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은 아직 -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 프로젝트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22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히키코모리나 다름 없는 작가, 가가노에게 어느날 불쑥 아들이 찾아옵니다. 태어나서 스물 다섯 해가 되도록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들이지요. 가가노는 작가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과연 무엇이 되었을지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염려가 되는 인물입니다. 불통의 아이콘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세상과 단절되어 살고 있는 가가노. 그의 세계에 스무 살 때까지 한 달에 한 번, 양육비 십만엔을 부치고 나서 받아봤던 사진 속의 아들이 현실 세계에 등장한 것이지요. 

친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려니 이상하네. 그래도 처음 만났으니까 괜찮겠지. 뭐,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테지만 나가하라 도모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걸작은 아직_P.007

천연덕스럽게 반말을 건네며 가가노를 아저씨가 부르는 도모는 그날부로 가가노의 집에 머무릅니다. 처음 얼마 동안 가가노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대로,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습니다. 특별할 것 없었던 지금까지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에 급급하지요. 뜬금없이 찾아온 아들을 의아해 하면서도 자신의 삶의 방식은 고수했어요.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을 사 오는 일. 외부와는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며 살던 가가노의 방식 그대로요. 

핏줄이 이어진 부자관계지만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25년의 세월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드라마틱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모가 머무르게 되면서 집은 서서히 사람의 온기가 생겨나요. 그리고 싹싹한 도모 덕분에 이사 온 뒤 20년 동안 이웃과의 만남이나 지역 활동을 하지 않았던 가가노에게도 서서히 이웃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도모가 일하는 편의점 주인 아저씨를 비롯한 자치회 회장 등을 만나게 되고, 얼결에 자치회 행사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물 흐르듯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도모의 모습을 보며 가가노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고 해야할까요.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을 겪어가며 가가노는 서서히 어엿한 성인으로서 이웃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일상 생활 가능하세요?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를만큼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가가노. 과연 가가노는 제대로 된 아빠가 될 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답답스러울만큼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그에게 도모의 존재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데요. 이윽고 도모가 머무르기로 정했던 기간이 다 지나갑니다. 도모가 떠나기로 한 날, 가가노는 제각각이고 엉성한 메뉴의 조합이지만 음식을 준비해요. 도모를 위해 두근대는 마음으로 한정 판매하는 '유자 가린토'를 예약합니다. 도모가 떠나기 전 둘이서 마주한 마지막 식탁에서 가가노는 비로소 아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지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에 깊이 동감하는 바, 이 소설의 가가노는 스물 다섯 살짜리 자신의 아들인 도모를 만나 비로소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그제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스스로 연락을 끊어버린 부모님을 찾아가요. 그동안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아들을 키워온 미쓰키는 가가노가 본가와 소식을 끊은 동안에도 아들 도모를 데리고 본가에 방문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부모님께는 '쓸데없는 소식은 전하면 일에 영향을 주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가노에게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던 미쓰키는 본가를 방문해 가가노가 쓴 소설의 내용이나 해석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려요. 본가의 책장에서 지금까지 발표한 책들이 한 권도 빠짐없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가가노는 아들 도모의 이름을 어디서 따 왔는지 유추해 내기에 이릅니다. 

'이 소설은 내 뿌리 같은 면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던 도모의 말을 기억해낸 가가노. 허둥지둥 도모의 일터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길 청하지만 일하는 중이라며 매몰차게 거절당합니다. 이후 가가노는 미쓰키에게 양육비 대신 잡지에 실리기 전 상태의 원고를 보내요. 그리고 서서히 사람이 사는 온기가 돌며 화사해지는 자신의 집으로 도모와 미스키를 초대합니다. 


"내 부모를 만나는 건 문턱이 높았을 텐데."

"그런가?"

"그렇지. 뜬금없이 누구냐고 생각할 테고, 문전박대당할 가능성도 있잖아? 게다가 당신은 우리 부모님 얼굴은 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 문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 애가 생기니까 내 인생인데 순식간에 주인공이 자식이 되어 버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는 아무 관계도 없어지고, 문턱 따위는 없어져 버려."

"흐음……. 대단하네, 자식이란."

"맞아, 대단해. 도모가 태어난 뒤로 난 자유가 사라졌지. 직업이라거나 취미처럼 그때까지 내가 쥐고 있던 것들도 대부분 사라졌고, 그래도 애와 있기에 맛볼 수 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감정은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미쓰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뭐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지만' 하며 어꺠를 으쓱했다. 그러자 '맞아, 아마 기분 탓이었을 거야'라며 도모도 웃었다.

걸작은 아직_P.256

이 작가의 전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서점 대상을 받은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생명의 끈』도 모두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는 가족을 그려냅니다. 다소 이상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부터 서서히 뭔가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결국엔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소설들인 것 같아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한 행복을 찾아가는 담담한 이야기들'이라고 표현한 역자의 글에 동감합니다. 다소 독특한 상황이지만, 담담히 펼쳐지는 일상속에서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 『걸작은 아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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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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