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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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P87 에비, 나는 너를 강간했다 의사 행세를 하는 아빠인 내가 너를 강간했고, 지금도 강간하고 있어 관능적인 치료를 한다며 거친 손가락으로 너를 강간했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네 몸을 뚫고 들어갔어 네가 가장 아파할 곳으로 점점 더 깊게. 네 의지에 반해 억지로, 강압적으로. 너는 내가 소유한 국가, 내가 불법으로 점유한 대지였으며 전리품이었다 이 대지와 그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망친다 해도 난 아무 상관없었어 내 소유이기만 하면 그걸로 되었지. 네가 깨지고 부서질수록 좋았어 그래야 잡기 쉬우니까. 더 다루기 쉬우니까

P112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언가를 조종하고 승리를 거두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어 너는 나의 아이였다 나의 소유물이었지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어 그러지 않을때 규율과 처벌을 실행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바로 내가 키워진 방식처럼 말이다 나는 내가 겪은 대로 너를 다루고 있었어 내가 배운 대로 하는 것뿐이었지

아빠, 오빠, 삼촌, 사촌, 선생님, 동료, 애인 등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다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사회 운동가인 이브 엔슬러 역시도 다섯 살부터 열 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았고 이후로 폭력과 정신적인 학대를 받으며 술과 마약에 빠졌고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성적 학대를 하는 아버지와 남편이 딸에게 저지른 일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어머니와 가족과 이웃
가장 보호받아야 될 아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과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31년 전에 사망한 아버지가 쓴 편지 형식의 글로 받아마땅한 사과를 받지 못하고
피해자가 스스로에게 대신 '사과'를 상상하고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폭력과 학대의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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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 산책길 들풀의 위로
이재영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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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들풀의 위로

P31 클로버의 잎이 행복에서 행운으로 변하는 건 짓밟혀서라고 한다 원래 세 장의 잎이 나야 정상인데 잎이 밟혀 생장점이 손상되어 기형적으로 잎이 하나 더 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시골 산책길에서는 찾기 힘들고 상대적으로 사람 많은 도시에서 행운의 네 잎을 발견하기 더 쉽다 클로버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 조금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행복을 깨닫기 힘든 곳에 행운이 나타나고 행운을 찾기 어려운 곳에 행복이 가득하다는 것이

P47 선택에는 항상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내 선택이, 혹은 내가 선택된 것이 꼭 좋은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내가 선택되지 않았다고 꼭 나쁜 결과라고 할 수도 없다 인생은 그래서 참 재미있다 다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면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 같지만 그러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인간은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며 살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P55 한여름이면 이 땅이고 저 땅이고 붐비며 피는 개망초는 일제 강점기에 넘어온 풀이다 나라를 다 망하게 할 듯 흐드러지게 피는 걸 보고 망초라고 이름 붙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군락을 이루며 피는 성질 때문에 '우거질 망'을 써서 망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일본을 통해 들어와서 그렇지 섬나라 출신은 아니다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고 일본에서 관상용으로 들여왔던 것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을 뿐이다

매해 여름 숲길의 자리 싸움에도 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찾아내 흐드러지게 피는 개망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노란 얼굴을 중심으로 가늘고 흰 꽃잎을 두른 꽃송이를 여럿 올린 채 바람에 흔들거리며 오늘도 제 존재를 한껏 드러낸다 오늘만큼은 가만히, 예쁘게 들여다봐주기로 한다

P139 성공한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돈을 많이 벌고 여백 없이 빵빵하게 명예까지 얻는 삶이 아니라 결핍을 축복이자 행운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삶. 그래서 편안하고 평화롭게,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누구나 한 가지쯤 남보다 못한 무엇, 남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다 그 모자란 부분이 언제 어느 때 아름답게 빛날지 모르는 일이다 매혹적인 자줏빛을 지녔지만 척박한 땅에서 대충 나부끼는 소리쟁이가 키 큰 단풍나무를 부러워했다면 처음부터 싹을 틔우지도 않았겠지
가을, 세상의 초록이 결핍을 축복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안정을 주는 고요가 아닌 알 수 없는 불안이 조여오는 적요. 내일이 불확실한 시간 속에 한결 같은 건 풀과 나무들뿐이었다
나는 더 자주 많이 걷기로 했다 아니 아예 산책가가 되기로 했다 산책을 직업으로 삼는 데 이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면접도 없었다 걸을 의지와 조급하지 않은 마음, 작은 것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관심만 있으면 됐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마음 먹을 때마다 발목을 잡던 부족한 스펙과 나이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침에 눈을 떠 세수와 양치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마치 자연 속으로 출근하듯이 산책 파트너인 강아지 하이와 집을 나섰다 그러면 일이 생겼다는 기쁨, 안도, 희망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잦아들었다

지방 소도시에 살아도 흙에 발 디딜 일이 거의 없다 온통 콘크리트 회색이다
책을 읽으며 일상에 어우러진 들꽃들, 이름은 몰랐어도 아는 꽃들에 반갑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이참에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화초에 푹 빠져 엄청 사들였었는데 지금은 다 죽고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죄책감에 더 이상 화초를 사들이지는 않는데 화초들 새싹 올라오고 쑥쑥 자라고 꽃을 피우는 거 보면 기특하고 신비롭다
가평에서 책방 북유럽을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산책가로 살아가는 삶, 세상에 아무런 해 없이 다정한 사람으로 사는 꿈이라는 작가님, 소박하면서도 멋지다
참 하찮게 생각했던 별일 없음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별것 아닌 초록이 건네는 작은 다독임에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괜찮아지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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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그널 - 돈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10가지 신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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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10가지 신호

P44 스스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형용모순 같은 말이지만 '이기적 이타주의'가 돼야 한다 그동안 공허하게 들렸던 '상생'이란 말이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되살아나고 있다
지금까지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만큼 코로나19 아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수칙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전하려면 스스로 마스크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을 숙주로 확산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내가 안전해진다 그래서일까? 소위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고 언론들이 난리를 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재미난 움직임이 벌어졌다 더 급한 사람에게 마스크를 양보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SNS에 '#나는_면마스크를_착용합니다 #KF94를_양보해주세요 #마스크_사재기에_반대합니다' 등의 해시태그 달기도 확산됐다 무한경쟁, 무한자유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치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P53 가짜 신화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질문하기'다 언론에 언급되거나 교과서에 나왔다고 무작정 받아들이지 말고 실체를 확아해야 한다 뭔가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전해 질문을 던자 베살리우스처럼,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의심한 케인스처럼 말이다
혹시 '위대한 과학자나 경제학자니까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머뭇거림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한두 사람의 영웅이 아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위대한 혁명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한 명 한 명의 질문이 모여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 가정에서, 회사에서, 지역사회에서 우리 한 명 한 명이 베살리우스가 되고, 케인스가 되고, 뉴턴이 돼야 한다

P373 버핏이 재산을 빠른 속도로 불려주는 비결로 공개한 것이 알고 보면 힘이 빠질 수 있는 노하우다 바로 "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 버핏은 말하기는 물론 쓰기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알고 보니 버핏에게도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는 지금과 달리 고교, 대학 시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버핏은 당시 상황을 "토할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버핏은 용기를 내서 리더십 훈련 기관인 데일 카네기에서 대중 연설 강좌를 성실하게 들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떨리지 않고 핵심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말하기와 쓰기를 향상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이를 기반으로 토론과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명문장을 필사하는 노력도 해봄 직하다

자기계발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가성비, 가심비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독서다 몸을 건강하게 해서 병원비다 약값이 덜 들게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독서로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주식 투자, 특히 가치투자의 대가로 통한다 가치투자는 쉽게 말해 가치가 있는 주식에 투자를 하는데 멀리 보고 간다는 특징이 있다 하루, 월, 반년, 1년 같은 단기적인 기준이 아니라 10년, 30년, 50년까지 바라본다는 차이가 있다 앞서 설명한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접근보다 더 길게 보고 회사의 가치를 더 치열하게 따지는 방식이다

은행 금리가 너무 낮아 돈모으기 진짜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요즘은 모을 걱정보다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더 크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더믹으로 누군가는 망하고 누군가는 흥했다
코로나 이후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비하기 위한 책이다
지금까지 경제 관련 도서를 읽어도 남의 이야기 같고 어려워 완독하기도 힘들었는데 이 책은 참고 문헌까지 읽었다 마침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느낌이기도 했고 공감도 많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버핏처럼 사과 나무를 심 듯 멀리 내다 보는 주식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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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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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 모두가 사망하는 순간
비로소 사건이 시작된다

오마타 우시오
긴보게 사키
욘도 우동
아라라기 아바라
마사카 마사카네

추리작가 다섯 명이 외딴섬에 초대되고 그들을 초대한 복면 작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진흙 인형 다섯 개가 놓여 있을 뿐이다
다섯 명의 추리작가와 다섯 개의 진흙 인형
시작부터 미스터리하고 제목부터가 스포이기도한데 역시 추리 소설은 끝까지 읽어 봐야 결말을 알 수 있다
전혀 예상할 수조차도 없는 반전과 결말, 진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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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측면이 좀 더 낫습니다만
하완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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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정면 승부'가 아니다!
'측면 돌파'다!

방금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을 하나 발견했다 힘든 일 앞에서 아이는 웃지 않지만 어른은 웃을 수 있다 연륜에서 오는 여유인지 체념인지 아니면 해탈인지 알 수 없지만, 웃을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힘이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는 분노보다 웃음이 도움이 된다 덕분에 아무도 죽이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끝낼 수 있는 거다 우리가 괜히 해학의 민족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웃기 위해 그림책을 그렸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게 다 웃자고 하는 얘기. 모조리 웃음으로 승화시켜주겠어! ~ 어른의 마음 중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두렵다 이유는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 불확실성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이 선택으로 삶이 더 좋아질까? 아니면 나빠질까? 아무도 모른다 결과를 알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 길로 가 보는 것. 그 방법밖에는 없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무서워'가 아닌,
어떻게 될지 몰라서 '궁금해'로 살면
인생은 한결 재미있는 것이 된다 ~ 대책은 없습니다만 중에서

연애는 상대를 알아가는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아, 내게 이런 면이 있구나 상대에 따라 내가 어디까지 좋은 사람일 수 있는지, 어디까지 못나고 비열해질 수 있는지, 나조차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적나라한 자신을 만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악마랄까, 짐승이랄까, 아무튼 시커먼 무언가를 보았을 땐 솔직히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분명한 나의 일부니 환장할 노릇이다 ~ 짐승과 함께 중에서

인생 2회차,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름 생각과 고민이 많았는데 이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나야말로 '정면 승부'가 아닌 '측면 돌파'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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