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 개정판
전광용 지음 / 을유문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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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이자 종합병원 원장인 이인국은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한 수재다. 이 박사는 진료 시에 환자의 경제적 능력을 먼저 본다.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받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은 환자는 어떻게든 돌려보낸다. 그래서 그의 병원이 받는 치료비는 타 병원보다 비싸다. 이렇다 보니 그의 병원에는 주로 권력자들과 재벌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인국은 미국에서 공부 중인 딸 나미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것이었다. 인국은 딸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생각을 뒤로 한 채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 씨를 만나기 위해 출발한다. 이때 인국은 그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린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 박사는 유창한 일본어를 앞세워 주로 일본인들을 치료했다. 그 시기 그는 잘나갔다. 하지만, 해방이 찾아오면서 그의 삶에 어둠이 드리워진다. 북쪽에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친일 행위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국 역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죄목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일 투사 치료 거부, 일제의 간첩 행위' 등이었다. 감옥에 갇힌 인국은 생존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러시아어 회화 책 한 권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그 책으로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한다. 생존에 대한 그의 열망이 하늘에 닿은 걸까? 이 박사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감옥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감옥의 책임자인 스텐코프 소좌는 이인국에게 재소자를 치료하라는 임무를 준다.

 한창 전염병에 걸린 죄수들을 치료하던 인국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굴러 들어온다. 스텐코프가 순시를 돌고 있을 때, 인국은 그의 얼굴에 붙어 있는 혹을 발견하고는 수술을 제안한다. 스텐코프는 이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수술이 시작됐다. 인국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수술을 무사히 마친다. 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스텐코프는 인국을 가리켜 "꺼삐딴 리"라고 칭한다. '꺼삐딴'은 영어 단어 'Captain'의 러시아 발음으로, '최고·우두머리' 등을 뜻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국에게 '엄지 척'을 한 것이다. 이렇게 맺은 스텐코프와의 인연을 통해 인국은 아들 원식을 소련으로 유학 보낸다.

 인국은 특유의 생존력으로 위기를 돌파해냈다. 이제 그의 앞에는 비단길만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졌고, 인국은 1·4 후퇴 시에 청진기가 든 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한다. 남으로 내려온 인국은 병원을 차리고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브라운을 만난 인국은 그에게서 미국에 갈 때 소개장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브라운의 집에서 나온 인국은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라는 독백을 하면서 반도호텔로 향한다.

 '꺼삐딴 리' 이인국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로 묘사된다.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에 붙고, 소련군 주둔 시에는 소련에 붙어 연명하고, 미군정기에는 미국을 택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민족'과 '정의',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인국은 처벌과 지탄의 대상이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자연인 '이인국'에 주목했다. 내가 본 자연인 이인국은 자신이 속한 시대 속에서 생존하고자 발버둥친 한 인간이었다. 현대인에게도 생존이 중요하듯,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전쟁을 거쳐온 인국에게도 생존은 절대적인 과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일본과 소련, 미국 주위를 기웃거리며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해 온 이인국을 '기회주의자'라고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살고자 여기저기 배회한 그의 삶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공적 개념 하에서는 이인국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지만, 사적 존재로 바라본 이인국에게는 이 딱지를 쉽사리 붙일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기회'를 좇는 것과 '기회주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에 관해 고민해 보았다. 사전에 의하면, 기회는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이며, 기회주의는 "한결같은 입장을 지니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경향"이라고 나와 있다. 사전의 뜻으로 보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둘을 명확히 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기회 추구'와 '기회주의'라는 기준으로 내가 여태껏 해 온 행위와 앞으로 할 행위를 명확히 나눌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고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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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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