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 - 생의 마지막 순간, 영혼에 새겨진 가장 찬란한 사랑 이야기
하세가와 카오리 지음, 김진환 옮김 / 서사원 / 2022년 8월
평점 :
생의 마지막 순간, 영혼에 새겨진 가장 찬란한 사랑 이야기
'제 8회 일본 인터넷 소설(2020)' 대상 수상작인 하세가와 카오리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를 읽었습니다.
제1화 노인과 벚꽃
제2화 청년과 반딧불이
제3화 여고생과 노을
제4화 사신과 에메랄드
막간 검은 고양이와 왈츠
제5화 꿈을 좇는 사람과 악마
제6화 제비와 불꽃놀이
막간 검은 고양이와 천사
최종화 그와 그의 세계
차례
총 6개의 이야기와 2편의 막간, 그리고 최종화로 이뤄진 이 소설은 인간의 임종을 지키고 혼을 거둬들이는 사신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올해 방영되었던 드라마 『내일』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드라마에서는 사신이 자살 기도자들을 구하는 역할을 했지만, 소설은 말 그대로 임종을 지켜보는 역할(임종지키미)입니다. 늘 그렇듯 인간의 수명은 사신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게 기본인 셈이지요.
인간이 삼도천을 건널 때 뭔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시나요? 죽은 이를 명부로 안내해 주는 통행료로 무엇을 받을지는 사신마다 다릅니다만, 소설 속 사신은 독특하게도 '혼의 조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사신에게는 백 년 동안 함께한 사역마 검은 고양이 '찰스'가 있지요.
그 사람이 겪은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이 연결됨으로써 혼이 형성된다. 그리고 감정에는 색이 있다. 기쁨의 노랑, 슬픔의 파랑, 정열의 빨강, 증오의 검정 이런 식이다.
물론 동일한 감정도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따라서 누군가는 종종 무수한 색채의 혼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색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과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죽은 이를 명부로 안내해주는 통행료로 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떼어 받는다. 어차피 명부로 건너간 혼은 환생을 위해 정화되어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겨우 엄지손가락만 한 유리병 안에서 붉게 빛나는 작은 베텔게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_P.16
이 독특한 사신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아지트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혼의 조각으로 물감을 만들고 그림을 그립니다. 사신에게는 영혼이 없으니 그가 그린 그림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요. 사신 스스로는 그런 이유로 어딘지 2프로 부족한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노인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임종을 맡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일이 바쁘단 핑계, 혹은 가정을 꾸린 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다소 소원해진 부자 관계지만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고향의 벚나무를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 마음을 사신은 그림에 녹여냅니다. 노인이 남긴 '덧없는 벚꽃 같은 연분홍색' 혼의 조각으로 고향의 벚꽃을 담아내지요. 사신 스스로도 '지금까지 그려왔던 그림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그 그림을 본 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의 벚나무를 찾아갑니다. 삼도천을 건넌 노인은 본인의 바람이 이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여름 해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이를 곁에 두고서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청년, 타이요가 안타깝게도 임종 지킴의 대상입니다. 일단 외적으로는 영국 태생의 잘생긴 신사인 사신은 우연찮게 타이요 일행과 합류하게 되는데요. 이는 유학을 계획하고 있는 타이요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을 가진 히요리의 배려였어요.
어느새 밤은 깊어지고 타이요가 죽음을 맞이할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타이요는 죽기 전에 히요리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띠지의 앞면에 적혀 있는 문구는 이들의 이야기겠지요.
인간의 수명에 관여할 수 없는 사신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죽는 순간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여길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백 년 동안 사신의 일을 해오며 밤이 지나 새로운 아침이 오면 감정이 지워지는 사신의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옵니다. 기구한 태생으로 한 번도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한 채 텅 비어 있는 삶을 살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는 열다섯 살 어린 소녀의 주마등을 지켜보는 건 사신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더욱이 그 소녀가 남긴 혼의 조각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노을의 색을 담고 있다면요.
4화에 이르러 무대는 불현듯 백년 전, 신분 제도가 남아 있는 영국의 도시로 이동합니다. 에메랄드빛 아름다운 혼을 가진 스물 두살의 엘리 터너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사신과 찰스 이 둘의 관계는 대체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신과 사역마 고양이에 불과한 것인지, 이 둘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제4화 사신과 에메랄드에 담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소설 전체에서 두 번 등장하는 '막간'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어요.
엘리, 부디 마지막 순간에 내 눈 앞을 장식하는 혼이
너의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으면 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_P.180
인간 세상에서 실체가 있는 사신. 게다가 멋드러진 외양의 영국 신사가 사신이라니 사실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이야기의 긴장을 고조시킬 '악마'도 등장합니다. 원래 사신에게는 혼이 없어서 감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사신에게 점점 인간 세상의 연이 생겨나요. 문득문득 찾아오는 기억의 편린에 괴로운 마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요? 백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사신은 왜 자신이 사신이라는 업으로 벌을 받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윽고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를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하기에 이르러요.
생의 마지막 순간, 삼도천을 건너기 전 소녀가 본 풍경은 무엇이었을까요. 표지의 아름다운 불꽃놀이 장면 기억하시나요? 소녀를 위한 사신의 마지막 선물은 마음에 잔물결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제비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처음 보는 색채를 마주하며 환희를 맛보았을 소녀의 영혼이 무지갯빛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와 거래를 한 사신은 이후 어떻게 될까요? 검은 고양이 찰스는요? 백 년이 넘도록 함께해 온 이 둘이 어떤 사이였을지 궁금하시다면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너에게 보낼게』를 펼쳐 보세요. 올 가을, 잔잔하고 따스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가장아름다운기억을너에게보낼게 #하세가와카오리 #제8회일본인터넷소설대상 #서사원 #서평단 #신간소설 #소설추천 #사신 #임종지키미 #죽음과맞닿은삶의가장아름다운순간 #혼의조각 #혼의색 #책속의글귀 #캘리그라피 #온담캘리 #온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