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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 "정치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정치적 목적 하에 이뤄짐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오직 인간만이 정치적인 행동을 하며 살아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No'이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이 1970년대에 네덜란드의 아른험 동물관에서 침팬지 집단을 관찰한 결과로 갈음할 수 있다. 드 발은 아른험에서 침팬지 집단을 관찰하면서 남긴 기록을 토대로 <<침팬지 폴리틱스>>를 펴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침팬지들도 인간처럼 정치를 한다'이다.
드 발에 의하면, 아른험의 침팬지 집단 내에서 가장 많이 목격되는 사회적 행위는 바로 '털 고르기'다. 이외에도 침팬지들은 손 내밀기, 편파 행위, 화해, 연합 등의 행동을 보여준다.
아른험의 침팬지 집단은 라윗, 이에룬, 니키, 단디로 이뤄진 수놈들과 마마, 호릴라, 파위스트, 오르, 즈바르트 등으로 짜여진 암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침팬지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놈은 마흔가량으로 보이는 암놈 마마다(1979년 기준). 마마는 1973년 11월 5일에 새로운 수놈 3마리가 아른험으로 오기 전까지 18개월 동안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 수놈 3마리가 합류했을 때는 겨울이어서, 챔팬지들이 실내 사육장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새로 온 수놈 중 한 놈이었던 이에룬은 늘 실내 사육장에 있는 금속 드럼통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이때마다 수놈들은 가장 높은 드럼통으로 올라갔고, 암놈들은 드럼통 아래에 집결했다. 암놈들의 행동을 이끈 놈들은 마마와 그녀의 절친 호릴라였다. 며칠 뒤, 몇몇 암놈들이 수놈들에게 접근했고, 호릴라도 수놈들에게 다가갔다. 호릴라는 수놈들 중에서도 이에룬에게 호의를 나타냈다. 반면, 마마는 자신의 지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수놈들을 집단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수놈과 암놈 집단은 교섭을 벌이는 와중에도 간간이 큰 싸움을 벌였다. 이에 사람이 개입해 마마를 집단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수놈들이 온 지 2주 만이었다. 마마가 집단을 잠시 떠난 사이, 이에룬은 몇 달 동안 자신의 이미지를 집단에 각인시켜 다른 침팬지들의 복종을 받게 되었다. 3달이 지난 후에는 이에룬의 권력이 공고해졌다. 동물원 직원들은 마마와 호릴라를 다시 집단으로 돌려 보냈다. 집단으로 돌아간 마마는 수놈들을 적대시하면서 공격했다. 그런데 다른 암놈들이 마마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인 호릴라는 집단으로 돌아와 이에룬에게 우호적으로 다가갔다. 이는 그동안 집단 내에 있던 마마를 향한 경외심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몇 주가 지나 마마는 1인자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자리는 이에룬의 차지가 되었다.
1974년 초부터 1976년 중반까지 아른험의 침팬지 집단 내에서 어느 놈이 우열구조의 최상위에 있는지가 명확히 보였다. 그 이유는 마마를 꺾고 왕좌에 오른 이에룬의 행동 때문이었다. 이에룬은 털을 곤두세우고 육중하게 걸었다. 이 행위는 최고 권좌에 오른 수놈 침팬지라면 누구나 보이는 특징이었다. 왕좌를 획득한 수놈 침팬지는 자신의 몸을 돋보이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이 신체에 걸맞는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아른험 집단에서는 '복종적인 인사'가 이뤄지는데, 이 행위는 집단 내의 우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지위가 낮은 침팬지는 인사를 받는 침팬지를 우러러 보는 포즈를 취한다. 어쩔 때는 인사를 하는 침팬지가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인사를 받는 침팬지에게 건네기도 하고, 그의 목과 가슴, 발에 키스를 하기도 한다. 아른험의 침팬지들이 갑자기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바로 서열관계가 바뀐 것이다.
1976년 봄, 라윗은 그동안 참고 있던 자신의 권력 의지를 드러낸다. 그가 이에룬에게 덤벼든 것이다. 라윗과 이에룬의 경쟁으로 집단은 서열 재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첫 싸움에서 둘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런데 두 놈은 싸움을 하면서 암놈들의 지원을 받으려 했다. 두 놈은 암놈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암놈들과의 접촉을 갈구했는데, 특히 이에룬이 그런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주었다. 이때 라윗이 꾀를 낸다. 그는 이에룬과 암놈이 접촉할 때마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훼방을 놓았다. 라윗은 이 전술을 몇 주 동안 반복했다. 이를 가리켜 저자는 '떼어놓기 간섭'이라고 표현했다. 이 작전으로 이에룬과 암놈이 접촉하는 빈도가 줄어 들었다. 이는 이에룬이 암놈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이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이에룬은 1976년 가을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이에룬의 사회적 고립은, 그가 집단에서 패배자로 추락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마에서 이에룬으로, 이에룬에서 라윗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사실 라윗은 자력만으로 1인자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그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니키의 공헌이 자리 잡고 있다. 라윗과 니키는 간접 연합을 맺었다. 니키는 라윗이 이에룬과 접촉한 암놈을 공격할 때 함께했다. 니키는 이에룬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려 이에룬의 팔다리를 묶었다. 니키가 라윗을 간접적으로 도운 셈이다.
라윗이 1인자에 오른 후, 라윗과 니키 그리고 이에룬을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삼각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관계는 이에룬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1976년 가을에 그 기반을 다졌다. 삼각 관계가 이뤄지면서 이에룬을 대하는 니키의 태도가 변했다. 니키는 이에룬에게 다가가 위협 과시를 했다. 그런데 이에룬은 이에 대해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니키의 털을 골라 주었다. 한때 1인자였던 이에룬이 니키의 도발에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이에룬이 니키에게 대항했다면, 2인자 니키와 3인자 이에룬의 싸움에 의한 반사 이익을 라윗이 가져갔을 게 뻔하다. 결국 이에룬은 니키와 라윗 간에 갈등이 일어나길 기다리며 굴욕을 참은 것이다. 이 행동은 라윗과 니키 사이에서 충돌이 빚어지면 그로 인한 반대 급부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이뤄졌다.
이후 1977년 8월이 지나자 이에룬과 니키가 연합을 형성했다. 이들의 연합은 1980년까지 이어진다. 10월 14일, 이에룬과 니키는 라윗에게 협공을 가했다. 라윗은 나무 위로 도망쳤다. 이에 호릴라, 파위스트, 오르, 단디 등의 다른 침팬지들이 라윗을 도왔다. 하지만 라윗은 패했다. 니키는 자신이 이긴 것마냥 행동했다. 싸움이 있은 지 30분이 흘러 니키와 이에룬이 라윗에게 다가가 그의 털을 골라주었다. 이 장면만 보면 집단에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때부터 라윗의 지도력은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라윗은 이에룬과 니키의 연합이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놈들도 두 수놈이 맺은 연합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다. 이로부터 7주가 지나자 이번에는 니키가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에 의하면, 침팬지들도 인간처럼 권력욕을 지니고 있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를 해 나간다. 결국 정치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침팬지들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화려한 정치적 행위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를 볼 때마다 지금껏 내가 뉴스와 신문 기사 등으로 접해 왔던 인간 정치인들의 행동이 오버랩됐다.
한편,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든 유권자들로부터 희화화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매스컴 속 한국 정치인들의 행위를 침팬지들의 정치적 행위에 대입해 본다면 <<침팬지 폴리틱스>>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