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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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땡길때가 있다. 심정적으로 힘든 소설을 읽고 나서라던가, 딱딱한 인문서적을 읽은 후라던가, 한동안 책을 읽지 않다가 다시 책읽기를 시작할 때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는 나는 으례 에세이를 찾는다. 온다 리쿠의 에세이를 읽고 정신적으로 봉변을 당한 이후, 당분간은 일본작가의 에세이를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것만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그 다짐은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먹거리 에세이라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지만, 표지에 이쁘게 자리잡고 있는 아기자기한 종이공작을 보는 순간 아! 이 책은 꼭 사야해! 라며 적립금까지 톡톡 털어가며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은 표지처럼 아기자기하고 이쁜 만듦새를 자랑한다. 종이 특유의 결이 느껴지는 감성어린 표지도 맘에 들었고, 각 챕터가 시작할때마다 작게 들어가 있는 먹거리 아이콘도 너무 귀엽고 깜찍했다. 무엇보다 이쁜 책을 추구하는 책 치고 책 자체가 튼튼하게 재본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보통 이쁜 책들은 너무 멋을 부리다가 기본적인 책의 만듦새를 놓쳐서 책이 낱장으로 날아다닌다던가 표지가 쉽게 찢기거나 커버의 역활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기본기를 지켰으되 이쁜 책, 그게 내가 이 책에서 받은 첫 인상이였다.

책의 내용 역시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세이라는 기본기를 잘 지킨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라고나 할까? 에세이라는 것이 본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보니 자칫 삐끗해서 글의 중심을 잃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순간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으로 뒤바뀌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요리의 프로들이 딱 신선하고 정직한 재료에 기본적인 간만해서 최상의 맛을 뽑아내듯이, 이 책 역시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마음과 담백한 추억으로 최상의 맛을 내고 있었다. 덕분에 간만에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고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 채,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머릿속과 마음이 복잡했던 내게 꼭 맞는 선택이였던 셈이다. 하지만 깊은 밤, 배가 출출할때 읽을 때는 꽤 힘들었다. 중간중간 내가 먹어본 음식들이 나올 때는 물론이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의 맛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묘사 덕분에 생생하게 상상되서 입안에 침이 고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내가 먹을거리가 나오는 책과 영상물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됐다. 계란말이가 노릇노릇하게 구어지는 영상이라던가, 찌게가 자글자글 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흐믓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이런 일련의 현상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에 대해서 음식들을 먹으며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난 그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을 해보아도 나 혼자 먹은 음식중에 또렷하게 기억에 남거나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없었다. 혼자 였기에 아쉬웠고 외로웠고 쓸쓸했던 기억만이 있을 뿐, 맛있는 음식은 모두 다 누군가와 함께 했기에 그 음식과 그 음식이 차려져 있던 식탁과 자리가 더욱 특별하고 맛있게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가 보다. 추억이란 것 하나만 하더라도 이렇게나 나 외의 존재와 연결된 기억이 아니던가.

담백한 책읽기를 마치고 본문의 마지막 책장을 넘겨보니 크로켓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친언니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데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케치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나 내 마음에 쏙 들었냐면 이 책에 말한 주요 음식들도 이렇게 일러스트로 레시피를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욕심이지만. 덕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요시모토 자매와 친구들의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었서 좋았다. 앞으로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가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비록 아직까진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 사이의 간극을 이겨내긴 힘들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소설까지도 이 에세이처럼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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