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의 철학 - 고뇌하는 인간, 호모 파티엔스를 만나다
와시다 키요카즈 지음, 길주희 옮김 / 아카넷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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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 인()이라는 글자가 서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듯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하는 말과 행동 등으로 도움과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과거와 같은 공동체나 대가족 단위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소가족 단위로 나뉘어지면서 서로에게 도움이나 위로, 그리고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정신적인 외로움과 고독은 늘어났을 것이다.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문제들은 더 꼭꼭 숨겨놓고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싫어하거나 무관심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아무런 조건이나 이익의 고려없이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종교의 필요성이 더 부각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듣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듣기를 본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받아 들였다는 확실한 사건이다.... 나는 듣기’, 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하는 이에게 자기 이해의 장을 열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P. 19~20.

 

<듣기의 철학>은 고뇌하는 인간, 즉 호모 파티엔스인 현대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말하기 또는 말하는 방법에는 엄청나게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철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다.

특히 저자가 인간이 특정한 누군가로써 다른 누군가와 만나는 장면이나 자기 자신 역시 변화되어 가는 경험의 장면, 고통의 장소로 정의하는 임상의 현장에서 듣기가 중요함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글들과 일본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듣는 방법이 아닌 듣기 그 자체로서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철학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철학하는 사고를 이야기하듯이.

 

“‘듣기에 관한 철학적 연구가 아니라 듣기그 자체로서의 철학은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알고 싶다, 다른 사람과 닿고 싶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다고 하는, 절박함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그래서 듣기의 철학은 이런 소통의 장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 - P. 11.

 

그런데 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임상이라 불리는 장소에 등장하는 사람일까. 임상과 비-임상은 직업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든 없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우, 혹은 공사를 불문하고 상담을 받는 경우, 바로 임상이 되는 것이다. 즉 사회의 베드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 P. 136.

 

다만 철학적 지식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려운 현대의 철학용어와 낯선 일본식 단어들이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용어들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쉽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험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이해시키고자 글로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을터인데, 그러기엔 어렵다.

이래서 일반인들은 철학을 더 어렵게만 느끼고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철학의 위기누구 앞에서, 무엇에 대해 대화가 이뤄지는가?’ 라는 질문을 철학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철학에서 반성이라고 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장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 P. 37.

 

듣는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상대방과의 연결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흘린다면 서로의 연결은 불가능하겠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은 서로가 느끼고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의 공유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듣는다는 것, 들어준다는 것.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말하는 것이 뛰어난 현대인들에게 듣기는 자기수양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겠는가.

 

길고 굽어진, 울퉁불퉁하고 잡다한유보의 길에서 인간은 진정한 사색과 만난다. 생각지도 않은 우연한 만남이다. 쓸모없는 것들에도 눈을 돌려본다. 스스로가 방법의 길 위에 있으면 절대 접할 수 없는 것들과 만나는 것이다. 호스피털리티의 길은 틀립없이 적당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가능하면 함께 쉬면서 도중에 놀기도 하고 돌고 돌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진정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함께하는 일, 어떤 목적도 없이 함께 걷는 일,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걷는 일이 가지는 의미를 걸어가는 길 위에서 생각학는 것, 거기에 듣기의 철학, 임상철학의 길이 있지 않을까.” -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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