성정을 기를 수 있는 공동체이지, 법이 삶의 국면마다 개입하는 '거대한' 조직이 아니다." - 181~182p


 김영민 교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 논어』를 읽고 해석했다. 이를 통해 김 교수는 본인이 말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성취했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꼭 『 논어』를 읽어야만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자신이 좋아하는 책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해 보자. 이로써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를 세우고 공고화하기 위해 글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간신히, 그리고 간절히 희망하는 동시에 이를 이루고자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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