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버린 고통에 비할 수 있는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그런 고통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만약에라는 단어로라도 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 이제까지 사랑하던 사람들의 자취가 내 곁에 남아 있고, 그 사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데 다시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그 체온을 느끼지도 못한다니. 그건 TV나 소설에서 간접체험하게 되는 그 어떤 가혹한 형벌보다도 더 괴롭고 고통스러울 거다. 나처럼 겁이 많고 엄살이 심한 사람조차 차라리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선택하게 할 만큼.

 
이 책의 저자 니나는 바로 이런 고통에 빠져버린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후, 그녀는 언니가 못다누린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과 언니를 상실했다는 고통으로 바쁘고 완벽하게 살아가기 위해 거의 강박에 가까운 노력을 퍼붇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삶의 상태론 자신을 옥죄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과 언니의 부재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찾고자 1년간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작성한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1년간에 프로젝트 과정과 그 안에서 그녀 자신이 찾은 답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책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저자가 책 읽기를 시작한 계기가 자기자신을 위한 힐링이였던 것 만큼, 책에 대한 소개나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 보다는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엔 이러한 내용에 살짝 당황했다. 1년동안 하루에 책 한권씩 읽기 프로젝트가 이 책의 주요 홍보문구였던 만큼 그런 책을 기대했으나 막상 내손에 들려 있는 건 한 여인이 독서로 부터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였으니까. 게다가 자기 전에 잠깐 읽어 볼 요량으로 펴본 책이였으니 예상과 다른 내용에 졸음까지 겹쳐서 이 책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 지금 지속되는 것은 과거에서도 발견된다. 좋은 일은 예전에도 일어났고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아름다운 순간과 빛과 행복은 영원히 살아남는다. 팔로마는 살아야할 이유로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남아 있을 순간'을 발견하는데 전념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고대한다. 그녀 자신이 이미 경험한 순간들 속에 증거가 있다. 그런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항상 내면에 있을 순간'이 내 고통에 대한 위안이 되고 장래에 대한 약속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잠들어 가던 나는 바로 위의 구절을 읽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다. 지금 니가 겪고 있는 삶이 팍팍하고 우울하더라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꺼라고, 왜냐면 이미 과거에서 너는 그런 삶의 기쁨을 느껴보지 않았느냐고 그것이 바로 앞으로 언젠가는 그런 미래가 올거라는 증거가 되리라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 추상적고 아득한 이 말들이 그만 내 가슴에 팍하고 박히고 만 것이다. 만약 내가 이 구절을 자기계발서나 성인의 잠언집 같은 곳에서 발견했더라면 분명 그냥 흘러 넘겨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를 잃고 고통 속에 쌓인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니나 상코비치"가 말했기 이 말이 내 가슴을 울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녀와 내가 비록 계기는 달랐지만 짙은 안개 속에 쌓인 것 같은 삶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고 싶다는 같은 갈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니나 역시 책의 뒷부분에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역시 책은 읽는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내용과 감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절감했다. 

 

한번 이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그 뒤엔 그저 펼치고 있기만 해도 저절로 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니나가 책을 통해서 얻고자 한 위로와 깨달음을 나 역시 그녀의 책을 통해서 얻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그녀가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를 위해서 이 책을 집필 했을 것일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내볼까하는 충동이 마구 샘솟았더랬다. 좋은 사람과 좋은 책과 따스한 위로를 만나게 된 기쁨을 한명의 독자로써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므로 다행히도(?) 이런 내 생각은 실천되지 못했다. 이럴땐 이런 국제적인 망신이 될지도 모를 일을 벌이지 못할만큼의 게으름쟁이라는게 다행스럽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은 위로와 메세지를 받았다. 하지만 니나에겐 살짝 미안하게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단 한개만 꼽는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니나의 언니가 사망한 후, 처음으로 맞는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하면서 머리카락이 길고 책을 읽는 천사인형을 천국의 인형들 곁에 올려놓는 모습을 꼽고싶다. 이 장면은 이 책 전체의 내용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없었어도 상관없을 만큼. 그러나 그 인형이 니나의 언니를 상징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모성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언제, 어느시대에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저 너무나 위대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하고 가슴이 매이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부디 니나가 자신이 책으로 얻은 위로와 깨달음으로 그녀의 아픔을 잘 보듬어줘서 이제는 그녀의 어머니가 많이 아프지 않길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내 가슴을 울리고만 이 책에 참으로 안타깝게도 옥의 티가 있었으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처음 몇몇 부분이 눈에 걸릴 때는 읽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므로 그냥 넘어갔으나, 기어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게 만드는 부분이 나오고야 말았다.

 

p142   엘리자베스 매과이어가 쓴 <열린 문>은 19세기의 허구적 인물인 작가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의 가상 전기이다.

p149   역사적 증거에 따르면,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은 쉰세 살에 인플루엔자와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뛰어내렸거나 아니면 떨어져서 죽었다. 하지만 매과이어는 그 캐릭터의 종말을 다른 것으로 구상했다. 그녀는 울슨이 머릿속에 종양이 생겨 살날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p142 문장을 읽으면서 열린 문이란 소설은 엘리자베스 매과이어의 픽션 소설이라고 받아들이고 넘겼것만, p149에선 그 픽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죽음에 역사적인 관련 기록이 있댄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람? 나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고 저 두 부분을 번갈아 가며 몇번이나 다시 읽어봤지만 분명 저 두 구절은 서로 상충되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구글링을 해본 결과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Constance Fenimore Woolson)이란 사람은 실존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책의 번역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지고 하고 말았다.

 

이 책의 번역가 김병화씨의 책 뒤에 실린 이력을 살펴보니 번역팀에 속해 있더라. 이 책을 그 번역팀에 속한 여러명이 찢어서 번역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앞으로 김병화씨가 번역한 책은 신뢰도를 갖고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작들이 대부분 인문학인 번역자가 대체 어떻게 저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앞뒤 문맥만 따져봤더라도 이런 오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을. 덕분에 저 오류 뒷편의 나머지 부분, 즉 책의 절반정도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책의 문장들을 의심하고 보게 됐다. 번역이 갸우뚱한 부분이 몇번이나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서 즐겁게 독서를 하고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이 책에서 니나는 어느순간 자신이 언니가 세상을 떠난 시점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그 이전에 과거에서 언니와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언니가 세상을 떠난 그 마지막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부분이 있다. 이 구절처럼 번역오류라는 한 부분만 놓고 그 부분에만 집착해서 이 책을 평가하고 싶진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나에게 준 기쁨과 감동은 그 이상, 그 몇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저자 니나가 언니가 세상을 떠나는 부분에 집착하기 보다는 언니와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언니를 자신의 곁에 영원히 묶어 두기로 결심했듯이, 나 역시 그녀처럼 이 책의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 그 감동과 위로와 메세지를 내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부디 앞으로 새로 인쇄될 책들은 교정전체를 새로 보고 제대로 수정해줬음 좋겠다. 그래서 내 뒤에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기억과 경험들만 간직한 채 책장을 덮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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