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 붓다 - 우주 존재법칙을 깨고 사라진
김병훈 지음 / 반디출판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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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4명중 1명은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또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 중 5명중의 1명은 개신교(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며 10명중의 1명은 카톨릭을 믿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의 교리 또는 가르침이 과연 석가모니나 예수가 가르쳤던 그 가르침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나 불교 모두 석가모니나 예수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깨달아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 부처가 어느 순간 신이 되어버린 불교나 거대하게 기업화되어 가고 있는 기독교 모두 진정한 가르침의 실천보다는 자본의 힘 아래에 들어가 버림으로써 진리에서 너무 멀리 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철저한 경험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으로 붓다는 다른 종교나 사상의 지도자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보습을 보였다. 고대 종교의 특징이라 할 만한 신비주의와 신격화를 거부했고, 계급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 P. 216.

 

붓다에게는 성별과 계급, 종족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 그의 가르침은 누구나 배우고 실행할 수 있는 해킹이었다. 독단에 빠져 다른 가르침을 무시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 P. 235.

 

<우주 존재법칙을 깨고 사라진 해커 붓다>는 스스로 깨달은 사람인 붓다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가 당시의 근본 종교인 흰두교를 극복하고 스스로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설파하였던 원래의 가르침을 현대 과학의 개념, 특히 정보의 개념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려고 한 책이다.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신이 없는, 그래서 인간 스스로 해탈할 수 있음을 가르치는 붓다의 가르침이 현대 과학의 심리학이나 뇌과학, 물리학 등이 주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불교 자체가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이 너무나 많이, 특히 현재 종교 지도자들조차도 의식하지 못할만큼 왜곡되어져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는 신이 없다. 그래서 창조주도 없고 심판도 없다. 발생이 있고 소멸이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자연의 법칙이 탐구 대상이었다. 여느 종교와 전혀 다른 불교의 본질이다. 불교가 과학적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다. 불교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과학이다. 종교와 분리된 서양의 전통과학과 탐구 대상이 달랐을 뿐이다. 불교는 이 우주에서 살아가는 중생의 운명을 탐구했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 우주를 본격 탐구하는 과학과 일치하는 사고가 발견되는 게 우연이 아니다. 불교가 그냥 과학임을 명심하자. 이것이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 P. 14~15.

 

과학자들은 삶에 대해 그저 우연이며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무의미하다는 점에서는 붓다와 비슷하다. 하지만 붓다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윤회하는 삶을 괴로움이라고 했다. 그리고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 P. 41.

 

붓다는 해커였다. 그는 자신이 경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만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합리적이지 않은 전통이나 권위 따위는 그에게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말에 불과했다.” - P. 213.

 

이 책 덕분에 연기, 해탈, 열반, , 팔정도 등의 불교의 용어를 고등학교 수업 이후 오랜만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불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탈에 이르는 종교이다. 신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종교도 사업이 되어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없던 신이 부처의 형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믿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는 불교뿐만이 아니다. 기독교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더 심하다.

목사가 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이다. 한 종파의 종교지도자가 오직 돈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간 것이다.

나름 정통기독교의 종교지도자들은 위로의 말 대신에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댄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레기를 대신한 목레기가 된 것이다.

과연 종교의 역할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무조건적인 믿음도 좋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자세가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닐는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붓다는 분명한 답을 제시했다. 존재법칙을 깨고 해탈을 이루고 싶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해킹을 배워 실행하면 된다. 감히 해탈을 꿈꾸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소박한 소망이라면? 착하게 살며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쌓으면 된다.” -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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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비즈니스 - 화이트 독 카페 창업자 주디윅스가 전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자연훼손으로부터 벗어나 모두가 잘 사는 방법!
주디 윅스 지음, 박여진 옮김 / 마일스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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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의 확보를 통해 규모의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과 사회적 책임을 행하고자 하는 시민운동의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오랜 시간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이고, 그 이윤을 바탕으로 계속적으로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으로 알아왔던 우리들에게 어느날 다가온 기업적 측면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행하는 사회적 기업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당연히 대기업들처럼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번에 밀어붙이는 힘이 없기에 끈끈한 인간관계와 지역관계를 통해 생활에 밀착한 운영을 통해 지속성장해 가는 것이 더 신기하게 생각될 뿐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은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벌어지는 논쟁처럼 거대 정부나 거대 기업의 통제를 받는 삶이 아니다. 작은 것에 기반을 둔 다양하고 독창적인 독립 기업과 지역 곳곳에 분산된 소규모 농장으로 이루어진 경제도 얼마든지 구축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곳에서 시작된다! 또한 이는 경제 시스템을 조직하는 가장 맛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 P. 230~231.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기업의 권력이 잘못 사용되면 인류의 공동 자산인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 등은 파괴된다. 그리고 그것을 파괴해 더 많이 번 돈은 권력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대기업이 우리의 환경과 모두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법을 무시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로비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위험에 처하는 것은 환경과 민주주의뿐이 아니다.... 돼지를 향한 제도화된 잔학성은 우리의 인간성도 파괴한다.” - P. 312.

 

이제는 사회적 기업과 공정무역, 슬로푸드, 지역경제 커뮤니티 등의 용어들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단어들이다.

위의 용어들은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익숙해진,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의 대규모화, 다국적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또한 조금의 육체적 불편과 기다림을 싫어하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보면 상당히 귀찮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자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대기업, 다국적 기업, 그리고 정부관료 등의 벽을 넘어서서 인간중심의 운영이 가능하게 하려면 지역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 커뮤니티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비즈니스란 곧 인간관계라고 배웠다. 이 말은 돈은 그저 수단일 뿐으로 중요한 것은 물건을 사거나 파는 사람 혹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이며, 나아가 지구 자체와의 관계라는 의미다. 내게 사업은 삶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식이다.” - P. 18.

 

어쩌면 현재 간과되고 있는 문제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의 집중일지도 모른다. 경제 정의는 소유의 집중이 아니라 분산을 통해 성취되지만, 오늘날 실질적인 부는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서 창출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소유가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분산되어야 경제적인 힘이 본래 있어야할 곳, 즉 고유의 커뮤니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자명해진다. 소유주가 더 많다는 것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를 의미한다. 나아가 더 강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또한 소유주가 많다는 것은 개인의 창의력과 혁신을 발휘할 기회가 더 많아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지휘와 통제식 기업구조에서 나오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경제체제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라도 성공을 지속적인 물질적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커뮤니티와 자연 환경의 건강함 및 행복으로 측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 P. 329~330.

 

<뷰티풀 비즈니스>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10평 정도의 머핀가게에서 시작하여 연 매출 500만불을 달성한 화이트 독 카페의 창업자이자 여성 경영자인 주디 윅스의 이야기로, 소수를 위한 이윤의 추구와 규모의 기업보다는 직원과 지역민, 그리고 지역 기업들과의 협동을 통한 다른 경영, 다른 방식의 경쟁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끈 이야기이다.

부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이루며 세상을 바꿔가는 저자의 삶과 경영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책도 저자의 철학이 반영되어 재생종이를 사용하여 제작되어 있다.

 

이 책에는 그런 내가 남녀 모두에게 유용한 여성만의 에너지를 발견해 여성 경영자로 우뚝 서기까지 얻은 깨달음도 들어 있다. 나는 그 에너지를 배려하는 인간관계, 진심에서 우러나온 결정, 경쟁자들과의 협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정 많은 경제를 구축하는 데 사용했다.” - P. 19~20.

 

나는 새로운 국제경제는 아주 단순한 이치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경제가 딛고 서는 것은 다른 생명을 향한 우리의 배려심이다. 새로운 경제는 진심으로 아끼는 것을 지키고 보살피는 데 필요한 일을 하려는 우리의 의지 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나는 진정한 경제 변화를 위해 오랫동안 갈망한 해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변화는 기업인의 가슴에서 그리고 더 중요한 소비자의 가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랑과 연민의 힘이다.” - P. 316.

 

슬로푸드, 지역경제,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 등 모든 단어들의 바탕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심과 관계가 바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내 가족, 이웃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서로의 관심과 존중, 사랑이 손쉽게 구매하여 간단히 사용하고 버리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극단적인 이윤추구와 개인주의를 극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나라에도 저자의 화이트 독 카페와 같은 기업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다만 경영에 대한 경험부족과 관심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만이 이러한 사회적 기업들의 성장을 이끌 수 있고, 지역경제와 지역민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온 결정을 하면 다른 이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최대 이익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 교훈을 한꺼번에 깨달은 것은 아니다.... 다행히 변화와 관련해 내가 내린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가슴에서 우러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때는 늘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길을 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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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 - 일상을 지배하는 교묘한 선택의 함정들
노리나 허츠 지음, 이은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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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 수천가지 이상의 선택을 한다.

그 선택에는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어떤 제품을 사고, 어떤 집을 사고, 어떤 의사를 선택하여 수술받을까와 같은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선택이 들어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한 극히 자율적인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라고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의 모든 선택이 과연 내가 원하는 선택이었는가를 말이다.

혹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왜곡되었거나 제한되었다면 과연 나의 선택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모든 조건들이 정확히 전달된 상태에서 선택하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업들이 왜 엄청난 돈을 들여 하는 CF들과 같은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것일까?

우리가 선택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우리가 원하는 후보들이 맞는가?

아니면 제한되어 주어진 후보들 중에서만 선택하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일까?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결정에 도달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은 머뭇거리면서 잘 대답하지 못한다.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예측을 하고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세심하게 파고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과 재산, 안전한 미래를 지키고 싶다면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이는 스스로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문제다. 타인의 명령이나 간섭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굴려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 P. 17.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저자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스스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가지 사례들과 이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6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선택의 상황에서 자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고 감춰지거나 왜곡되어진 선택의 조건속에서 선택하며, 거기에다 스스로의 평온하지 않은 쫓기는 듯한 감정의 상태와 주변 조직의 분위기 등에 의해 올바르지 않은 선택들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하여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설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 준다.

이 책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선택의 조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어렵지 않게, 많은 사례들을 통해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모두에게 결정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율권을 통해 더욱 독립적으로 현명하게 사고하고 자신 있게 결정을 내리게 되길 바란다. 타인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수용하지도, 자신의 직감이나 분석을 의심없이 따르지도 않으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고 스스로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내리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P. 30.

 

저자는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조건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다시 한번 뒤집어볼 것을 말한다.

왜 이런 조건이 주어졌는지, 다른 조건들은 없는지, 숫자나 그래프 등이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혹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의 기복이 심한 감정에 쫓기지는 않는지, 조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과 조직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선택의 조건들을 이해할 경우에만 최대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또한 조직은 다양한 조건들의 조직원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에, 비록 조직의 방침에 반대한다 할지라도, 귀를 기울여야만 그릇된 선택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최근에 본 내용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 처음에 내린 판단 혹은 가장 듣고 싶은 내용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관찰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 P. 53.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내부 집단, 네트워크, 관리팀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반대 의견은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핵심 요소다. 차이 역시 마찬가지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면 의사를 결정할 때 자기와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갖춘 사람을 포함시켜야 한다.” - P. 276.

 

이제 곧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정치인들은 최대한 자신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데 전문가들이다.

이 말은 전문가들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솔직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전문가들은 자신이 아는 것 외에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자신의 말만이 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선택의 순간.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보여주는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를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개과천선해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의 과거에 걸어온 길을 보면 현재와 미래가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을 위해 살지는 못하는 법이다.

제발 모든 사람이 지연, 학연, 인연을 떠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보다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독립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우쳐야 하며 가능한 한 주변을 제어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고 싶지 않다면 그들의 속임수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 P. 88.

 

패러다임을 바꾸고 돌파구를 마련하며, 잘못된 믿음을 타파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각을 끝까지 철저히 추궁하고 우리의 견해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생각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이를 두려움없이 토론의 중심으로 들여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진보는 아이디어 창출에서는 물론이고 파괴에서도 일어난다.” - P. 29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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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읽다 - 역사와 삶의 고비마다 고려를 지키고 빛낸 문장들
이혜순 지음 / 섬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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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에 대한 논쟁이 많다.

국내의 역사교육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우리의 입장에서)에 대한 논란 또한 격하다. 올바른 역사교육과 이해는 왜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왜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일까?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은 왜 그토록 왜곡하려고 힘을 쓰는 것일까?

아마도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각 나라와 민족의 정신문화와 영토에 대한 존재 근거와 자존감을 형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에다 현대에 와서는 영토와 문화의 확보가 엄청난 경제적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일의 기록이기에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되어진다. 물론 기록할 당시의 어떤 관점에서 기록하였는가도 중요하겠지만, 현재에서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역사를 기록할 당시는 권력을 가진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겠지만, 후대에 역사를 해석하는 이는 기록되어진 역사 뿐만 아니라 기록되어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까지 고려하기에 기록 당시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고려를 읽다>는 반만년 역사속에서 우리나라의 다른 왕조에 비해 훨씬 덜 알려진 고려시대를 여러 역사적 기록속에 남겨져 있는 그 시대의 글들 - 문학적인 가치가 높은 글부터 정치적인 글, 외교문서, 논설문, 편지, 묘지문, 종교 의례문, 과거시험 문제까지 - 을 통하여 고려시대의 왕과 학자들, 그리고 정치적 상황과 국제적 정세 등의 이해를 시도한 책이다.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은 왕과 신하의 관계에 관한 12편의 글을, 2장은 국제적인 외교문서 9편을, 3장은 우정에 관한 글 12편을, 4장은 인간의 생에 대한 글 9편을, 5장은 사대부들의 삶과 철학, 사회와 역사인식에 관한 글 20편을, 6장에서는 종교와 학문에 관한 10편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각 글별로 글쓴이와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원문의 번역과 원문을 함께 수록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하였고, 마지막에 전체적인 해설을 넣어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적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자료가 제한되어 있어서였게지만 아쉽게도 글을 지은 이들이 몇분의 인물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과 이 책을 읽는 나의 지식이 모자라 책에 수록된 원문을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 저자에게 죄송할 뿐이다.

 

고려사는 우리에게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조선시대에 비해 친밀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것은 고려시대의 수도가 개성이었고, 현재 개성이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역사적 자료들이 북한쪽에 많기에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하여 드라마나 영화같은 매체에서도 가장 자료가 많은 조선과 많은 유물을 남긴 통일신라를 많이 보여준 영향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통일이 된다면 고려사에 대한 보다 많은 유적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려사도 다른 왕조의 역사만큼 중요한 우리의 역사이기에.

이 책 또한 고려사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자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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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철학 - 고뇌하는 인간, 호모 파티엔스를 만나다
와시다 키요카즈 지음, 길주희 옮김 / 아카넷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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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 인()이라는 글자가 서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듯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하는 말과 행동 등으로 도움과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과거와 같은 공동체나 대가족 단위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소가족 단위로 나뉘어지면서 서로에게 도움이나 위로, 그리고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정신적인 외로움과 고독은 늘어났을 것이다.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문제들은 더 꼭꼭 숨겨놓고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싫어하거나 무관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아무런 조건이나 이익의 고려없이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종교의 필요성이 더 부각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듣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듣기를 본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받아 들였다는 확실한 사건이다.... 나는 듣기’, 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하는 이에게 자기 이해의 장을 열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P. 19~20.

 

<듣기의 철학>은 고뇌하는 인간, 즉 호모 파티엔스인 현대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하기 또는 말하는 방법에는 엄청나게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철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다.

특히 저자가 인간이 특정한 누군가로써 다른 누군가와 만나는 장면이나 자기 자신 역시 변화되어 가는 경험의 장면, 고통의 장소로 정의하는 임상의 현장에서 듣기가 중요함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글들과 일본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듣는 방법이 아닌 듣기 그 자체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철학하는 사고를 이야기하듯이.

 

“‘듣기에 관한 철학적 연구가 아니라 듣기그 자체로서의 철학은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알고 싶다, 다른 사람과 닿고 싶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고 하는, 절박함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그래서 듣기의 철학은 이런 소통의 장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 - P. 11.

 

그런데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임상이라 불리는 장소에 등장하는 사람일까. 임상과 비-임상은 직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든 없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우, 혹은 공사를 불문하고 상담을 받는 경우, 바로 임상이 되는 것이다. 즉 사회의 베드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 P. 136.

 

다만 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려운 현대의 철학용어와 낯선 일본식 단어들이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용어들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쉽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험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이해시키고자 글로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을터인데, 그러기엔 어렵다.

이래서 일반인들은 철학을 더 어렵게만 느끼고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철학의 위기누구 앞에서, 무엇에 대해 대화가 이뤄지는가?’ 라는 질문을 철학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철학에서 반성이라고 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장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 P. 37.

 

듣는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상대방과의 연결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흘린다면 서로의 연결은 불가능하겠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은 서로가 느끼고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공유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듣는다는 것, 들어준다는 것.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는 것이 뛰어난 현대인들에게 듣기는 자기수양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겠는가.

 

길고 굽어진, 울퉁불퉁하고 잡다한유보의 길에서 인간은 진정한 사색과 만난다. 생각지도 않은 우연한 만남이다. 쓸모없는 것들에도 눈을 돌려본다. 스스로가 방법의 길 위에 있으면 절대 접할 수 없는 것들과 만나는 것이다. 호스피털리티의 길은 틀립없이 적당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가능하면 함께 쉬면서 도중에 놀기도 하고 돌고 돌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진정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함께하는 일, 어떤 목적도 없이 함께 걷는 일,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걷는 일이 가지는 의미를 걸어가는 길 위에서 생각학는 것, 거기에 듣기의 철학, 임상철학의 길이 있지 않을까.” -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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