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 - 상 - 전면개정판 춘추좌전
좌구명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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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은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역사서인 《춘추》에 좌구명이 주석을 가한 책을 말한다. 과거에 나는 한길사에서 신동준 역자가 3권으로 번역한 《춘추좌전》으로 《춘추》를 처음 접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 책의 개정판이 출시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상, 하 두 권으로 번역됐다. 이 리뷰는 개정본 《춘추좌전》 상권에 대한 리뷰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난세의 시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그리스 폴리스 국가들의 경쟁 체제도 난세 중의 난세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비하면 포스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중국의 난세는 무려 500년이나 가까이 지속됐고, 이런 난세의 시기는 세계사에서 흔하지 않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21세기는 외면적으로는 치세의 시기를 보내는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무조건적으로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법칙이 강조됐고, 그렇기에 겉으로는 평화로운 치세의 시기더라도 실상은 난세의 시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춘추좌전》은 이런 난세 중의 난세의 시기를 다룬 역사서다. 물론 고대의 난세와 오늘날의 난세는 시대적인 이질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난세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기에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적인 사례를 배우는 것도 오늘날의 난세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춘추좌전》은 춘추시대의 제후국 중 하나인 노나라의 역사를 기준으로 전개한다. 다른 나라들도 많지만 왜 하필 노나라인 것일까? 이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자는 말년에 이르러 《춘추》라는 역사서를 편집했다고 한다. 《맹자》에 이르길 공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것도 《춘추》일 것이요, 자신을 비난하는 것도 《춘추》로 비롯할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노나라는 그런 공자의 조국이었고, 공자는 자신의 조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춘추》라고 알려져 있다.공자는 왜 노나라 역사를 정리한 것일까? 단순한 애국심에서 저술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가 자국의 역사를 편찬한 이유는 바로 노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에 있었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명재상인 주공이 봉지로 받은 나라였다. 주공은 유학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하의 롤모델이었다. 그는 왕좌를 찬탈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황위를 이을 어린 조카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런 주공이 건국한 나라였고, 또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주나라 황실의 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국가였다. 따지고 보면 공자의 유학 역시 이러한 전통으로부터 정립된 철학이므로, 공자가 노나라의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찬란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노나라지만, 노나라는 중원의 패권과는 거리가 있는 국가였다. 《춘추좌전 상》은 노은공에서부터 노양공의 치세 중반까지를 다루는데, 읽은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노나라의 역사는 힘없는 나라의 기록이었고 오히려, 다른 국가들의 팽창이 더욱 돋보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나라는 관중과 환공의 제나라, 그리고 떠돌아다니며 인생의 역전을 노렸던 진문공의 이야기, 남쪽의 강국 초나라의 부상 등등이다. 이들은 차례대로 춘추시대의 패자를 선포한 군주국이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주나라 중앙 황실은 지방의 제후국을 제어할 수 없는 그저 명목상의 천자로 전락했고, 힘 있는 국가들은 힘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규정했다. 제환공, 진문공, 초장왕은 차례대로 패자에 오르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힘을 숭상하는 분위기는 고조됐고, 국제질서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군신관계도 힘에 의해 결정 났다. 힘없는 주군을 시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이 시대에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노나라 역시 이런 참화로부터 벗어날 순 없었다.

즉 춘추시대는 이전 시대에 있었던 도덕과 덕이 떨어진 시대였고,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소위 막장의 시대였다. 대륙은 욕망의 전란으로 들끓었고, 평화보다 전쟁이 더 일상화된 시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이 발전했고,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대적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역사학이 발전했다. 《춘추좌전》 역시도 혼탁한 시대를 바로잡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하게 만들어진 고전이었다. 《춘추좌전》의 백미는 역사적인 기술도 기술이지만, 그것을 넘어 역사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관점에 있다.

사학자 랑케는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면 E.H. 카는 객관적 역사를 토대로 한 주관적인 역사를 강조했다. 이를 《춘추좌전》에 대입하여 설명해보자. 공자가 편찬한 《춘추》의 본문은 소략하기 그지없다. 짤막한 단문으로 역사적 사실만을 짧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춘추》는 랑케의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춘추좌전》은 이런 공자의 짤막한 기록에 풍부하고 자세한 해설을 첨가했다. 재미있는 점은 짤막한 본문을 자세하게 부연하여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춘추좌전》의 묘미는 바로 이 사관의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이렇게 생각해서 잘못됐다. 이 사건은 이렇기 때문이 바른 일이다.' 그렇기에 《춘추좌전》은 E.H. 카의 의미론적인, 주관적인 역사관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

《춘추좌전》의 저자는 왜 이렇게 시대적인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걸까? 바로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막장으로 치닫는 난세, 그저 힘이 최강인 시대가 과연 옳은 시대일까? 땅에 떨어진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어떻게 바로 세워야 하는가? 야만의 시대에서 사라진 과거의 문명적 관습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 그런 치열한 관념 아래에서 《춘추좌전》은 탄생했다. 평가의 백미는 '군자'라고 칭하는 인물이 사건을 평가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군자는 저자를 뜻하며,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당대의 지성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춘추좌전》의 필법은 '춘추필법'이라는 이름으로 후대 역사가들에게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각인됐다. 이러한 춘추필법의 영향으로, 후대의 역사가들은 무미건조한 사실만을 기록하지 않으며,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서 자신의 의견을 사건이나 인물 말미에 정리하였다. 이런 사관의 주관적 논평이 뛰어나면 그 역사서는 높은 명성을 받았으며, 논평이 편협하고 타당하지 않으면 역사서의 평가 역시도 덩달아 낮았다.

물론 《춘추좌전》의 해석이 타당한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춘추좌전》은 유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역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유교적인 마인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건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명분론에 입각한 모습도 보이고, 너무 형식적인 해석도 볼 수 있었다. 자리를 바로 세우고, 권위를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부분은 봉건 국가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이런 것들을 너무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소소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춘추좌전》은 매우 뛰어난 책이다. 동양 사서 집필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몰락하는 시대의 기준을 바로 세우려고 했다는 점, 그리고 숱한 역사적 사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처세와 치국의 팁 등 배울 점이 무궁한 고전이다. 살아남은 책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다만 방대한 분량과, 생소한 문체와 배경 등등이 다가가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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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777 2021-07-1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훌륭한 서평이십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6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6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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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바로 이상과 현실이며, 또 하나는 역량과 운명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정치적 저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서 역량과 운명을 각각 비르투와 포르투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웅전 6권 역시 인물들을 통해 이상과 현실, 그리고 운명을 고찰하고 있다.(대놓고 무시하려는 의도로 저술한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전기를 제외한다면) 디온과 브루투스 그리고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는 각각 자질과 역량을 갖췄으며, 자신의 이상이 확실했고, 그 이상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디온과 브루투스는 실패했고,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는 자신이 이루려는 것들을 성취한다.

물론 디온과 브루투스는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가 가졌던 좋은 운이 없었다. 그럼 결과적으로 좋은 운명이 인간의 성공을 가르는 주요한 요소인 것일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디온과 브루투스는 소위 말하는 좋은 운빨이 없었고, 그랬기에 능력을 갖추고도 실패했지만, 열전을 읽다 보면 실패의 원인이 결국 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디온은 너무 강직했고, 비타협적이며, 자신의 이상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들을 모자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민주정이라는 열망을 가졌지만, 권력을 잡고 휘두를 때 그의 모습은 민주적이기보단 독단적인 참주의 모습과 닮았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플라톤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디온을 최대한 좋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디온의 결점은 숨겨지기보단 부각됐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도 운 때문에 실패한 것일까? 물론 그런 점도 있다.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과 싸울 때, 브루투스의 지지 세력이 바다에서 승리했다는 전갈을 일찍 받았다면, 그는 마지막 교전에서 좀 더 여유롭게 전쟁을 수행했을 것이다. 당시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우스는 물자가 매우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브루투스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현실을 바라보는 이상주의다. 그는 플라톤의 철학에 너무 심취했고 그랬기에 정치적인 현안을 현실적으로 결정해야 할 때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였다. 카이사르를 죽이고 주저 없이 안토니우스를 바로 공격했더라면 애초에 로마 밖으로 방랑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며, 어쩌면 로마는 그가 원하던 공화정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고, 현실적인 정치 현안을 마냥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다. 그 결과 브루투스는 패배하였고, 카이사르의 대표적인 암살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상을 현실화하는 것은 만인의 꿈일 것이다. 그런 꿈을 실현하는 데에는 운명과 역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역량을 키우기보단 운명을 앞세운다. 그렇기에 큰일을 두고 점을 본다거나, 결혼을 앞두고 사주를 보거나 한다. 로마나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앞두고 신전에 재물을 바치고 제를 올렸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상님들에게 제사를 올리며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인간은 불안하고 흔들릴 때마다 종교에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이 모든 것이 운명 앞에 부평초같이 흔들리는 인간이기에 행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디온과 브루투스 그리고 티몰레온과 아이밀리우스의 공통점은 모두 출중한 역량을 갖췄다는 점이다. 즉 성공에 대한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춘 뒤에 운명에 자신을 호소하라는 것이 플루타르코스의 핵심이다. 아이밀리우스 편을 읽다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성공을 자만하지 말라. 가변적인 운명의 철퇴를 언제 맞을지 모른다. 생 앞에서 늘 겸손하라.'

나는 인간이란 존재가 불안전하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운명을 신봉하는 것에 딴죽을 걸고 싶지 않다. 다만 플루타르코스가 주장하듯,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고 나서 운명에 스스로를 맡겼으면 좋겠다. 흔히 말하는 동양 속담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여기에 아이밀리우스의 명언을 붙여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늘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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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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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문화를 상징하는 정서는 '한'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한의 정서란 슬픔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의 정서는 슬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극복하거나 이겨내기 위해 슬픔이란 감정을 또 다른 무언가로 승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숱한 어려움과 외침 속에서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한의 정서가 발달했다. 민족의 노래라고 불리는 아리랑은 이러한 '한의 정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위인인 추사 김정희의 삶과 작품도 마찬가지다. 추사의 삶과 예술 속에는 한민족의 DNA라고 할 수 있는 '한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추사의 초년기와 중년기 시절은 매우 행복한 시기였다. 추사의 본관 경주 김 씨 가문은 당시 순조 시대에 수렴청정을 했던 정순왕후의 집안이다. 정순왕후는 정조 사후 수렴청정 당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한 여군이었다. 그렇기에 추사 부자도 정순왕후의 혜택을 받아 순탄한 공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과거를 공부하며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하는 추사의 초년기는 문인 특유의 낭만이 가득한 시기였다. 문화적으로 앞선 청나라의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추사는 경학과 금석학 고증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 뒤 대과 급제 이후 벼슬길도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정순왕후가 죽고, 정치판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자 결국 추사 부자는 실각했고 기나긴 귀양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조선, 사대부의 자손에게 벼슬길이란 살아가는 이유이자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정치적 실권을 한순간에 잃었으니 추사의 아픔은 오죽했을까? 당시 정치판은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고, 보복적인 정쟁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추사는 결국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예술에 몰두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실각에 굴하지 않고, 응어리진 한을 예술적 활동으로 승화하였다. 그 역시 사대부 출신이니 입신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말년의 추사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예술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기존의 사대부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인 삶을 과감하게 포기했고, 예술적 삶을 추구하면서 조선의 예술을 한 단계 드높이는데 일조했다. 

 그의 성격은 깐깐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년기와 중년기에는 선진 청나라의 해외 견학 때문인지 국내의 작품과 작가들을 평하는데 있어 극도로 냉정했다. 이런 깐깐함 덕분에 추사는 적을 많이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정치적인 실각 이후에는 그의 모난 성격은 세월의 풍파 앞에서 점점 둥글어졌다.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것은 추사는 타인에게도 엄격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냉정하고 엄격했다. 그렇기에 타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칭송할 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칭찬하지 않았다. 저자가 말하듯 추사의 성격은 완벽주의자들의 성격과 닮아 있었다. 그랬기에 추사의 작품은 시대가 흐를수록 다른 양식과 다른 모습으로 구현됐다.

사실 나는 예술에 관해서는 소양이 짧은 편이라서, 저자인 유홍준 교수가 설명하는 작품 설명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 했다. 책을 통해 잘 인쇄된 추사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자의 시각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해준 밥을 그저 떠먹기만 한 셈이다. 그래서 추사의 작품에 대해서 뭐라 전문적으로 글을 쓰진 못하겠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추사의 작품은 앞서 말한 대로 고정적이기보다 늘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청나라 고증학 학자들에게서 배운 '입고출신 - 옛것을 본받고 새롭게 하라 - 정신'에 충실했다. 그래서 추사의 글씨와 그림 작품들은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틀을 존중하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천재성을 그는 작품 활동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랬기에 그의 정치적 삶은 비루하고 우울했지만, 그의 예술적 삶은 낭만이 가득했고,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들었다. 아마 유홍준 교수도 이런 추사의 해학적, 낙천적, 풍류적인 모습을 인생에 귀감으로 삼았기에 추사를 공부하고 그의 평전을 작성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예술에서 보여준 추사의 천재성은 보통의 범인들이 본받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자질이다. 그렇기에 나와 같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추사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예술적인 천재성이 아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적 실각 이후에 추사는 다른 양반들처럼 인생을 낭비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며, 자신의 예술에 모든 것을 불태웠다. 추사의 천재성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피나는 노력의 공도 빠트릴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그러나 추사는 타인에게도 깐깐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더더욱 깐깐했다. 이런 깐깐함은 스스로 예술을 대하는데 있어 피나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그랬기에 그는 조선 후기의 예술을 한 단계 더 드높일 수 있었다. 이런 추사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뜻깊은 귀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조선 후기 정치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추사와 다산과 같은 인재들이 쓰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추사와 다산이 정치에서 활동했다면 과연 그들이 오늘날에 이룬 것처럼 각각 예술과 학문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냈을까?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덧없는 것이지만, 나는 추사와 다산과 같은 인물들이 오히려 정치판에서 소외됐기에 예술과 학문에서 빛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정치에 있었다 한들, 조선의 구조적인 정치판은 그들만의 노력만으로 개혁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이미 조선 후기 정치의 구조적인 모순은 한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뛰어난 명군인 정조 역시도 조선의 구조적인 개혁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물며 추사는 성격 자체가 너무나도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이기에 정치와는 더더욱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추사가 실각한 것은 어쩌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도, 조선의 예술에 있어서도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적지 않은 평전을 읽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의 품평을 내리자면 이 평전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우선 추사의 작품 도판을 깔끔하게 수록하여서 추사의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책의 최대 장점이다. 또한 유홍준 교수의 편안한 글 솜씨 역시도 평전의 품격을 높이는데 일조하는 것 같다. 유시민 작가는 글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단순함, 명확함, 평이함에 있다고 하였다. 유홍준 교수의 글은 평이하고 친근하며 핵심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평이함과 친근함을 넘어 그의 글에서는 현학적이며 기교로운 문체 역시도 중간중간에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기교가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시민이 말하는 단순성을 가짐과 동시에 자신만의 현학적인 기교가 돋보인다. 대중성과 개성을 두루 갖춘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강약 조절이 매우 성공적이기에 그의 글은 편안하면서도 나름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대중은 그의 글을 좋아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역시도 이러한 이유로 밀리언 셀러가 되지 않았겠는가 생각해본다. 정리해보자면 이 책은 편집도 수준 이상이며, 저자의 필력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책이다. 또한 책의 표지도 내 취향이라 참 마음에 든다.

사실 나는 유홍준 저작을 웬만하면 다 구매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역시 전질을 구매했고, 문화를 설명하는 그의 책은 거의 소장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완당 평전》 역시도 소장하고 있다. 두 책을 비교해보건대, 확실히 《추사 김정희》가 더 대중적이다. 게다가 컬러 도판과 편집도 《추사 김정희》쪽이 훨씬 보기가 좋은 것 같다. 또한 전작인 《완당 평전》에는 몇몇 군데에 오류가 있다고 했는데, 최신판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수용하고 참고하여 저술했다고 하니 완성도에도 심혈을 기울인 것 같다. 조선의 인물을 다루는 평전은 대부분 정치적 인물에 치중됐는데 전혀 다른 관점의 예술적 인물을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나 역시 최근 정치적인 인물들의 평전만 읽었는데, 예술적인 추사의 삶을 읽으며 제대로 힐링한 것 같다. 권력의 정점에서 휘두르는 삶도 멋져 보이지만, 교양 있는 명사들과 기품있게 소통하는 삶 역시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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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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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에서 가장 인상적이며, 가장 쪽수도 많이 잡아먹는 인물이 바로 폼페이우스다. 실제로 그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정다감한 성격, 고귀한 성품, 덕 있는 태도 등등 내면적인 품성도 아주 아름다웠으며, 실제적인 능력 역시도 탁월했다. 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사르와 비교를 해봐도, 카이사르의 군사적 업적은 폼페이우스에 비교하면 흔히 '듣보잡' 수준이라고 할 만 한다. 폼페이우스는 지상으로는 3개의 대륙,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소아시아에서 승리를 거뒀으며 바다로는 지중해 연안 일대를 장악한 인물이다. 실제로 이전까지의 로마 인물들 중에서는 이렇게 방대한 영역에서 전공을 세운 자가 없었다. 그는 로마의 위용을 넓힌 영웅 중의 영웅이다. 게다가 그는 비록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지만, 다른 권력자들과는 다르게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비교적 깔끔했다. 그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다. 소아시아 원정 도중에도 미트리다테스의 여인들을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돌려보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이 왜 카이사르에게 패배했을까? 실제로 카이사르와 전쟁을 할 당시에 객관적인 조건을 봐도 카이사르보단 폼페이우스가 훨씬 유리했다. 폼페이우스는 따르는 인물들이 많았으며, 막대한 해상 세력권과 더불어 정부의 원로들도 대부분 그를 지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자국 내에서도 폼페이우스의 인기는 카이사르보다 훨씬 높았고, 그로 인해 군사들도 훨씬 많았다. 왜 그토록 유능하고 유리했던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것일까?

첫 번째 원인은 바로 카이사르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카이사르는 그저 그런 군벌 세력이 아니었다. 그는 크랏수스의 영악함과 폼페이우스의 군사적 재능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카이사르는 갈리아에 있을 때 로마의 지지세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온갖 뇌물을 동원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으며 모략과 계략에도 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정적 카이사르를 그저 갈리아의 지방관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두 번째는 준비성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늘 갈리아에서 정예병을 훈련하고 있었다. 기회가 오면 갈리아의 군단을 움직여 로마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속셈이었다. 반면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관리구역인 이베리아반도의 군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성공 뒤 로마에 머물러서 부인과 함께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냈다. 이미 국내에서는 자신을 제거할 세력이 없다고 판단하였기에, 이런 안일한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로마 안에서는 그를 대적할 세력은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너무 과신했다. 그랬기에 카이사르가 움직이면 전방위로 병력을 동원하더라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이 터졌을 때, 폼페이우스의 군대는 카이사르의 군대보다 두 배 가량이 넘었지만, 정예화된 카이사르의 군대에 패배했다. 만약 폼페이우스가 젊은 시절에 대륙을 정벌하듯 평소에 군대를 준비했다면 카이사르에게 그토록 허망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 소신 없는 모습을 꼽을 수 있다. 카이사르와의 전쟁 당시 폼페이우스는 로마를 내줘 카이사르의 강력한 예봉을 피한 다음, 여유를 가지고 군사를 소집하여 훈련한 뒤 수륙 양면으로 카이사르를 공략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전략은 탁월했다. 왜냐하면 카이사르에 비해 폼페이우스의 세력이 워낙 압도적이라서, 카이사르가 수도인 로마를 점령했다고 한들 보급 때문에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폼페이우스는 막강한 해상세력과 이탈리아반도와 아시아, 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의 세력이 있었고 이들을 유동적으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카이사르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갈리아 지역으로 역공을 가할 수도 있었다. 카이사르와 비슷한 사례가 바로 일본 전국시대의 아케치 미츠히데다. 전국 시대에 아케치 미츠히데는 반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이고 수도인 교토를 점령하였지만, 이는 결국 3일 천하로 끝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카이사르 역시 이런 결점을 가졌기에 장기전으로 흐르면 흐를수록, 카이사르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정부와 원로원이 지지를 하고 있기에 명분상으로도 카이사르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귀족들과 평민들 역시 폼페이우스를 더 지지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카이사르로부터 수도 로마를 빨리 탈환하라고 폼페이우스를 부추겼다. 이에 폼페이우스는 냉정한 자신의 판단을 버리고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준비되지 않는 군대를 이끌고 카이사르의 정예병과 싸움을 개시했다. 애초에 카이사르는 육군이 우세했고, 폼페이우스는 육군보다 우월한 해군을 운용할 수 있는데, 이런 해상세력을 이용하지 않고 준비가 되지 않는 육군으로만 전투를 감행했다. 이 부분도 결국 카이사르에게 유리했으며, 결국 이런 결과로 폼페이우스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즉 종합해보면 폼페이우스는 성공 이후 스스로를 자만하였다. 그랬기에 카이사르를 똑바로 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으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전쟁에 임했다가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카이사르보다 유리했지만, 그 유리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다. 세 개의 대륙을 정벌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임페라토르(로마의 승전 장군을 지칭) 지만 이렇듯 자만감에 사로잡혀 단 한 번의 패전 끝에 이룩한 공을 모두 잃은 셈이다. 이렇듯 사람은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스스로를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5권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리더의 무게'에 대해서다. 리더의 행동은 사소한 하나라도 대중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를 지도하는 통수권자들이 사용하는 옷이나 물품은 일반 시민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소한 행동을 통하여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5권에 나온 인물들의 행적도 그랬다. 그들의 행동은 많은 팔로워들을 뒤흔들었다. 아게실라오스와 폼페이우스는 모두 뛰어난 공적을 이룬 인물들이다. 그들의 인생 전반기는 매우 황금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개인적 자질로 시민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뛰어난 업적을 통하여, 각각 그리스와 로마의 패권을 더 넓혔다. 그러나 이런 위업들도 리더의 자만과 변덕으로 인해 흐려지게 됐다. 민중들과 지지자들은 변절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빨리 인지했다.

아게실라오스는 테베의 반역으로 곤욕을 치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지역에서 막강한 패권을 구축했고, 그랬기에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맹주였다. 그런 스파르타에게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다. 아게실라오스는 이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가 내세웠던 신념을 져버리고, 동맹국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는 테베와의 전쟁에 너무도 집착했다. 설상가상으로 테베에 연달아 패배했다. 그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테베에 있어서도 좀 더 공정하게 관용적으로 대했더라면 테베의 반란은 쉽게 종식됐을지도 모른다. 폼페이우스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위대한 위업을 이뤄냈지만 결국 자만하는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했다. 리더의 행동은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이 말은 리더가 한 번 실수를 행한다면 그 피해 역시 막심하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리더는 행동하기에 앞서 신중해야 하고 매사에 스스로를 돌아봐야만 한다.

펠로피다스와 마르켈루스는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운 위인들이다. 물론 펠로피다스는 조국 테베의 독립을 가져왔고, 테베를 그리스의 패권국으로 만든 위인이었지만, 말년에 사소한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목숨을 잃었다. 마르켈루스도 한니발을 괴롭힌 장군으로, 한니발이 로마 본토에서 가장 두려워한 인물이었다. 그는 한니발에 대한 증오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영웅이고 나라를 드높인 영웅들이지만 말로가 좋지 않다. 그들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을진 모르겠지만, 만약 죽지 않고 살아서 나라에 보답했다면 조국에 더 큰 영광을 가져왔지 않았을까? 이렇듯 리더의 행동은 너무 가벼워서도 안되고 너무 무거워서도 안된다. 너무 집착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방관해서도 안된다. 적정한 방향을 걸어가되 늘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해야 하며, 모든 부분에 있어서 중용을 견지해야 한다. 참 어렵다. 그러니 리더는 아무나 해서도 안 되고 아무나 욕심내서도 안 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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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신 - 1인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 대도서관이 들려주는 억대 연봉 유튜버 이야기
나동현(대도서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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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은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회와 생활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이런 오늘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4차 산업'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맞춰 새롭게 변화하는 산업 구조를 뜻한다. 변화에 의하여 기존에 익숙했던 산업은 붕괴할 것이고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직종이 새롭게 생길 것이다. 이미 변화는 진행 중이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유튜브로 대표할 수 있는 '1인 미디어'다.

  불과 전 세대만 하더라도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하곤 했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보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각자의 취미에 맞는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굳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TV를 볼 필요가 없다. 가족 구성원들과 기호 채널을 두고 불필요하게 리모컨 전쟁을 할 필요도 없으며, 개인 방송을 통해 내 취향에 부합하는 것들을 시청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사회는 핵가족화되어가고, 핵가족이 진행될수록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은 더욱 존중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구조에 맞춰 발 빠르게 태어난 것이 바로 유튜브를 대표하는 '1인 미디어' 직종이다.

  과거에는 개인 방송이 흔하지 않았고,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다르다.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 예를 들어보면 게임을 비롯하여, 먹방, 뷰티 등등의 BJ들을 팔로워 하며 방송을 본다. 지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지대넓얕'과 같은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지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시작했다.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세대도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유튜브로 검색하여 듣곤 한다. 이런 '1인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소소한 취미에 불과했고, 그저 덕후들의 전유물이었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잘만 활용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개인방송과 유튜버들이 다루는 영역도 끝이 없다. 대세인 먹방과 음악, 뷰티, 게임은 이젠 식상한 소재로 전락했으며, 학문과 지식, 미술, 예술 등등의 고상한 분야에서부터 정말 극단적인 마니아들의 영역까지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너도나도 '1인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가진 인문학 지식을 말랑하게 해서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하는 방송을 진행해보라는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1인 미디어'와 유튜브에 대해서 남몰래 공부도 했었다. 이 책도 그런 공부의 과정에서 만났다. 책의 저자인 대도서관은 새롭게 태어났고,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1인 미디어의 선두주자이자 1인 미디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익숙하지 않는 분야를 배울 때에는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그 분야에서 정통한 사람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대도서관이 왜 '1인 미디어'로 성공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다소 자극적이고 산만한 표지와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매우 진중하고 솔직했다. 처음에 나는 표지를 보고 그저 얕은 기술적인 팁에 집중한 책이겠구나, 유튜브에 대한 가벼운 실용 지식에 집중한 책이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은 굳이 장르를 따져보자면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내용적인 부분은 유튜브와 '1인 미디어'에 대한 팁도 팁이지만 그런 부분보다,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책의 문체는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평이했다. 특별함이 없는 평이한 문장이지만 가식이 없으며 진솔하고 솔직했다. 읽으며 느낀 점은 대도서관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생각보다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다. 흔히 유튜브나 '1인 미디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의 저자만큼은 운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기본에 충실했고, 매우 성실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산업이 대세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1인 미디어' BJ들의 모습은 그 분야에만 정통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그의 관심사는 매우 폭넓었다. 그리고 그런 관심사를 배우는 것에도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저자의 모습은 유튜버나 '1인 미디어'를 꿈꾸는 사람에게 분명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유튜브나 '1인 미디어'를 떠나 급변하는 시대에 현명하게 살아가는 인생 선배, 멘토로 삼기에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끝으로 이미 '1인 미디어' 영역은 경쟁이 과열된 레드오션이며, 그렇기에 후발주자는 선발주자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저자인 대도서관도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1인 미디어'의 선두주자였다는 점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평 서두에 말했듯 4차 산업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즉 오늘날 대세이고 유행하고 있는 미디어 영역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렇기에 후발주자들은 기존에 유행하고 있는 유튜브나 SNS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미래에 진화하게 될 '1인 미디어'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싸이월드가 영원할 수 없듯, 오늘날 대세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1인 미디어'를 꿈꾸고, '1인 미디어'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대세에 집중함과 동시에 미래의 모습도 발 빠르게 예측하여서 선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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