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아미 컬처
이지행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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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하면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다. 자로 잰 듯한 칼군무, 서사에 기초한 음악 등. 이것들 외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들의 팬덤 '아미(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미는 단순히 BTS에게 꽃길을 깔아준 팬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아미란, 단순히 BTS를 세계 최정상의 가수에 올려 놓은 팬을 초월해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걷고 있는 동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BTS가 거둔 성과는 화려하다. 한국 가수 최초의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 빌보드뮤직어워즈 본상 수상, 전 세계 메인 스타디움 공연 매진, 유엔총회 연설, <<타임>> 표지, 문화훈장 수상, 그래미 노미네이션' 등이 이를 말해준다. 이 중 어느 하나 '한국 가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이처럼 BTS가 이뤄낸 성과의 원동력으로 전 세계 언론이 한결같이 짚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들의 팬덤인 아미다. 아미가 BTS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메시지를 체화하고 전파하며 보여주는 글로벌 결속력은, '취향의 공동체'가 어떤 대상을 향해 신념에 가까운 열정을 보여줄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BTS의 시작은 초라했다. 중소 기획사 출신의 가수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의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BTS는 무대 뒤의 일상과 모습을 인터넷에 꾸준히 업로드했다. '방탄 로그' 같은 자체 콘텐츠에는 순간순간의 불안과 각오가 담겼다. 방송 출연의 대안으로 제작한 자체 콘텐츠에 그들만의 서사가 덧붙는 순간이었다. BTS는 한국에서 2015년에 'I NEED YOU'라는 곡으로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2014년 KCON(K팝 콘서트)에서 엄청난 갈채를 받으면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보인 바 있다. 2014년 발매한 앨범 'SKOOL LUV AFFAIR'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에서 인지도조차 없던 BTS의 앨범을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3위에 올라가게 했다.

 BTS 팬의 대다수는 기본적으로 BTS만 좋아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다른 K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오로지 BTS에만 열광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생겨난 반(反) BTS 정서는 오랫동안 전 세계의 아미를 괴롭혀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격은 글로벌 아미의 결속력을 강화했다. 아미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은, 후에 해외 팬들이 오직 BTS만을 위해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됐다. 결국 BTS와 아미는 K팝의 변두리에서 출발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현재 BTS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이 밴드이고, 아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팬덤이다.

 아미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투표 문화다.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는 2014년부터 '아이하트뮤직어워즈'를 개최해 왔다. 2018년 1월, SNS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BTS가 보이 밴드와 팬덤 부문의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소셜 투표로 진행된 수상자 선정 방식은 간단하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후보의 해시태그를 만들거나 아이하트의 홈페이지에서 직접 투표를 하면 된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BTS는 한국 계정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2019년 5월 기준으로 BTS의 팔로워는 2,000만 명 이상이었는데,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팔로워가 새롭게 유입되고 있다. 그래서 트위터는 BTS와 아미의 소굴이나 다름없다.

 가장 큰 위협은 베스트 팬덤 부문에 함께 오른 한국 아이돌 엑소(EXO)의 팬덤이었다. 그러나 아미는 각 부문의 경쟁자들을 1억 표 이상의 차이로 따돌리고 두 개 부문을 모두 거머 쥐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해시태그 투표는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투표였다. 2017년 5월, BTS는 팬들의 환호 속에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수상자에 올랐다. 전 세계의 아미들이 빌보드 시상식과 온라인을 점령하며 BTS를 미국의 메인 시상식장으로 보낸 것이다. 사실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때는 2015년이었다. 하지만 팬덤은 서구의 메인 음악 시장이 BTS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SNS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선정 방식은 아미에게 최적화된 것이었다. BTS는 2018년 2년 연속으로 빌보드 톱소셜 아티스트 부문의 수상자가 되는 동시에 그들의 새 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의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일주일 후, BTS의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2019년, BTS는 빌보드 본상인 톱 듀오·그룹 수상자에 오르면서 빌보드 본상을 탄 아시아권 최초의 가수가 됐다.

 BTS와 아미의 주무대는 트위터다. 2018년 한 해 동안 트위터에서 BTS와 관련해 생산된 해시태그는 1억 개가 넘는데, 이 중 대부분이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다. 트위터의 트렌드 순위는 아미에게는 접근하기 쉽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료 홍보 수단이다. 트위터상의 아미 사이에서는 BTS와 관련된 것들을 해시태그로 만들어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리는 일이 하나의 관행이다.

 트위터에서 이뤄지는 아미의 활동을 본 미디어는 이를 기초로 기사를 쓴다. 그만큼 아미는 트위터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타래(스레드) 홍보'다. 아미는 트위터에서 BTS에 관심을 표하는 일반인들에게 BTS를 홍보하기 위해 타래를 쓰곤 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발표한 2018 결산 글로벌 아티스트 순위에서 BTS가 2위를 차지했다. 디지털과 앨범 판매, 스트리밍, 뮤직비디오 뷰 수 등 한 해 동안 전 세계 음악 시장을 대표하는 지표를 집계해 만든 차트다. 답은 아미의 압도적인 구매력이었다. 그들은 실물 앨범과 디지털 음원을 전투적으로 구매했다. 이 덕분에 BTS는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실물 앨범을 두 번째로 많이 판매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BTSX50States는 미국 50개 주의 BTS 팬 사이트 연합으로 이들은 라디오 홍보, 풀뿌리 캠페인, 광고, 프로젝트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BTS를 알렸다. 이중에서 라디오는 미국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들은 라디오 공략에 공을 들였다. 각 지역의 아미들은 자신이 사는 곳의 라디오 방송사들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방송사를 분류하고 디제이를 만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이 같은 미국 아미들의 노력과 BTS의 미국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상승하자, 라디오에서 BTS의 노래가 서서히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아미들은 라디오에서 노래가 나오면 영상을 찍어 디제이에게 전송했다. 이는 곧 더 많은 선곡 횟수로 이어졌다.

 2019년 BTS의 새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가 출시된 첫 날, 미국 라디오들은 그 날 하루에만 타이틀 곡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무려 850회에 걸쳐 틀어줬다. 이 노래는 단숨에 미국 팝라디오에어플레이(Pop Radio Airplay)의 메인 차트 41위에 올랐고, 한 달 뒤에는 이 차트의 톱 20에 들었다. 미국 아미들의 라디오를 뚫기 위한 오랜 헌신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K팝이 유튜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2000년대 중반, 이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끈 것이 바로 유튜브 리액션 비디오였다. 리액션 비디오를 생산하기 시작한 주요 집단은 '게이 커뮤니티'였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하위 문화로서 K팝을 소비했다.

 LGBTQ 팬들이 본격적으로 BTS에 호의를 보인 것은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아티스트에 대한 멤버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BTS는 성소수자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성을 넘어 BTS의 존재 자체가 LGBTQ 커뮤니티에게 위로가 된 것은 'LOVE YOURSELF' 시절부터였다. BTS의 메시지는 세대와 인종을 넘어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넸지만, 그중에서도 이 메시지를 깊이 각인한 사람들이 바로 LGBTQ 팬이었다. LGBTQ 팬들이 BTS 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첫째, BTS의 메시지, 둘째, 아미의 포용력 때문이다.

 K팝에 무지한 북미와 유럽의 음악 팬들이 BTS의 열렬한 팬이 되면서 기존의 K팝 팬 구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K팝과 멀리 떨어진 지역, 특히 미국 팬들의 열렬한 팬덤이 유독 BTS에게만 형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언더독 서사'다. 소규모 기획사 출신의 주목받지 못한 출발, 유독 악의적인 루머와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음악으로만 답해온 BTS의 모습이 언더독의 성공 신화에 열광하는 서구,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의 구미에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들의 언더독 정체성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로 취급받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에게 동일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7년 이후, 팬의 폭이 훨씬 다양해졌지만 기존의 미국 BTS 팬 중에서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의 유색 인종과 퀴어 팬들이 눈에 띄게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소수자로서의 정서적 공감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미의 언어 문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동시대 현실에서 주류 언어와 비주류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지와 감정이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해외 팬덤을 관찰할 때 주목할 만한 점은 언어의 장벽이 주는 좌절감이 역전된다는 사실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나 네이버 V앱의 '달려라 방탄' 같은 일부 콘텐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BTS 관련 콘텐츠에는 영어 자막이 없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발적인 팬 번역가인 '번역계'가 영어 자막을 붙이기는 한다. 이때까지 영어권 아미 등은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1 세계 시민으로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런 감정은, 세상에서 자신이 위치하고 있는 곳과 타 문화권에 관해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다른 K팝 팬덤에도 번역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아미의 번역가와 다른 K팝의 번역계를 분명하게 구분짓는 점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번역은 단지 뜻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문화적 지식이 요구된다. 그들 스스로 공부하면서 변역을 하는 것이다.

 BTS가 지금처럼 세대와 인종을 뛰어넘는 팬을 거느리게 된 저변에는 깊은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BTS에 관한 공감대 말이다. 십대와 이십대 팬들에게는 롤 모델이자 공감 가는 동세대로, 삼십대와 사십대 팬들에게는 자신이 지나쳐 온 청춘의 불안한 연약함과 성실한 자기 극복의 상징으로서, BTS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모든 세대가 동참하는 것이다.

 한편 BTS의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접하면서 생긴 변화에 대한 열망은 팬이라는 개인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대한 변화의 열망으로 확장된다. 바로 이때가 그저 소비자 주체로 치부돼 왔던 팬덤이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개인적으로 BTS의 노래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며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메시지다. 누군가는 이것이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감성적인 메시지일 뿐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미는 이런 비판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BTS의 메시지를 개인의 삶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전파해 지금보다 더 나은 개인과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결국 아미는 BTS가 던진 메시지를 기초로 개인을 넘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가려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BTS와 아미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난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BTS와 아미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 없이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다.

 끝으로 현재 진행형인 BTS와 아미의 동행도 언젠간 끝을 맺으며 K팝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개인과 사회의 더 나은 변화를 바라며 음악과 팬덤을 통해 함께 걸어온 BTS와 아미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동행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켜본 동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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