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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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이 지나고 책이 배송됐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거기다 이번에 다루는 주제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장르라서 더더욱 기대가 컸다. 배송되자마자 마치 금방 배달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치킨의 닭다리를 뜯는 기분으로 따끈한 새 책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신메뉴 치킨은 쫄깃했고 맛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듯 유시민은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하고 있는데, 특히 역사 분야를 좋아했다. 그가 쓴 역사 관련 책만 하더라도 이번 책을 포함하여 4권이나 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젊은 시절 유시민이 썼던 세계사인데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는 굳이 따지자면 유시민만의 역사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인 《나의 한국현대사》는 유시민의 시각으로 해석한 한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신간 《역사의 역사》는 역사 고전을 유시민의 시각으로 정리한 역사 르포르타주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독자는 이번 신간이 과거에 출간한 책 (아마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를 꼽는 듯하다.)을 개정증보한 책일 것이라고 의견을 남겼지만, 두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물론 중복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두 책이 지향하는 방향과 내용은 전혀 달랐다. 하나는 역사이론을 다루고 있고, 하나는 역사 고전을 탐구하고 있으니. 


2. 표지 논란

 예판 구매를 했을 때, 놀란 것이 바로 표지였다. 처음에 나는 아직 표지가 정해지지 않아서, 출판사 측에서 임시로 올려놓은 이미지겠거니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다. 가끔 책이 언제 배송되나 서점 사이트들을 둘러보니 몇몇 인터넷 서점과 커뮤니티에서 표지를 두고 부정적인 의견을 많이 내더라. 나도 그랬다. '에이 설마, 요즘같이 리커버 북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인데, 그만큼 표지가 중요한 시대인데 이대로 표지를 낼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이렇게 표지를 내고 리커버 북을 판매하려는 상술인가?'라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책을 주문했는지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무렵, 택배 배송이 됐고 신나서 봉지를 뜯자 정말로 예판 구매에서 봤던 그 표지가 덩그러니 있었다.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표지가 어색하진 않았다. 물론 이는 내 기준이지만. 와이프는 책의 표지를 보자 '표지 되게 예쁘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표지임에는 틀림없다.

 계속 보다 보니 나도 이질적인 표지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권의 역사책이 펴져 있는 콘셉트는 이해하겠지만 앞면 책의 타이틀 '역사와 역사'를 노란 글씨로 심플하게 쓴 것은 너무 간소하게 표현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제목이면 좀 더 포인트를 줘도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이 강렬하기 때문에 타이틀은 비교적 간소화하여 표현한 것 같다만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표지보다, 표지 재질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돌베개에서 나오는 유시민 작가의 책표지 재질은 손상되기 쉬운 재질을 사용하여서, 조금만 책을 들고 다니거나 읽다 보면, 쉽게 마모되고 스크래치도 많이 남는다. 이는 《나의 한국현대사》와 《국가는 무엇인가》도 비슷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깔끔하게 보관하는 편인데, 앞서 열거한 돌베개의 유시민 책들은 깔끔하게 보관하려고 해도 재질 때문에 깔끔할 수가 없다. 아무리 깔끔하게 읽으려고 해도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마모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으니 굉장히 아쉽다. 그렇다고 결벽 떠는 수험생이나 중고딩처럼 책에다가 비닐 커버를 씌울 수도 없고.


3. 전문 지식소매상과 함께 떠나는 역사 패키지여행

 논란이 많은 표지를 넘기고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어나갔다. 책은 인류사에 있어 위대한 역사 고전을 다루고 있었고, 역사 고전을 유시민이라는 안내자가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었다. 저자는 시작에 앞서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단어들의 뜻을 명료하게 밝힌 뒤, 역사 고전 여행을 시작했다. 어떤 것을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이 사용할 주요 용어들을 정의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학술적인 글에서는 필수적이다. 물론 이 책은 학술적 성격이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대중서라 하더라도 용어 정의는 확실하게 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중언하고 부언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쓸데없이 책의 부피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생각 외로 실망스러웠다. 너무나도 내용이 평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휴일 집중하고 다시 읽으니 초독 때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의 글은 명료하고 깔끔했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이는 이전 글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책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신간은 잘 정리된 교과서와 같았다. 이렇다 보니 신간은 전작에 비해 강렬하고 날선 문장력은 비교적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문장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 이는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 고전을 탐구한 글이므로, 날카롭고 공격적인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편안하고 차분한 문장으로 독자와 함께 역사 고전을 알아가고 탐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서 같다는 말의 장단점은 바로 '평이함'이다. 단점으로 바라볼 때에는 특출난 것이 없다는 뜻이 되지만 장점으로 바라볼 때는 안정감이 있고, 표준적인 모범을 가진다는 뜻도 된다.

  유시민은 신간을 두고 역사 고전 패키지여행이라고 칭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식소매상이라 할 수 있는 저자가 주도하여 떠나는 패키지여행이니 얼마나 설레겠는가. 나도 그랬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역사 고전을 80% 이상 완독하였기에, 그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서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했다. 여행을 갈 때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누구와 가는지, 언제 가는지에 어떻게 가는지에 따라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여행러들에게 패키지여행은 독처럼 여겨지지만, 때로는 패키지여행이 유용할 수도 있다. 패키지여행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여행 도중 쓸데없이 쇼핑을 권한다거나, 일정을 맘대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전적으로 현지 가이드의 재량에 달려있다. 즉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현지 가이드가 개념 충만하다면 그 패키지여행은 오히려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어본 바, 유시민은 괜찮은 가이드다. 역사 고전을 편파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역사서가 가지는 장단점을 나름 심도 있게 분석했다. 물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지만, 전반적인 책의 어조는 저자의 생각과 느낌을 강요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이라고 말하듯, 책을 읽고 결론을 내리는 것을 최종적으로 독자에게 남긴다. 이런 그의 필법은 독선적인 느낌을 주기보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런 문장의 안정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과거에 유시민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날선 필법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에 탈고한 그의 글은 안정감은 없었지만 매우 집요하고 날카로우면서 날이 선 문장이 많았다. 그의 글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글의 번뜩이는 날카로움에 매료됐었다. 세월이 흘러, 정치에서 단맛 쓴맛을 다 맛본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식소매상으로 그는 돌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유인의 글은 날 선 청년의 글과는 전혀 달랐다. 자유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매우 이질적이라 적응되지 않았었는데, 계속해서 접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자유인의 글이 예전의 스타일보다 더 편하고 좋았다. 예전 그의 글에는 없었던 안정감이 느껴졌고, 나 역시도 그의 안정감 있고 여유 있는 글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평이한 문장 속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나를 고요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주제를 논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4. 전문역사가 vs 지식소매상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유시민이 박학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사에 대해 전문성은 떨어지지 않느냐. 열거된 고전을 설명하려면 그 분야에 전공한 전문역사가가 해설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정통한 전문가가 안내하는 여행은 더 깊은 지식을 습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 학습의 통념을 언급해보자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문학을 배울 때 전문가에게 배우는 것을 일반적인 관례로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인문학이 과연 전문가의 통찰과 주류의 해석으로만 설명되는 학문인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공자의 철학을 배울 때에는 그 분야에 전공한 사람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읽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서구의 최초의 철학으로 여겨지는 소크라테스는 고상하고 전문적인 지식인층의 가르침을 수용하기보다, 포럼 즉 광장에서 떠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시비를 털며 '거리의 철학'을 실천했다. 소크라테스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철학을 '굳이' 전문가들에게서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내 생각으로는 아마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사고로 자신의 철학을 생각하라고 권장했을 것 같다. 물론 선현들의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고, 이러한 연구가 쌓이는 것이 지적 사회로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우리나라 인문학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폄하할 의도도 없다. 다만 철학이나 고전의 탐구가 전적으로 전문가들의 연구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인문학 텍스트를 읽다 보면 때론 전문가의 견해와 상반되는 시각으로 독해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런 아마추어적 견해가 학문 해석의 다양성에 불을 놓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비전공자이지만 박식한 지식소매상인 유시민의 생각도 이러한 예에 속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있어서의 전문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다. 전문가의 해석과 유시민의 해석은 나의 주관을 보조하는 보조배터리이지 이것이 메인이 되면 안 된다. 물론 책에서 다루는 역사 고전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다면, 잠시나마 유시민이나 전문가의 해석을 빌려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종착지에 가서는 텍스트를 스스로 판단하고 독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는 역사나 고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텍스트 읽기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한 이유는 유시민의 글과 필법이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본 역사 고전에 대한 시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관점으로 독해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색다른 생각으로 텍스트를 바라봤을까? 그런 기대감을 나에게 심어준 저자였기에, 나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책을 구매했다. 아마 이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세 부류가 아닐까. 첫 번째로 그냥 유시민이기에. 두 번째로 역사 고전을 읽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서 친절한 가이드로 선택한 경우. 세 번째로 내가 읽었던 책을 유시민은 어떻게 독해했을까 확인하는 경우.  


5. 역사에 대하여

  그의 가이드를 따라 익숙한 역사 고전을 훑고 난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자면 '각 시대의 역사는 나름의 공과가 존재하고, 완벽한 역사는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류 역사에 기라성 같은 고전들을 마주하는데, 그토록 위대한 역사서도 나름의 장단점이 반드시 있었다. '일어난 사건들'이 주관적인 인간의 관념으로 환원하여 기록한 것이 바로 역사다. 주관의 개입이 필수적이기에 역사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인문학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다르게 명확한 해답이 없다. 해답이 없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인간의 주관적 개입을 제외하고서라도 오류가 생길 부분은 많다. 시대적인 한계와, 그 시대를 지배하는 관념과 종교적 시각도 역사 기록에 있어서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 누군가는 이런 오류투성이의 역사를 굳이 읽을 필요가 없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판단한 내 최종 대답은 "그렇다."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괜히 역사 고전이 살아남았겠는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고전의 내용은 여전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엇이 담겨있다. 또한 내용을 넘어, 왜 그런 오류의 역사서가 탄생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도 탐구하다 보면 배울 점이 많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오류투성이고 빗나갔다 하더라도, 그가 왜 오류투성이의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는지 알다 보면 오늘날 문제 되는 갑질 횡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틀렸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바르지 못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틀리든 옳든 개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값진 것이다. 이러한 값진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에 역사는 읽을 가치가 있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서사의 힘'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책은 이런 값진 교훈이 가득한 역사 고전들을 독자들이 먹기 좋게 잘게 씹어서 안내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느끼려면 이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에 언급된 고전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만으로도 서사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서사의 필하모니를 더욱 생동감 있게 느끼려면 요약, 해설본으로는 한계가 있다. 패키지여행이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유여행의 깊이를 따라갈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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