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윤흥길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립국어원에서 '완장'을 검색하니 '신분이나 지위 따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팔에 두르는 표장'이라고 나온다. 이 뜻에 의하면 완장은 권력을 상징하는 하나의 도구인 듯싶다. 이 같은 완장과 관련해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바로 '완장질'이다. 권력을 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억압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아마 '갑질'과 유사한 것 같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완장을 매개로 완장질과 다양한 인간 군상, 권력의 부질없음 등을 나타낸다.

 이곡리 이장 최 익삼과 지역 유지인 최 사장은 판금 저수지 감시인을 물색하고 있다. 이 저수지는 이곡리와 앙죽리·법계리에 둘러싸인 저수지로, 최 사장의 재산이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임종술을 감시원에 앉히기로 결정한다. 종술은 마을에서 난폭하기로 소문난 사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그를 꺼리다 못해 두려워한다. 익삼과 최 사장은 이 점을 노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종술을 감시원으로 쓰면, 감히 마을 주민들이 저수지에서 제 멋대로 낚시를 할 수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익삼은 종술이에게 감시원임을 증명하는 완장을 준다. 완장에는 '감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종술은 그 글자를 '감독'으로 바꾸고, 완장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한다. 그는 감시를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늘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자랑질을 해댄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자 종술에게 완장은 그 자체가 된다. 종술이 이렇게 완장에 집착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완장 찬 이들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완장을 찬 종술은 당당하게 마을을 활보하고 다닌다. 버스에 무임승차를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자주 행패를 부린다. 그야말로 완장질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런 종술이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종술이가 즐겨 다니는 실비주점에서 일하는 작부 김부월이다. 종술은 부월이에게 항상 애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부월이는 종술이에게 쌀쌀맞게 군다. 난폭한 데다 능글맞은 종술이마저 그녀에게 만큼은 감히 대적하지 못한다. 부월이는 종술이가 던지는 추파를 외면하면서도 서서히 그에게 끌린다. 어느 날, 부월이는 종술이를 향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저수지로 가게 되고, 둘은 텐트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둘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던 때, 부월이가 '마 선생'을 외친다. 마 선생은 부월이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이다. 그녀에게 마 선생은 멋진 남자를 뜻한다. 그 소리를 들은 종술이는 부월이를 추궁한다. 이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익삼이 찾아온다. 익삼이를 본 부월이는 황급히 도망간다. 익삼은 종술에게 며칠 뒤에 최 사장이 저수지에 놀러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 일이 있은 후, 마을에는 종술과 부월이 사이에 있었던 일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종술이 앞에서 그 일을 언급하지 못했지만, 종술이는 자신과 부월이 사이에 있었던 일이 소문으로 떠돌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껏 예민해진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린다.

 드디어 최 사장이 저수지를 찾았다. 그는 동네 요정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데리고 왔다. 최 사장은 자신의 저수지에 있는 양어장에서 물고기를 낚으려고 했다. 그런데 부월이와의 일 때문에 한껏 심통이 나 있는 종술이가 이를 가로 막는다. 이 일로 종술이는 감시원에서 해고된다. 하지만 종술이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매일 저수지에 출근해 자신의 분신인 완장을 차고 저수지를 감시한다. 심지어 자신을 대신해 감시원을 맡을 만한 동네 사내들을 찾아가 협박을 하고 다닌다. 종술이의 기민한 대처 때문에 새 감시원을 구해야 하는 익삼이만 애를 먹는다.

 한편, 부월이는 종술이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종술이의 딸인 정옥이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부월이는 정옥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정옥이를 만난 부월이는 정옥이에게 맛난 것과 예쁜 옷을 사준다. 이 일은 종술이의 귀로도 들어간다. 종술이는 주점으로 가 부월이와 언쟁을 한다.

 마을에는 길고 긴 가뭄이 찾아왔다. 마을 주민들은 가뭄 때문에 근심에 빠진다. 이에 수리조합은 사흘간의 준비를 거친 후 저수지의 수문을 열기로 결정한다. 저수지의 수문이 열린다는 것은, 곧 종술이가 완장을 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사자인 종술이는 이 일을 새까맣게 모르고 지낸다. 그러던 중 종술은 마을에서 우연히 익삼이와 마주친다. 익삼이는 종술이를 약올리듯 저수지 수문 개방 소식을 알린다. 종술이의 눈앞이 깜깜해진다. 완장을 잃을 걱정에 종술이는 마을에서 또 행패를 부리고 다닌다. 이 모습을 본 종술의 어머니, 운암댁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가뜩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는 아들이 완장을 놓게 된다면, 필히 마을 사람들의 울분이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운암댁은 부월이를 찾아간다. 그녀는 부월이에게 종술과 정옥이를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나라고 부탁하고, 부월이는 이를 승낙한다. 저수지 물이 빠지기 하루 전날, 부월이는 저수지를 찾아간다. 그녀는 뗏목을 타고 순찰 중인 종술이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종술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부월이는 종술이 차고 있는 완장이 별것 아닌 권력이라고 말하면서 재차 그를 설득한다. 결국 종술이는 부월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부월이는 자신과 함께 떠날 종술이의 완장을 건네 받아 저수지에 버린다.

 다음 날, 저수지의 수문이 열렸다. 그 장소에는 운암댁이 있었다. 운암댁은 저수지의 물에 물고기가 휩쓸려 가지 않도록 쳐 놓은 그물에 아들 종술이 찼던 완장이 걸려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부월이는 종술이를 설득하면서 완장의 부질없음을 역설한다. 그녀는 완장은 하빠리들이나 차는 것이며, 진짜 완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수성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완장들의 것이라며 종술이에게 일침을 날린다. 부월이의 말에 따르면, 진짜 실속은 종술이를 감시원에 앉힌 최 사장과 익삼이의 것이다. 그런데도 종술은 완장을 찬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인 것처럼 굴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온갖 완장질을 해 왔다. 어찌보면 완장은 판금 저수지의 감시원일 뿐인 종술에게 자기 멋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보증 수표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종술은 완장을 찰 만한 재목이 아니었다. 그는 완장을 찬 이후 본인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동시에 자신이 주민들에게 행해 온 행태를 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완장에 취해 이전보다 더 큰 추태를 저질렀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랴"라는 격언이 있다. 종술이를 보니 사람은 왕관의 무게뿐만 아니라 완장의 무게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왕관에 비해 완장의 비중은 작다. 그러나 완장 역시 하나의 권력이긴 매한가지다. 완장을 찬 이는 왕관을 쓴 자와 완장조차 차지 못한 사람 사이에 속한 중간 관리자 정도 되는 사람일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가는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중간 관리자급의 직위에 오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완장을 찬 종술이의 작태는 나에게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후 속으로나마 이렇게 외쳐본다. '완장을 차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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