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작품 <<파친코>>. 강렬한 도입부만큼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의 삶도 참 기구하다. 도대체 역사는 각 인물들을 어떻게 망쳤으며, 그들은 어떻게 이에 맞서며 살아갈까? <<파친코>>는 재일 한국인 가족의 처절한 삶을 통해 이를 그려냈다.

 부산 영도가 고향인 훈이 엄마와 아버지. 그들의 유일한 혈육인 훈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청이인 데다가 한쪽 발이 뒤틀린 장애까지 갖고 있다. 이런 아들을 키우는 훈이의 부모는 먹고살기 위해 하숙을 치기 시작한다.

 훈이가 27살이 되던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다. 그럼에도 훈이의 부모는 생계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1년 뒤, 훈이는 한 가난한 집안의 막내 딸인 양진이와 결혼한다. 둘은 결혼해 아이를 낳긴 했지만 모두 죽고 딸인 선자만 살아 남았다. 훈이는 유일한 자식인 선자를 아끼지만, 선자가 13살이 되던 해에 결핵으로 죽고 만다. 남편과 시부모를 모두 잃은 양진은 혼자서 선자를 키우고 하숙집을 운영해 나간다.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1932년, 평양에서 백이삭이라는 목사가 양진의 하숙집을 찾아 온다. 그의 형인 백요셉이 오사카로 가기 전 이 하숙집에 머문 적이 있어 동생에게 오사카에 오기 전에 한번 묵으라고 추천했기 때문이다. 이삭은 이미 하숙객으로 꽉 차 있는 양진의 하숙집에서 지내게 된다.

 한편 선자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간다. 필요한 물품을 다 사고 집에 돌아가려 할 때, 일본인 학생들이 선자를 에워싸고 희롱하기 시작한다. 선자는 그들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 없어 당하고만 있었다. 이때 시장에서 생선 중매상으로 일하는 고한수가 일본인 학생들을 쫓아내 선자를 구해낸다. 이 일로 둘은 가까워졌고 만나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그리고 성관계까지 맺게 되면서 선자는 한수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선자는 오사카에 갔다 돌아온 한수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 한수는 오사카에 자신의 본처가 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3명의 딸을 낳았다고 고백한다. 선자는 이 말에 충격을 받는데, 한수는 그런 선자에게 엄마인 양진과 뱃속의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도록 집을 구해주겠다고 말한다. 선자는 한수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해 버린다.

 선자는 아이를 가진 사실을 양진에게 말했고, 양진은 이 일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아이를 낳게 되면, 선자가 손가락질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아이를 호적에 올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양진에게 이삭은 자신이 선자에게 청혼을 해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양진은 이를 허락한다. 이삭이 선자에게 청혼하자 선자도 이를 수락한다. 이삭과 선자는 요셉이 있는 오사카로 향한다. 둘은 요셉과 그의 부인 경희가 사는 집에 살게 된다. 이삭은 오사카에서 한 교회의 부목사로 일한다. 얼마 후, 선자는 아이를 낳는다. 비록 이 아이는 한수의 아이지만, 요셉은 이 아이를 자신의 친조카라 생각하고 '노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몇 년 후에는 이삭과 선자 사이에서 또 다른 남자 아이가 태어난다. 이 아이의 이름은 '모자수'다.

 노아가 6살이 되던 1939년의 어느 날, 요셉이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었다. 요셉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이삭의 교회로 간다. 그곳에서 교인들로부터 이삭이 신사참배를 거부해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말을 듣게 된다. 요셉은 곧바로 경찰서로 갔지만 이삭의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이삭이 갇혀 있는 동안, 요셉만으로는 집안 형편이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희와 선자는 장사를 하기로 한다. 경희가 김치를 담그면 선자가 그것을 팔았다. 선자가 한창 장사를 하던 어느 날, 근처에서 숯불구이점을 운영하는 김창호라는 사람이 선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선자의 김치가 맛있다고 소문났다면서 자기 식당에 팔라고 했다. 선자는 김치를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 후에 주겠다고 말하면서 창호를 돌려 보냈다. 며칠 후, 선자와 경희는 김치를 가지고 창호의 가게에 갔다. 창호는 선자와 경희에게 자신의 가게에서 반찬을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며 제안한다. 선자와 경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노아가 8살이 되던 해였다. 노아가 집에 돌아왔는데 거지꼴을 한 사람이 집에 쓰러져 있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이삭이었다. 이삭은 2년이 넘는 투옥 기간 동안 고문을 심하게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원래 몸이 약한 체질이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선자가 그를 간호했지만 애석하게도 이삭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44년 12월, 창호는 선자와 경희에게 전시 체제로 인해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경희와 함께 시장으로 간다. 홀로 남은 선자가 가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가게에 찾아왔다. 그는 한수였다. 선자는 깜짝 놀랐다. 한수는 충격을 받은 선자에게 창호의 가게는 사실 자신의 가게이고, 선자가 오사카에 온 이후부터 그녀를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한다. 한수는 선자에게 곧 미군이 오사카를 폭격할 테니 가족과 함께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농장으로 가라고 말한다. 선자는 집으로 가 떠날 준비를 하지만, 요셉은 나가사키에 일자리가 있다면서 나가사키로 떠난다. 결국 요셉을 제외하고 선자와 경희, 노아, 모자수만 한수가 알려준 농장으로 피난을 간다. 선자와 나머지 가족이 농장에서 전쟁의 참극을 피하고 있을 때, 한수는 한국에 있는 양진을 찾아 농장으로 데려온다. 또 부하들을 시켜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부상당한 요셉까지 찾아 농장으로 데려온다. 요셉은 큰 부상을 당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 와중에 한수가 노아의 친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수가 야쿠자의 보스라는 사실까지 알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선자의 가족은 다시 오사카에 돌아온다. 양진과 선자는 장사를 하고, 경희는 아픈 요셉을 간호했다. 노아는 대학 입시를 봐도 되는 나이까지 자랐고, 모자수도 학교에 다니게 됐다. 두 형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아왔다. 하지만 노아는 공부를 잘했기에 동생인 모자수보다는 차별을 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모자수는 성적도 안 좋아 더 많은 차별을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주먹으로 자신을 멸시하는 상대를 혼내줬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자 모자수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모자수는 싸움에 휘말리는 게 피곤하다고 여겨 방과후에는 엄마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한창 엄마의 일을 돕고 있던 모자수는 배가 고팠는지 김밥을 사 먹고 오겠다며 가게 밖으로 나선다. 그러다 양말 가게 점원인 지아키를 보고 그녀에게 가 대화를 나눈다. 둘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 손님이 가게로 들어와 지아키를 희롱한다. 모자수는 그 손님에게 주먹맛을 보여줬다. 모자수는 곧바로 엄마의 가게로 도망쳐 왔는데 경관이 가게로 찾아온다. 경관은 선자에게 몇 가지를 물으면서 조사를 한다. 이때 선자의 가게 단골이자 파친코 게임 가게 사장인 고로가 들어와 경관에게 몇 마디 하자 경관이 돌아가버린다. 고로는 모자수에게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지 말고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라고 말했고, 모자수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모자수는 고로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노아는 와세다대학에 합격한다. 하지만 등록금이 문제였다. 이것 때문에 고민하던 선자와 노아에게 한수가 손을 내민다. 한수는 노아의 등록금을 내주고 도쿄에 있는 자취방까지 잡아준다. 선자와 노아가 한사코 거절했지만 한수는 막무가내였다. 한수 덕분에 노아는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들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형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모자수는 고로의 새로운 파친코 가게 운영인이 된다. 그리고 유미를 만나 결혼해 솔로몬이라는 사내 아이를 낳는다.

 학교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노아는 한수가 자신의 친부임을 알게 된다. 노아는 오사카로 가 선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선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얘기한다. 노아는 자신의 친부가 야쿠자 두목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오사카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이후 노아는 선자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그 내용은 대학을 그만두고 일을 하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는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는 것, 한수가 지원해준 돈을 갚겠다는 것 등이었다.

 나가노에 도착한 노아는 그곳에 있는 파친코 매장에서 경리 일을 맡았다. 노아는 일을 아주 성실하게 잘해 일하고 있는 파친코의 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같은 경리 직원인 리사와 결혼해 아이 넷을 낳는다.

 선자는 노아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수가 노아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며 그녀를 차에 태우고는 나가노로 향한다. 그곳에는 노아가 운영하는 카지노가 있었다. 선자는 바로 노아에게 달려간다. 모자는 오랜만에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노아가 선자에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순간 큰일이 나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한 후 노아는 선자를 돌려보내면서 곧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약속한다. 며칠 후 선자는 한수로부터 노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노아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은 후로도 양진, 선자, 경희, 모자수, 솔로몬은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아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게 잘 이뤄졌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으로 살아가길 바라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노아와 모자수, 솔로몬의 심정이 잘 표현됐다고 본다. 이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 일본 국적을 취득한 노아의 심정이 아프게 느껴졌다. 또 일본에게 나라를 뺏긴 상황 속에서도 먹고사는 문제를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서민들의 감정도 세세하게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선자와 그녀의 손자인 솔로몬까지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이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역사가 이들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몰아 넣었다. 그럼에도 선자와 가족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강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삶을 꾸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치열한 삶은 단순히 생계 때문만도 아니고 일본에서 인정받으려는 노력만도 아닌 개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파친코에서 일하는 노아와 모자수를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선자의 가족에 비해 한수의 비중은 작기에 한수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불법을 자행하며 장사를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능력이 닿는 선에서 법을 준수하며 정직하게 일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끝으로 최근 한일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어지럽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은 명확하다. 선자의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각종 혐한 시위와 일본 내에 존재하는 재일 한국인을 향한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굳세게 살아가는 현재의 재일 교포들도 개개인으로서의 존엄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역사는 선자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들을 고난으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선자와 그녀의 가족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한국인들 역시 이런 역사에 관계 없이 꿋꿋이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비극 속에서도 강인하고 굳세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이번 리뷰의 제목을 '역사가 그들을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정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