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은 하루를 여는, 즉'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김영민 교수는 이런 아침에'끝'을 의미하는 '죽음'을 생각하면 좋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발상의 전환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왜 김영민 교수는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인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을까? 책에 있는 구절을 통해 알아보자.


 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비누를 가득 칠한 채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속한 정치공동체도 이미 죽었다"라고. 무슨 말이지? 나는 멀쩡히 살아서 이렇게 세수를 하고, 정부는 어김없이 세금을 걷어가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변함없이 그다지 질이 높지 않은 쇼가 상연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을 열면서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실제로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가 이미 죽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온다. 나와 공동체는 이미 죽었는데 현재 부고가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 17~18p


 고도성장을 통한 중산층 진입, 절대악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과거 수십 년간 이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했던 두 약속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낯설어하게 되었다. 이것이었던가, 우리가 열망했던 것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구호가 낯설게 느껴지게 된 이 공동체의 선택은 이제 무엇인가?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을 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다. - 19~20p


 어떤 인간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은 매순간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이는 아침에도 예외 없이 일어난다. 아침은 하루를 여는 시간이지만, 이런 아침에도 우리는 한 순간 한 순간 죽어간다.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 머리를 감을 때, 아침 뉴스를 볼 때, 출근길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죽어간다. 이런 현상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면 좋을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 봤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제시한 내용을 삶과 죽음에 관해 끊임없이 고뇌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저자의 글을 곱씹어보면 좋을 듯하다.

 끝으로 우리 모두는 죽기에 아침에만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밝혔듯 우리는 아침에도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의 모든 순간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침을 포함해 틈이 날 때마다 우리 존재와 공동체의 죽음을 생각하고 추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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