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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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내리기만 하고 녹지 않는 새하얀 눈을 보며 이제는 이 책을 해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가을 사람들의 강력한 칭찬과 입소문에 힘입어 이 책을 선택했으나, 이와 비슷한 이유로 선택한 "658 우연히"가 기대와 달리 날 실망시킨터라 이 책의 첫장이 그동안 쉬이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손에 쥐고만 있으며 마음의 짐으로 이 책을 남겨둘 순 없는 일, 이제 눈이 녹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7번째 작품이다. 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7번째까지 나올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이 작품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재미를 갖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일거다. 그러니 나는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진즉 이 책을 읽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됐다는 진한 아쉬움이 조금이나 적어졌을테니까. 나는 이 책의 책장을 10장도 채 넘기기 전부터 내내 이런 후회에 시달려야 했다. 아, 눈이 조금만 더 빨리 내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 책의 이야기는 눈과 함께 시작한다. 눈이 내리고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면서 여인들이 하나둘씩 실종되어간다. 처음엔 단순가출이라고 생각했것만, 곧 그 여인들이 실종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 반드시 남겨진 의문에 눈사람은 이 사건들이 연쇄살인범에 의한 사건임을 암시하며 사람들의 목을 서늘하게 옥죄어온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새벽녘까지 읽고 나선 침대 옆 스탠드를 꼭 켜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왠지 창밖으로 보이는 눈들이 바로 내 목뒤에서 찬 기운을 뿜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스칸디나비아의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차가운 겨울을 꼭 닮아 있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머리에 열이 오르면서 서늘했던 기분을 담백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나는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들이 단 한명을 제외하곤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내 기준에선 너무나 파렴치하고 몰상식했다. 물론 그들보다 더욱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남자 캐릭터들도 한가득이였지만, 이 책 자체의 중심소재를 생각하면 이 책에서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개운치 못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단점이 해리 홀레란 캐릭터의 단점 앞에서 가볍게 상쇄되고, 이 소설이 여성들을 파렴치하게 만든 바로 그 마초성향이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해리 홀레 시리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해리 홀레라는 이름을 지닌 중년의 남자다. 그는 오슬로에 거주하고 있고,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연쇄살인범을 잡아본 경험이 있으며, 또 그럴 능력이 있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형사다. 여기에 그는 여느 하드보일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일중독에 알코올 중독 등등 온갖 마초적인 단점들을 당연하다는듯이 지니고 있다. 그런데 너무나 전형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이 설정들이 여타 소설들에서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훈장처럼 보이다 못해 그 주인공들의 빼어난 능력을 강조위한 악세사리처럼 사용된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 홀레에겐 그를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써 보이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책에 홀딱 빠져버린 가장 큰 이유였다.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풀어나간다는 것.

 

어느 헐리웃 관계자가 그랬더란다. 헐리웃의 오리지날 영화를 만들지 않고 다른 나라 영화들을 리메이크하거나 소설원작들의 영화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헐리웃이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다 고갈되어 무엇을 만들던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헐리웃 영화계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학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설정들은 이미 다 나와 버렸으니까.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만과 편견 이후로 이들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로맨스 소설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내가 "658 우연히"를 읽고 실망한 이유도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다 나와 있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사용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실망했던 진짜 이유가 그게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 책에서 실망한 진짜 이유는 그가 전형적인 클리셰를 너무나 전형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굳이 그 소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소설의 장치들이 날 지치게 했던 거다. 하지만 요 네스뵈는 달랐다. 그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사용했다. 해리 홀레의 설정은 물론이고, 너무나 전형적인 주변상황까지 그 특유의 변주로 새하얀 눈결정처럼 날카롭고 반짝반짝하게 그려 놓았다. 그래, 작가란 이런것이다. 전형적인 클리셰를 전형적이지 않게 쓰는 사람들, 닳고 닳은 표현도 참신하게 재창조 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작가들이고, 그런 사람들의 소설을 나는 읽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오만과 편견의 클리셰를 고대로 쫒아가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도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덕분에 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요 네스뵈의 담백한 글솜씨와 참신한 표현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고, 그의 이야기에 포로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나는 눈이 내릴때마다 이 책이 생각날 것만 같다. 그의 서늘하고 아찔한 글솜씨와 함께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7번째 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된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 책포함, 꼴랑 두권이 전부다. 내 짐작으론 이 책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번역된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든 앞으로 이 시리즈가 꾸준히 번역되어 내 책꽂이에 주르르 꽂혀지길 바래본다. 이대로 단 두권의 번역본만으로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시리즈란 생각이 이 단 한권만으로도 강렬하게 느껴지므로. 그래서 솔직히 헐리웃 영화화를 계기로 번역되는 책들을 만날 때마다 헐리웃의 영화인들의 소재가 고갈된게 안타까운 한편 고맙기도 하다. 그들 덕분에 내가 이런 재미난 책을 만나게 된 셈이니까. 그렇지만 역시 헐리웃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의 안타까움이 더 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안타까움을 스노우맨으로 상쇄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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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숲의 아카리 11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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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1권이 나왔군요! 너무나 따스하고 담백한 책이야기가 가득 담긴 서점숲의 아카리가 이번 편에선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12권은 11권보다 조금더 빨리 발간되길...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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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보다도 빨리 10
타나카 메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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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까지 이제 딱 한권 남았네요! 해피엔딩을 향해 후미노와 선생님 모두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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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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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버린 고통에 비할 수 있는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고통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만약에라는 단어로라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 이제까지 사랑하던 사람들의 자취가 내 곁에 남아 있고, 그 사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데 다시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그 체온을 느끼지도 못한다니. 그건 TV나 소설에서 간접체험하게 되는 그 어떤 가혹한 형벌보다도 더 괴롭고 고통스러울 거다. 나처럼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한 사람조차 차라리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선택하게 할 만큼.

 
이 책의 저자 니나는 바로 이런 고통에 빠져버린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후, 그녀는 언니가 못다누린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과 언니를 상실했다는 고통으로 바쁘고 완벽하게 살아가기 위해 거의 강박에 가까운 노력을 퍼붇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삶의 상태론 자신을 옥죄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과 언니의 부재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고자 1년간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작성한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1년간에 프로젝트 과정과 그 안에서 그녀 자신이 찾은 답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책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저자가 책 읽기를 시작한 계기가 자기자신을 위한 힐링이였던 것 만큼, 책에 대한 소개나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 보다는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엔 이러한 내용에 살짝 당황했다. 1년동안 하루에 책 한권씩 읽기 프로젝트가 이 책의 주요 홍보문구였던 만큼 그런 책을 기대했으나 막상 내손에 들려 있는 건 한 여인이 독서로 부터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였으니까. 게다가 자기 전에 잠깐 읽어 볼 요량으로 펴본 책이였으니 예상과 다른 내용에 졸음까지 겹쳐서 이 책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 지금 지속되는 것은 과거에서도 발견된다. 좋은 일은 예전에도 일어났고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아름다운 순간과 빛과 행복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팔로마는 살아야할 이유로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남아 있을 순간'을 발견하는데 전념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고대한다. 그녀 자신이 이미 경험한 순간들 속에 증거가 있다. 그런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있을 순간'이 내 고통에 대한 위안이 되고 장래에 대한 약속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잠들어 가던 나는 바로 위의 구절을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다. 지금 니가 겪고 있는 삶이 팍팍하고 우울하더라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꺼라고, 왜냐면 이미 과거에서 너는 그런 삶의 기쁨을 느껴보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바로 앞으로 언젠가는 그런 미래가 올거라는 증거가 되리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추상적고 아득한 이 말들이 그만 내 가슴에 팍하고 박히고 만 것이다. 만약 내가 이 구절을 자기계발서나 성인의 잠언집 같은 곳에서 발견했더라면 분명 그냥 흘러 넘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를 잃고 고통 속에 쌓인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니나 상코비치"가 말했기 이 말이 내 가슴을 울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녀와 내가 비록 계기는 달랐지만 짙은 안개 속에 쌓인 것 같은 삶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고 싶다는 같은 갈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니나 역시 책의 뒷부분에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역시 책은 읽는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내용과 감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절감했다. 

 

한번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그 뒤엔 그저 펼치고 있기만 해도 저절로 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니나가 책을 통해서 얻고자 한 위로와 깨달음을 나 역시 그녀의 책을 통해서 얻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그녀가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를 위해서 이 책을 집필 했을 것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볼까하는 충동이 마구 샘솟았더랬다. 좋은 사람과 좋은 책과 따스한 위로를 만나게 된 기쁨을 한명의 독자로써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므로 다행히도(?) 이런 내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이럴땐 이런 국제적인 망신이 될지도 모를 일을 벌이지 못할만큼의 게으름쟁이라는게 다행스럽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메세지를 받았다. 하지만 니나에겐 살짝 미안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단 한개만 꼽는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니나의 언니가 사망한 후,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하면서 머리카락이 길고 책을 읽는 천사인형을 천국의 인형들 곁에 올려놓는 모습을 꼽고싶다. 이 장면은 이 책 전체의 내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없었어도 상관없을 만큼. 그러나 그 인형이 니나의 언니를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모성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언제, 어느시대에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저 너무나 위대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가슴이 매이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부디 니나가 자신이 책으로 얻은 위로와 깨달음으로 그녀의 아픔을 잘 보듬어줘서 이제는 그녀의 어머니가 많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리고만 이 책에 참으로 안타깝게도 옥의 티가 있었으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처음 몇몇 부분이 눈에 걸릴 때는 읽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므로 그냥 넘어갔으나, 기어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게 만드는 부분이 나오고야 말았다.

 

p142   엘리자베스 매과이어가 쓴 <열린 문>은 19세기의 허구적 인물인 작가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의 가상 전기이다.

p149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은 쉰세 살에 인플루엔자와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뛰어내렸거나 아니면 떨어져서 죽었다. 하지만 매과이어는 그 캐릭터의 종말을 다른 것으로 구상했다. 그녀는 울슨이 머릿속에 종양이 생겨 살날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p142 문장을 읽으면서 열린 문이란 소설은 엘리자베스 매과이어의 픽션 소설이라고 받아들이고 넘겼것만, p149에선 그 픽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죽음에 역사적인 관련 기록이 있댄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고 저 두 부분을 번갈아 가며 몇번이나 다시 읽어봤지만 분명 저 두 구절은 서로 상충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구글링을 해본 결과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Constance Fenimore Woolson)이란 사람은 실존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책의 번역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하고 말았다.

 

이 책의 번역가 김병화씨의 책 뒤에 실린 이력을 살펴보니 번역팀에 속해 있더라. 이 책을 그 번역팀에 속한 여러명이 찢어서 번역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앞으로 김병화씨가 번역한 책은 신뢰도를 갖고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작들이 대부분 인문학인 번역자가 대체 어떻게 저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앞뒤 문맥만 따져봤더라도 이런 오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을. 덕분에 저 오류 뒷편의 나머지 부분, 즉 책의 절반정도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책의 문장들을 의심하고 보게 됐다. 번역이 갸우뚱한 부분이 몇번이나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서 즐겁게 독서를 하고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이 책에서 니나는 어느순간 자신이 언니가 세상을 떠난 시점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그 이전에 과거에서 언니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언니가 세상을 떠난 그 마지막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부분이 있다. 이 구절처럼 번역오류라는 한 부분만 놓고 그 부분에만 집착해서 이 책을 평가하고 싶진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나에게 준 기쁨과 감동은 그 이상, 그 몇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자 니나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는 부분에 집착하기 보다는 언니와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언니를 자신의 곁에 영원히 묶어 두기로 결심했듯이, 나 역시 그녀처럼 이 책의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그 감동과 위로와 메세지를 내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부디 앞으로 새로 인쇄될 책들은 교정전체를 새로 보고 제대로 수정해줬음 좋겠다. 그래서 내 뒤에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기억과 경험들만 간직한 채 책장을 덮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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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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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땡길때가 있다. 심정적으로 힘든 소설을 읽고 나서라던가, 딱딱한 인문서적을 읽은 후라던가, 한동안 책을 읽지 않다가 다시 책읽기를 시작할 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는 나는 으례 에세이를 찾는다. 온다 리쿠의 에세이를 읽고 정신적으로 봉변을 당한 이후, 당분간은 일본작가의 에세이를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것만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그 다짐은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먹거리 에세이라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표지에 이쁘게 자리잡고 있는 아기자기한 종이공작을 보는 순간 아! 이 책은 꼭 사야해! 라며 적립금까지 톡톡 털어가며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은 표지처럼 아기자기하고 이쁜 만듦새를 자랑한다. 종이 특유의 결이 느껴지는 감성어린 표지도 맘에 들었고, 각 챕터가 시작할때마다 작게 들어가 있는 먹거리 아이콘도 너무 귀엽고 깜찍했다. 무엇보다 이쁜 책을 추구하는 책 치고 책 자체가 튼튼하게 재본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보통 이쁜 책들은 너무 멋을 부리다가 기본적인 책의 만듦새를 놓쳐서 책이 낱장으로 날아다닌다던가 표지가 쉽게 찢기거나 커버의 역활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기본기를 지켰으되 이쁜 책, 그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첫 인상이였다.

책의 내용 역시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세이라는 기본기를 잘 지킨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나 할까? 에세이라는 것이 본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보니 자칫 삐끗해서 글의 중심을 잃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순간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으로 뒤바뀌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요리의 프로들이 딱 신선하고 정직한 재료에 기본적인 간만해서 최상의 맛을 뽑아내듯이, 이 책 역시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마음과 담백한 추억으로 최상의 맛을 내고 있었다. 덕분에 간만에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고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 채,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했던 내게 꼭 맞는 선택이였던 셈이다. 하지만 깊은 밤, 배가 출출할때 읽을 때는 꽤 힘들었다. 중간중간 내가 먹어본 음식들이 나올 때는 물론이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맛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묘사 덕분에 생생하게 상상되서 입안에 침이 고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내가 먹을거리가 나오는 책과 영상물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됐다. 계란말이가 노릇노릇하게 구어지는 영상이라던가, 찌게가 자글자글 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흐믓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이런 일련의 현상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에 대해서 음식들을 먹으며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난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을 해보아도 나 혼자 먹은 음식중에 또렷하게 기억에 남거나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없었다. 혼자 였기에 아쉬웠고 외로웠고 쓸쓸했던 기억만이 있을 뿐, 맛있는 음식은 모두 다 누군가와 함께 했기에 그 음식과 그 음식이 차려져 있던 식탁과 자리가 더욱 특별하고 맛있게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가 보다. 추억이란 것 하나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나 외의 존재와 연결된 기억이 아니던가.

담백한 책읽기를 마치고 본문의 마지막 책장을 넘겨보니 크로켓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친언니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데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케치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내 마음에 쏙 들었냐면 이 책에 말한 주요 음식들도 이렇게 일러스트로 레시피를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욕심이지만. 덕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요시모토 자매와 친구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서 좋았다. 앞으로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가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비록 아직까진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간극을 이겨내긴 힘들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소설까지도 이 에세이처럼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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