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 주성하 기자가 전하는 진짜 북한 이야기
주성하 지음 / 북돋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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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평양' 하면 거리를 메운 호전적인 문구와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는 주민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바라본 평양은 북한 체제의 상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평양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동아일보 소속의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이 변화는 '자본주의'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평양과 자본주의라니,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부터 이에 대해 알아보자.

 평양의 자본주의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은 '장마당'일 것이다. 이미 장마당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내에 많이 소개됐지만 이 책을 기초로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한다.

 주성하 기자는 평양의 장마당을 소개하면서 "장마당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태어난 북한 주민을 뜻하는 말로, 주 기자가 만든 조어다. 장마당 세대가 태어났을 때는 북한의 국가 배급망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러자 이들의 부모 세대인 "고난의 행군 세대"는 장마당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북한에서는 3대 세습이 이뤄졌다. 새로운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시장 경제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조치 중 하나가 바로 장마당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그러자 북한 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고, 이 과정 속에서 나름의 분업화가 이뤄졌다.

 2000년 이후, 거대 시장으로 발전한 장마당은 북한의 경제·사회적 발전을 견인했다. 2018년 2월 기준으로 북한에서 공인된 장마당의 수는 480여 개였다. 여기에는 장마당으로 인해 파생된 골목 시장과 야시장도 포함된다. 북한 주민은 장마당에서 생활 수요의 80~90%를 해결한다. 장마당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사하는 주민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대략 북한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장마당에서 3분의 2 이상의 소득을 얻는다. 또 "외랑식 (여러 층이 있는 주택에서 각 층의 바깥쪽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복도가 딸려 있는 구조) 아파트"에 장마당이 들어서면, 그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보다 비싸게 거래된다. 아파트에 자리를 잡은 장마당은 다른 장마당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평양을 넘어 북한 전역의 자본주의화를 뜻하는 상징으로 장마당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큰 규모의 장마당 주변에는 작은 규모의 장마당들이 열린다. 이 같은 소규모 장마당에는 가옥을 상점으로 삼아 사업을 하는 개인 기업들이 있다. 개인 기업가들은 소규모 장마당에서 수익을 올리며 시장 경제 원리를 학습했다. 소규모 상인 중 일부는 이를 발판 삼아 보다 큰 국영 기업의 사영화에 뛰어들기도 한다.

 장마당은 자체 환율까지 보유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환율 시스템은 공식 환율과 장마당 환율(시장 환율)로 이원화돼 있다. 향후 북한에 투자를 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북한의 환율 체계를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이 투자 성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공무원 사회에 레벨이 있듯, 북한의 간부 사회에도 엄연한 레벨이 존재한다. 이 말은 뒷돈, 즉 뇌물이 몰리는 자리가 있다는 의미이다. 북한에서는 판사보다 검사가 더 인기 있고 힘 있는 존재다. 기업과 기관을 한번 털었다 하면 무수히 많은 먼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북한의 검사들은 각종 기업과 기관으로부터 뇌물을 두둑이 챙길 수 있다. 그런데 북한 각 지역에 있는 노동당 간부부 해외파견과 소속 담당자에 비하면 검사는 양호한 편이다. 북한 주민이 해외에 나가 일을 하고 싶을 때에는 해외파견과 담당자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은 도장 몇 번 찍어준 대가로 수백 달러의 뇌물을 받는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해외파견과에서 1년만 일해도 몇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뇌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에서 뇌물이 가장 많이 오가는 경우는 직업을 변경할 때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국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직업을 바꿀 때에는 50달러에서 수천 달러의 뇌물을 바쳐야 한다. 또 평양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뇌물을 줘야만 거주지를 바꿀 수 있다. 평양에서 거주할 자격은 보안성과 보위성 같은 보안 기관이 부여한다. 지방 주민이 평양에서 살려면 정확한 줄을 잡아 3,000달러~5,000달러에 이르는 뇌물을 써야만 한다. 주 기자는 뇌물로 욕망을 실현하는 북한의 현실상을 설명하면서 "북한은 중앙에서 지방까지, 위에서 아래까지 뇌물이라는 거대한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 지역에서 목격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살펴봤다. 그럼 이런 북한에서 우리는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평양에서 통할 가능성이 있는 창업 아이템들을 설명하겠다.

 먼저 당구장과 탁구장, 배구장이 있다. 그런데 이 중 당구장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남은 건 탁구장과 배구장인데, 평양에 살고 있는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탁구나 배구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그 이유는 이 둘 중 하나만 잘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식업은 어떨까? 주 기자는 한국 외식업의 평양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서울에 정착한 평양 출신의 탈북자들에 의하면, 한국의 삼겹살집과 한우 불고기 요리집이 평양에 진출할 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국의 미용업과 의류업 등도 평양에서 통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평양에서는 종합화·복합화라는 트렌드가 등장했다. 이 추세로 인해 큰 건물을 지은 후 그곳에 상점과 식당, 사우나를 갖춘 목욕탕뿐만 아니라 수영장, 탁구장까지 몰아 넣는다고 한다. 평양에서 사업을 할 사람이라면 종합화와 복합화라는 화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전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인맥'이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기업을 차려 운영할 때에도 인맥이 큰 역할을 하는데, 외부인이 사업을 하려 할 때는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북한에서 힘 있는 인물을 찾아 인연을 맺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당, 보안서, 인민위원회를 비롯한 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기관과 연계된 인맥의 사슬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사슬의 복잡성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주 기자는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시장 조사와 함께 인맥 조사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맥 말고도 신경을 써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 이 중 하나는 북한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다. 북한에서 사업 기반을 닦으려는 사람이 처음 북한땅에 발을 디디면, 북한 당국은 온갖 좋은 말로 호감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잠시뿐이다. 공장이 들어서고, 기술과 사업 노하우를 어느 정도 전수받은 다음에는 기존의 계약 조건을 바꿔 버린다. 사업자가 이에 대해 항의하면 단수 및 단전 조치까지 해 버린다. 그래서 이와 같은 북한 특유의 전술을 늘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이게 끝이라면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만약 어떤 권력자가 사업상 편의를 봐준다고 해도 이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권력자보다 높은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복잡한 행정 단계로 인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 외에도 대북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 반드시 신경 써야만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지정학적 리스크'다. 북한은 동북아 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태세 전환을 할 수 있는 곳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전반적인 평양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한 권만으로 평양의 곳곳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통인 저자의 글을 통해 평양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이념과 북한 체제라는 키워드만으로 평양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들에만 의존해서는 변화하고 있는 평양과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평양이라는 도시를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로 '자본주의'를 활용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새로운 키워드와 기존의 키워드를 적절히 조합한다면 평양과 북한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최근 남북미 간의 대화 국면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진도를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다. 부디 하루 빨리 남북미가 교차점을 찾아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가는 발걸음을 다시 한번 힘차게 디디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결과로 남북 간의 경제 교류가 활발해져,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는 평양과 북한 전역에서 무궁무진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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