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미술관 - 아픔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나?
김소울 지음 / 일리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나는 그림에 관해 문외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명화라고 인정받는 그림들도 별다른 감흥 없이 훑어보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된 책인 <<치유 미술관>>은 미술에 관심도 없고 상식도 없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참 흥미로웠다. 가상 인물인 '닥터 소울'이라는 심리치료사가 15명의 화가를 만나 상담을 진행한다. 이 과정 속에서 화가들은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이 그림들이 현재 명화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구성 자체에서 색다름을 느끼다 보니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그들이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아픔이 그림에 어떻게 담겨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졌다.

 <<치유 미술관>>은 가상 공간인 '소울마음연구소'의 내담자 일지 내용을 묶은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닥터 소울'이 이미 세상을 떠난 15명의 화가를 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내담자는 반 고흐, 모네, 마네 등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는데, 다들 마음이 아파 고통을 겪었다. 이들은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 화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 책이 가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내용이 지어낸 것은 아니다. 저자가 필요한 상황만 설정했을 뿐 결정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다. 언급하는 내용의 대다수도 실제로 화가들이 했던 말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그들의 말과 표현을 가상 상황에서 풀어낸 것이다. 결국 <<치유 미술관>>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화가들의 실제 이야기, 즉 팩트와 '닥터 소울'을 만난다는 픽션을 적절히 섞은 팩션(faction) 형식의 책이다. 15명의 화가를 모두 소개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 2명의 이야기를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를 소개한다. 뭉크는 5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3살 때에는 누나인 소피아를 잃었다. 그리고 32살이 되던 해에는 동생인 안드레아가 그의 곁을 떠난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온 뭉크는 '공황장애·우울증·신경쇠약·불면증'을 앓게 된다. 이런 아픔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절규>다.

 그림 <절규>를 멀리서 보면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고, 피오르(fjord, 협만)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이 느껴진다. 또 피오르의 바닷물이 마치 살아 꿈틀거리듯 표현됐고, 붉은색의 하늘과 바닷물의 경계가 모호하게 그려졌다.

 어느 날 뭉크는 하늘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하고, 온 세상이 구불구불 어지럽게 뒤섞이고, 피오르 바닷물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껴 난간에 힘 없이 기댔다. 그때 세상의 끝까지 닿을 듯한 절규를 듣게 됐는데, 이로 인해 작품명이 '절규'로 정해졌다.

 그림 속 인물을 보면 상체는 명확한 반면, 하체는 사라지듯 흐물흐물하게 그려졌다. 다리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그림의 경우,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가 속한 조직, 예를 들어 직장이나 사회·가족 혹은 대인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실제로 뭉크는 어릴 때부터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고, 어디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그림 속 인물은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이것은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규>의 주인공은 가운데에 있지만, 그 위치는 매우 아래쪽이다. 이처럼 인물을 바닥쪽에 그린 것은 자신의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뭉크는 <절규> 외에도 몇 가지 그림을 더 그렸는데, 그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과 죽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결국 뭉크의 작품 대부분은 어려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남동생을 잃어 느끼게 된 아픔과 이로 인해 생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화가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다. 그녀는 7살 때 어머니를 잃었고, 18살 때는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결과로 그녀는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안고 살게 됐다.

 젠틸레스키는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런데 화실 선생님이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는지 계속 치근덕댈 뿐만 아니라 둘만 있을 때에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젠틸레스키는 스승의 행동을 보고 <수산나의 두 노인>을 그렸다. '수산나'는 성경에 나오는 여인이며, 그녀의 뒤에 있는 두 노인도 성격 속 인물들이다. 두 노인 중 검은 머리의 노인은 젠틸레스키의 선생인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리고 두 노인 앞에 있는 수산나는 타시에게 능욕당하는 젠틸레스키 본인을 빗댄 인물이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타시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한 것이다. 이 일로 그녀는 PTSD 증상을 보이고, 꿈을 꿀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일의 장면을 보게 된다. 

 큰 상처를 입은 젠틸레스키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은 그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그림의 본 내용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유디트가 베는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을 통해 남자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복수의 대상은 남성 전체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그녀의 자화상이고, 유디트에게 당하는 홀로페르네스는 타시의 얼굴이다.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젠틸레스키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녀는 결혼 후에 <루크레티아>를 그린다. '루크레티아'는 고대 로마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그녀는 당시 로마의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 일을 겪은 후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자결을 하는데, 그 장면을 그린 게 바로 <루크레티아>다. 이 그림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한 가지는 과거의 기억(성폭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젠틸레스키 자신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비장하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과거의 기억을 잘라내고 새롭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아픔을 겪은 젠틸레스키지만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로 불린다. 그녀는 여성이 숨죽여 살아야 했던 시기에 그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이 책에서는 젠틸레스키를 '카이사르의 용기를 품은 여성'이라고 소개한다. 조심스럽지만 그녀가 겪은 아픔이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여성 화가들, 아니 그 어떤 여성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녀의 마음과 이 마음의 근원에 위치한 아픔은 그녀가 그린 명화들에 담겨 지금까지 그 의미와 빛을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명의 화가와 그들이 겪은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이 담긴 작품을 알아봤다. 모두 내가 알고도 그냥 지나쳤거나 아예 몰랐던 작품들이다. 나는 이런 명화에 사회적·시대적 메시지만 담겨 있다고 생각했을 뿐, 화가 개인의 아픔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그림과, 화가들의 아픔 등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됐고, 이 공감은 그림을 색다르게 보게 했다.

 <<치유 미술관>>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을 때 화가와 저자가 걸어온 길을 유심히 살펴 그들의 내면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한다면 그림과 글의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함께 볼 수 있어 작품 속 의미와 메시지를 더 깊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치유 미술관>>은 단순한 미술 혹은 심리 치료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미술에 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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