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평점 :
무심코 넘긴 페이지에 "가판대 앞에서 모닝커피와 도넛을 사려고 선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갑자기 몇달전 런던에서 로마에서 노천까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나른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두말없이 책을 잡았다. 가보지 못한 뉴욕의 활기차고 세련된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에 해외여행의 달콤한 추억까지 되새겨볼 수 있겠다 싶었다.
아...... 그러나, 아뿔싸......
호기심에 책을 끌어당기는 순간, 나의 예상을 뒤엎은 저자의 담담한 고백.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저자는 아무일도 없을 듯한 어느날, 아내의 교통사고를 접한다. 불행히도 그의 아내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떨어져 열차가 덮치는 사고를 당하고 하반신불구가 되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고 책뒷편의 소개란을 읽어본다. 단순히 가볍게 읽고 치워버릴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그림들 사이로 짧게 써내려간 그의 글들이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며 마음을 흔든다.
아내의 사고로 분명 절망적이었을 시간들을 보내면서 저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사고를 당하기 전 행복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할 시간조차 없었던 시간들이 천천히 흐르고 그는 서서히 평범한 일상에 머물러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애정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노트에 떨어지는 햇살, 냉장고에 붙여 있는 아들의 그림들, 식탁아래 살며시 구르는 먼지덩이. 나는 이들의 축복을 느끼고 싶고, 또한 나 자신이 이들의 일부이자 원인이 되고 싶다. 그림자체보다는 이러한 유대감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다."라고...... 그에게 있어 그림은 그 완성에 있지 않고 그리는 과정에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동안 주위에 존재해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기에 세상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지...... 저자는 그리는 모든 대상들을 아무런 사심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그것은 어쩌면 불가에서 말하는 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가 고통을 이겨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너무나 따뜻하고 평온해서 자주 책장을 넘기는 손이 더뎌지고 눈길은 그림 하나하나에 멈춰지곤한다.
그의 삶을 통해 새로울 것 없는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