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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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있었던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무드를 조성했다. 이 두 이벤트는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놀라움과 감격을 안겨줬다.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면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북한을 주제로 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책을 발견했는데, 이 중 유독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책의 제목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으로, 외국인 기자 두 명의 저서였다. 제목에 매력을 느껴 알아보니, 주요 내용이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주의적 현상이었다.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가장 경멸한다고 알려진 나라에 자본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현재 북한에서는 자본주의를 향한 이중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중 시장이 돌아가고 있다. 이중 시장 중 하나는 '공식 경제'로,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곳에서 일하면서 임금을 받는 시스템이다. 다른 하나는 '회색시장경제'다. 합법적이진 않지만 북한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마당'으로, 불법이지만 용인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장마당에서 사유 재산을 거래한다. 하층민을 넘어 당과 군의 엘리트들도 이에 동참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양상이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적이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대기근을 겪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난의 행군'이다.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당국은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없게 됐다. 배급 체제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이 몸부림이 위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고난의 행군이 북한 정권과 주민 간의 유대감을 약화시켜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한 셈이다.

 고난의 행군은 공무원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 파탄으로 국가에서 주는 녹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 공무원들은 유사 민영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사 민영 사업이 이뤄지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국영 기업이 사업을 시작하면 개인 사업자가 여기에 합류한다. 사업을 운영하며 생기는 수익 중 60~70%는 경영자의 몫이다. 나머지는 당의 부서와 상급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들어간다. 이렇게 개인 사업자는 자기 수익을 올리고, 당은 예산을 확보한다. 개인 사업자는 장부도 조작한다. 생산품의 양을 허위로 기재한 후, 남는 상품을 장마당에 팔아 이윤을 남긴다.

 한편, 북한의 군인들은 훈련에 쓸 에너지를 건설 현장에서 쓴다. 현재 북한에서는 군이 참여하는 민관 건설 산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평양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북한 경제에서 볼 수 있는 변화상을 살펴봤다. 이제부터는 북한 주민의 삶에 보다 밀접한 옷, 패션, 유행과 관련된 변화를 설명하겠다.

 북한 주민들이 해외 매체를 보다 많이 접하고 자본주의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갖게 되면서, 사회주의 스타일로 본인을 꾸미려는 시도가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옷차림, 머리, 화장, 미의 기준, 성형 수술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북한에는 일정한 의복 규정이 있다. 평상시에는 검정색과 푸른색 옷을 주로 입고, 여성들은 섹시함을 어필하는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청년동맹이라는 단체는 주민들의 규정 준수 여부를 단속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규범을 깨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단속에 걸려도 뇌물을 주고 빠져 나간다. 결국 청년동맹도 뇌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새로운 유행은 북한 내부의 변화와 외부 자극의 만남으로 탄생했다. DVD와 USB를 통해 들어온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 패션이 북한 주민들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함경북도 청진시는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거리가 멀다보니 평양에 가해지는 이념적 통제가 그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청진은 북한의 패션 도시로 부상했다. 청진은 기본적으로 산업 도시인데, 자본주의적 전환이 일어나면서 교역의 허브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이렇다보니 해외 패션이 북한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청진에 상륙한다. 하지만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청진의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단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에 책의 저자들은 청진 출신의 한 여성 탈북자로부터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 들었다. 그 여성 탈북자가 청진에 있을 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스키니진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스키니진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을 주로 이념적 프레임으로 봐 왔다. 분단과 전쟁, 이념 대립을 거쳐온 나라에서 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북한도 자의 반 타의 반 변화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북한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인식 변화를 요구한다. 더 이상 이념의 잣대로만 북한을 바라보고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북한을 봐야 한다.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시각으로 현재의 북한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북한을 예측해야 한다. 이는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에도 중요하다. 북한이 겪는 변화와 앞으로 북한이 나아갈 길이 남북 간의 협상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끝으로 책의 주요 내용과 동떨어져 있지만, 지난해에는 한반도에서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져 우리를 기쁘고 설레게 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올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간 온탕과 냉탕을 오간 남북과 오랜 적대 관계에 있던 북미가 항상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한 이상, 전략과 인내로 어려움을 뚫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적대와 대립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부디 올 한 해 동안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져, 남북과 북미가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함께 걸어가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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