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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2:5 - 7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 언약은 생명과 평강을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평강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주신다는 약속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약속을 믿을 수 없을때 우리는 현실을 보면서 불안해 하게 됩니다.

그 언약을 왜 주셨느냐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외라는 것은 존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존경이란 마음속에서부터 높이고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비추어보아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우선시하며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로 이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비추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다고 하시는데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함은 나의 삶에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삶이 정비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동행의 증거는 화평과 정직으로 나타납니다. 화평은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진실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철저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안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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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31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세상과 구별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현실의 문제만을 여전히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없는 것에 더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긍휼한 심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의 사건과 칠병이어의 사건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내가 언제나 채운다. 너희의 지금 현실에 없는 것에 초점을 두지 말아라. 너희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온 마음을 기울여라. 그래서,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라.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만 구별된 속은 썩어버린, 세상에 타협된 삶을 살지 않도록 해라. 너희들은 나만을 항상 바라보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외식된 경건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채우시는 주님의 이끄심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라고 하면 가야됩니다. 하라고 하면 해야 됩니다. 거기에 나의 의지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는 행태입니다.

세상과 구별되게 또 바리새인의 모습과는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저의 모습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항상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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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30

마가복음 7장 31- 37

귀먹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주님께 나아왔을때 주님은 그 막힌 것을 풀어주십니다. 우리 삶에 막힌 부분이 있을때 그것이 풀리려면 주님께 나아와야 됩니다. 내가 그것을 풀려고 노력하면 더 꼬이고 마는 것입니다. 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막히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를 부르며 주님 앞에 그 문제를 내놓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귀먹은 사람을 고치시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게 하셨습니다. 경계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왜 경계하셨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참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모습을 봅니다.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기적만을 쫒아다닐까봐 걱정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것을 경계하시는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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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29일

마가복음 8장 1절 - 10절

긍휼하신 주님

군중들이 모였을때 먹을 것이 없는 것을 가엾게 여기시고 제자들에게 먹일 것에 대해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보다 먼저 염려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님을 보기보다 당면한 문제를 바라봅니다. 벌판에 있는 상황, 사람은 수천명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요즘 제 마음이 이러했습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흔들립니다. 원래 순서에 의하면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 7장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데 이 말씀을 묵상케 하셨습니다.

채우시는 하나님 

제자들이 그런 의문을 예수님께 제기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진 일곱개의 빵과 물고기에 축사하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실컷 먹게 하셨습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은 제가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채웠다라고요. 저는 일반적인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우리의 필요를 알고 채워주신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메시지였습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주님께서 이미 해결해 놓으셨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미 채웠는데 뭘 걱정하고 있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정확히 듣지 못해 저녁까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 주여. 믿음을 주시옵소서. 나와 함께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나 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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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8. 28

요한계시록 17장 13절 - 18절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너는 나를 고맙게 생각하느냐'란 물음이 내게 주어졌습니다.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결박당한채 살아가던 나를 부름을 받고 선택된 진실한 자들로 삼아주셔서 어린양의 편에서 항상 그 어둠의 권세를 이길 능력을 허락하신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이런 사실이 너에게 고맙게 느껴지냐고 계속해서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 물음에 "예, 그렇습니다."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물음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왜 니 뜻대로만 하려고 하니?'라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를 죽음에서 구원해 내서 큰 능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어둠의 권세 아래에 결박당해 있을 때처럼 여전히 행동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질타하십니다.

오늘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나고. 굉장히 힘들어서 기도하는 중에 그러한 감정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너는 네가 계획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항상 그런 감정을 가지지 않느냐! 내가 시킨 일에도 너의 계획에 배치되면 이러한 감정에 빠지지 않느냐! 하나님보다 네 일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이런 감정이 일어날 때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주도성을 훼방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일때에라도 나는 기분이 나빴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계획에 의하여 하나님이 움직이시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 주여 용서하여 주소서. 나의 완악함을 고치시고 나의 자아를 깨트려 주소서. 나의 주도성을 내려놓길 원하오니, 주여 도와주소서. 하나님만 잠잠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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