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조선이라는 콘텐츠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조선사를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사 ~ 중세까지는 설렁설렁 공부해도 괜찮지만, 조선부터는 수업에 집중하고 절대 졸지 말아야 한다.' 수능 시험문제나 모의고사 시험문제를 살펴보면, 조선사의 비중이 다른 왕조보다 높은 편이다. 많이 나올 때에는 전체 시험의 40%가 조선사의 문제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의 70%는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 교양서나 도서의 배경도 조선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왜 신라나 고구려, 백제, 가야, 고려가 아닌 조선이 역사 대중 콘텐츠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일까? 왜 다른 시대보다 조선 시대가 시험 범위로 많이 나오고 전공하는 사람도 많은 것일까?

해답은 전해오는 유물들이 다른 왕조보다 훨씬 풍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유적이나 유물은 다른 왕조에 비해 훨씬 정교하게 내려온다. 한양의 5대 법궁을 비롯하여, 조선왕릉 등등은 비교적 온전하게 내려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을 다룬 기록도 다른 시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풍부하다. 이런 조선의 풍부한 기록 문헌 중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방대한 역사 거작 덕분에 우리는 당시의 조선시대를 디테일하고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엄청 방대한 저작이며,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완독하기란 매우 어려운 책이다. 조선에 대한 생동감 있는 정보를 담은 책이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완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선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도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역사 교양 분야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일반인에게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여 만든 책이 다수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등등이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을 메인 테마로 내세운 역사 교양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의 분량으로 압축시킨 이 책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성공 이후 저자는 《고려왕조실록》, 《고구려왕조실록》, 《백제왕조실록》, 《신라왕조실록》 등등의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의 후속작을 썼지만 《조선왕조실록》만큼 인기를 얻진 못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특징은 바로 만화라는 점이다. 만화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의 정치 분야를 집중적으로 표현했는데, 저자의 적극적인 해석이 매우 신선했다는 평이 있었다. 20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전집이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역사교사들이 추천하는 조선사 교양만화로 꼽히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조선왕조실록》 교양서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다. 대세 스타 강사라고 할 수 있는 설민석은 《조선왕조실록》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해설했는데, 너무 기본적이고, 쉬운 내용이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책이었다. 물론 나의 이런 아쉬움과는 다르게,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을 테마로 한 도서가 이토록 넘치는데도, 최근 《조선왕조실록》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운 시리즈 도서가 또 발간됐다. 재야 역사학자로 이름난 이덕일이 저술한 《조선왕조실록》 전 10권 시리즈다. 만화 시리즈물로 《조선왕조실록》이 나온 경우는 있었지만 텍스트 시리즈물로 《조선왕조실록》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텍스트 중심의 《조선왕조실록》은 한 권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총 10권 분량의 장편으로 기획됐다. 그리고 최근 《조선왕조실록 1 태조》와 《조선왕조실록 2 정종 태종》편이 발간됐다.


2. 태조 - 뚝심의 양면성

1권의 주인공은 태조다. 책의 뒷날개를 살펴보니, 한 권에 3명의 군주를 평균적으로 다루는 것 같은데 1권은 태조 한 사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책은 태조에 집중하고 있지만 태조 이전의 시대, 고려 말기의 혼탁한 배경에 대해서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공민왕의 개혁정치의 좌절, 그리고 권문세족의 갑질, 토지 제도의 문란,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 등등 망하기 전 고려 말기에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태조의 성품은 매우 겸손하고 차분하다. 전형적인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에 있어서 신중하게 행동했고,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정도전을 스승으로 예우했으며, 몰락하는 고려의 충신들에게도 최대한 머리를 굽혀 예우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태조였지만, 뚝심을 발휘할 때에는 누구보다 강경하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개혁 세력의 집중, 고려왕의 택군(擇君), 그리고 나라의 건국, 수도 이전, 명나라와의 일전 불사, 군권 장악, 막내 세자 책봉 등등은 태조의 뚝심 있는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태조는 자신이 전면적으로 나서 모든 일을 관장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있을 시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전문가를 밀어주며 전문가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런 태조의 리더십은 《삼국지연의》의 유비와 비슷하다. 나관중의 소설에서 유비는 제갈량이라는 전문가에 국가 정책을 일임하고 따르는 수동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태조의 모습도 이와 흡사하다. 토지 전문가인 조준에게 토지 개혁을 맡기고, 행정 전문가인 정도전에게 나라의 시스템과 행정을 전적으로 일임했다. 군왕인 태조의 역할은 이런 전문가들이 힘 있는 공신들로부터 방해받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것이었다. 이런 태조의 수동적 리더십은 아들 태종의 적극적인 리더십과는 무척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태조가 무조건적으로 수동적인 모습만을 보이진 않았다. 수도 이전과 세자 책봉, 그리고 명나라와의 전쟁 불사 등등은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태조의 적극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성품이 온화한 사람일수록 화가 나면 더 무섭다고 하듯, 태조 역시도 마찬가지다.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이지만 한 번 밀어붙일 때에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강단이 있었다. 태조의 뚝심이 긍정적으로 구현된 것은 대표적으로 한양 천도다. 자신의 충복이라 할 수 있는 정도전과 조준까지도 수도 이전을 반대했는데, 태조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하고 우직하게 한양 천도를 밀어붙였다.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인 태종이라도 모든 신료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과연 이렇게 뚝심 있게 수도 이전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아마 태종이라도 이런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도저 같은 태조의 뚝심은 치명적인 결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태자 책봉이다. 한양 천도를 신속하게 감행하고 군권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태조는 스스로의 힘을 과도하게 자만했다. 이러한 태조의 자만심은 무리한 태자 책봉으로 이어졌다. 창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런 공적이 없는 풋내기 막내를 태자로 세운 것이다. 이런 자만감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태조는 결국 아들 이방원에 의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런 태조의 몰락은 아까 비유했던 《삼국지연의》의 유비와 흡사하다. 소설에서 유비는 관우의 죽음에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제갈량을 비롯한 수많은 신료들이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권을 정벌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무리한 고집으로 감행된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유비는 백제성에서 비명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만약 태조와 유비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신중함과 경청의 마음을 견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태조를 무너트린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방원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절제하지 못했던 태조의 자만심과 그 자만심을 밀어붙인 뚝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태조는 뚝심 덕분에 조선을 건국했지만, 뚝심 덕분에 권력을 잃기도 했다.  


3. 저자에 대하여

이덕일은 논란이 많은 사학자다. 주류 사학에서는 그를 두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문헌을 오독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덕일은 주류 사학은 노론 - 친일의 시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들이야말로 무비판적인 왜곡을 그대로 수용한다며 날을 세워 반목한다. 그래서 이덕일은 한편으로는 굉장한 비판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굉장한 호평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이덕일의 가장 큰 공적은 바로 세조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전작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에서 저자는 세조와 그에 편에 섰던 공신들이 반정의 승리로 얻었던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시하며 날 선 비판을 하였는데 굉장히 공감하며 읽었다. 그 외에도 사도세자와 송시열, 그리고 윤휴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비판적인 견해에는 공감이 갔지만, 너무 비약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자료 해석을 최대한 자주적인 관점으로 하고 있는데, 가령 태조 이성계가 중원의 황제를 꿈꿨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과연 이성계가 황제를 꿈꿨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태조 이성계가 북벌을 감행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주원장의 갑질 때문이었다. 애초에 조선의 건국 콘셉트는 사대주의였고, 이성계 역시 이런 태도에 적극적이었다. 나라 이름을 명나라에 묻기도 하며, 자발적으로 명에 세력권에 적극적으로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노력한 태조인데 명나라의 주원장은 이런 태조의 러브콜에 갑질로 응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조는 홧김에 북쪽 대륙을 정벌하려고 하였으며, 정도전 역시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북벌로 뚫으려고 노력했다. 즉 태조와 정도전이 북벌을 한 목적은 정권의 안정과 권력 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서였지, 중원 대륙을 호령하는 황제를 꿈꾼 것과는 거리가 있다. 설사 칭제를 언급했다 하더라도, 이는 명분을 위한 정치적 수사일 다름이지 현실적 목표는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조선 중기 효종과 송시열이 말로만 북벌을 하겠다며 과장 액션을 취하던 것과 비슷하다. 요동 반도를 점령하는 것과 칭제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저자는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해석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여말선초의 시대를 잘 정리한 역사서인 것 같다.

  나는 작년부터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의 원전 번역본을 차근차근 읽어가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역대 군왕들 중 태종과 같은 인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를 깊이 알아보는 과정에서 《태종실록》을 천천히 완독하고 있는 중이다. 태종을 알기 위해서는 《태종실록》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태조와, 그의 형인 정종, 그리고 그의 아들인 세종까지 살펴야만 한다. 그러나 읽으려는 《조선왕조실록》의 범위를 태조와 정종, 세종까지 넓히면 분량이 너무 방대하기에, 《태종실록》은 모두 읽되 태조와 정종, 세종의 행적은 《조선왕조실록》을 잘 정리한 개론서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번에 기획된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또한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의 정리를 떠나서, 여말선초 격동의 인물들을 이덕일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그의 관점도 궁금했다. 다음 권은 정종과 태종을 다룬다. 태종 이방원. 태조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조선의 실질적인 하드웨어를 완성한 인물. 그런 그를 저자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소화 - 삼시 세끼, 무병장수 식사법
류은경 지음 / 다산라이프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온갖 건강정보가 넘쳐난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한다. 몇몇 사람들은 좋다는 음식을 넘어 영양제 알약을 필수적으로 챙겨 먹는다. 건강에 좋다는 것들을 덕지덕지 먹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은 항상 만원이다. 몸에 좋다는 것을 그렇게 섭취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픈 사람들은 많은 것일까. 왜 병원은 항상 만원이고, 과거에는 흔하지 않던 아토피, 고지혈증, 비만 등등이 만연하는 것일까. 가족 중 한 분 때문에 나는 서울대병원 암센터를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충격을 받았었다. 전국의 암 환자가 모두 몰렸는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를 받는데 엄청 기다려야 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주말 평일을 가리지 않고 매번 올 때마다 이렇게 기다려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 건강에 좋다는 약이 만연하는 세상인데,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 것일까. 정말 우리가 의심 없이 믿고 있는 건강 정보는 우리를 '진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지식인 것일까? 

암병동을 다녀온 뒤, 암이라는 질환이 남의 질환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암에 관한 책을 몇 권 구매해서 정독했다. 그리고 몇 가지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현재 암의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바로 현대의학의 치료법이다. 두 번째는 바로 대체의학의 치료법이다. 여기서 권위를 가지는 것은 현대의학의 치료법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이 지향하는 치료법은 몸에 들어있는 암세포를 죽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지, 근본적으로 암의 발병을 막는 것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즉 원인은 놔두고, 그저 일어난 결과만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대의학의 입장이다. 대체의학의 포인트는 암의 원인에 집중한다. 환자들의 식습관, 그리고 생활 활동 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원인을 파악한 뒤, 암의 원인을 해소하여서 궁극적으로 몸의 자가 치유력을 통해 암을 극복하도록 유도한다.

왜 현대의학은 병의 원인보다, 약물을 통한 세포 죽이기에만 집중하는 것일까? 바로 제약회사와의 경제적 결속 때문이다. 제약회사는 의료계에 막대한 자금을 로비한다. 그리고 의료계는 그런 자금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제약회사가 만든 신약을 사용하여, 제약회사의 수익에 공조한다. 이렇게 돌고 돌면서, 의료계와 제약회사는 서로 공생하며 이익을 챙긴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오늘날 현대의학의 암 치료 핵심은 약물이며, 이런 약물을 중심으로 한 치료는 암의 원인을 잡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약회사와 현대 의료계의 관계를 보면 군수업자와 미국이 떠오른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배경에는 무기산업에 있다. 군수업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하였고, 미국은 넘쳐나는 군수무기를 소비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전쟁이 터지자 군수업자들은 무기 판매로 인해 전 세계의 전선으로부터 떼돈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미국 역시도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암뿐만이 아니다. 현대의학이 병에 접근하는 시각은 원인보단 결과에 중점을 둔다. 물론 현대의학 덕분에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었고, 과거에는 치료하지 못했던 질병을 알아내고 치료할 수 있게 됐지만,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병원을 의지하고 병원에 기댄다. 굳이 약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가 치유법으로도 회복될 수 있는 작은 질환에도 우리는 병원을 찾아 인위적인 약을 섭취하며 안도한다. 내가 건강 서적을 뒤지면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사실은 우리 몸은 생각 외로 자가 치유력이 강하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 몸은 알아서 이상이 생긴 부분을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건강한 사람은 가벼운 질병을 앓더라도 굳이 약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회복이 가능하다. 모든 생물은 어느 정도의 자가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이런 자가 회복력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먹는 것'이다. 자가 회복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건강하다는 뜻인데, 건강의 가장 필수 조건은 바로 먹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다이어트와 건강을 체크할 때 가장 핵심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 바로 식생활이다. 과거 헬스를 같이 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몸은 정직하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실하게 운동하면 근육이 생긴다.'라고, 마찬가지다. 그래 몸은 정직하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럼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몸의 반응은 무엇일까. 바로 소화 불량이다.

《완전 소화》라는 제목답게 저자는 건강을 위한 해결책을 원활한 소화에서 찾고 있다. 원활한 소화는 식생활 개선과 직결된다. 저자는 육식과 가공식품, 유제품 등등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밥상을 권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채식주의 건강서와 비슷한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과일이다. 저자는 제철 과일을 아침 대용으로 섭취할 것을 강조하고, 식전 과일 섭취를 강하게 주장한다. 책의 중요 챕터는 소화기관인 위와 간, 그리고 장을 다루고 있는데, 공통되는 핵심 내용은 바로 과일과 녹색 채소 중심의 식사다. 원활한 소화를 위해서는 채식 위주의 밥상이 이상적이며, 이런 식단은 궁극적으로 건강과 장수에 직결된다고 한다. 고기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은 생선이나 채식에도 있으니 굳이 소화가 어려운 고기를 통해 섭취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과거 인체를 다룬 다큐 프로에서도,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의 이빨을 잘 관찰하면, 그 생물이 주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육식동물은 육류를 잘 뜯을 수 있도록 이빨이 날카롭게 발달한 데 비해, 채식을 주로 하는 동물들은 이빨이 날카롭지 않고 뭉특하다고 한다. 인류의 이빨도 잘 살펴보면 육류를 먹는 것보다 채식을 하는데 최적화된 이빨이다. 

책을 읽으며 육식의 위험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는 인위적인 사육과 도살로 얻어지는 고기다. 고기의 맛과 양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 과도한 사료와 항생제를 섭취한 가축의 살이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고기의 실체였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먹거리를 누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먹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적인 가공과 약품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맛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과거보다 훨씬 건강에 나쁜 고기를 먹고 있다.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의 풍요로움이 마냥 인간에게 유토피아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것을 책에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2주에 한 번 정도로 고기 섭취를 제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한 기름지고 마블링이 좋은 고기를 선호하기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약품과 가공이 없이 자란 고기를 섭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를 너무 좋아하기에, 끊을 순 없겠지만 줄여서 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고기를 섭취한다면 그나마 육식의 피해를 최소화하지 않을는지.

책을 읽으며 온갖 영양제나 비타민제, 그리고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건강 약품들을 끊고, 균형 있는 식습관을 통해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소화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가장 자연적인 것을 따라오진 못 한다. 인간은 과학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건강 보조식품이나 약품 따위를 장기적으로 복용하기보다, 자연에서 건강하게 자란 채식으로 양분을 섭취하는 쪽이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책을 덮으면서 그럼 채식은 유전자 변형이나, 항생제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의문이 든다. 책에서 언급하듯, 고기에는 항생제와 약품이 들어 있어서 해롭다고 하는데, 이는 채소와 과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과일이나 채소를 재배할 때, 썩지 않기 위해, 벌레들을 퇴치하기 위해 농가에서는 필요 이상의 과도한 농약을 뿌리고, 여러 약품을 뿌린다고 하던데, 이렇게 자란 채소와 과일은 우리 몸에 아무 문제가 없을까. 책에서는 영양 때문에 과일 껍질까지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농약과 약품이 스며있는 과일 껍질을 먹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채식이 육식보다 좋은 것은 알겠는데, 문제는 채식 역시도 각종 유전자 변형, 항생제, 약품 등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럼 결국 건강하게 재배한 유기농 채식으로 식단을 대체해야 하는 것일까. 먹거리는 넘쳐나는 시대인데 정작 인간에게 좋은 먹거리는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가히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할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전라도와 경상도, 백제와 신라

내가 백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대 중반, 전라도를 여행하면서 택시기사가 잠깐 언급한 말 때문이었다. 택시기사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고질적 대립관계는 삼국시대 전쟁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경상도는 신라, 전라도는 백제의 권역으로 오늘날의 동서 갈등의 뿌리는 이 시대의 두 나라의 전쟁으로부터 비롯한다고 하였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역사적 지식을 구수하게 담아내는 택시기사의 언변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못 했고, '백제에 대해 알아보겠다.'라는 짧은 대답으로 민감한 주제를 피할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친 뒤, 나는 백제에 관한 자료를 찾았고, 백제를 다룬 책을 읽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소략했고, 확실하게 연구된 부분도 드물었다. 파면 팔 수록 백제라는 나라는 신비한 나라였다. 근초고왕 이래로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장악했고 주도적으로 움직였던 나라, 일본의 고대, 아스카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나라, 해양 진출 활동이 매우 적극적이었던 나라,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매우 융성했던 나라... 등등 백제는 매력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그러나 이런 백제는 일반인들에게 신라나 고구려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신라는 어쨌든 삼국을 통일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주목을 받고 있었고, 고구려는 북방 대륙을 경영했던 맹주였기에 한반도의 자존을 상징했다. 이 둘에 비해서 백제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인다. 전해지는 유물도 파편적이며, 삼국 중 가장 먼저 몰락한 왕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백제를 고구려나 신라만큼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 백제가 유독 나의 관심을 끈 부분은 뛰어난 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백제의 유물은 파편적으로 전해지지만 그 파편 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부분을 짐작할 수 있다. 파편만으로 전해지는 백제의 유물들은 대체로 뛰어나고 정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매력이 있기에, 특히 문화를 사랑하는 지식인들은 백제를 매우 애정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뛰어난 문화적 식견을 가지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오는 백제의 수준 높은 잔상은 무지한 나에게조차 깊은 영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2. 백제에 대한 첫인상

오늘날 백제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백제의 역사를 읽는 것, 두 번째 백제의 유물을 탐구하는 것, 세 번째 융성했던 백제의 터에서 백제의 숨결을 느끼는 것. 이 중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첫 번째다. 나는 시중에서 백제를 다룬 역사서 두 권을 통해 백제를 배웠는데 《살아있는 백제사 - 이도학》와 《백제왕조실록 - 박영규》다. 《살아있는 백제사》는 백제 연구를 전문적으로 했던 사학자의 역작인데, 백제의 전반적인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다만 논란이 많은 고대사이다 보니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견이 있지만 그런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한 권으로 백제의 역사를 정리하기에는 가장 좋은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백제왕조실록》은 스테디셀러 작가가 정리한 백제 역사인데, 앞의 책보다 대중성은 뛰어나지만, 책의 내용이 국수주의적인 관점으로 너무 쏠려있기에 《살아있는 백제사》보다 좋은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두 책을 통해 백제의 역사를 살펴봤으며, 백제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공주'와 '부여'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대표 저작인 《무소유》에서 스님은 경주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어디나 옛 도읍지에 가면 느끼게 되듯이 경주도 어딘지 텅 빈 것 같은, 뭔가 덜 채워져 아쉬운, 그래서 배 떠난 나루와 같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을 끈다.'

나도 그랬다. 경주의 모습은 으리으리한 왕궁이 살아있는 한양 서울과 비교했을 때 더욱 적막한 느낌이었다. 그런 나에게 공주와 부여, 오늘날 전해오는 백제의 민낯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경주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경주가 적막했다면, 부여와 공주는 황량했다. 적막이라는 단어는 운치 있는 서정감을 더할 수 있는 나름의 여지가 있다면, 황량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지배적이다. 마찬가지로 공주와 부여에 위치한 국립박물관과 경주의 국립박물관의 인상도 달랐다. 경주 박물관은 그나마 화려한 인상이라면, 공주와 부여의 파편들은 어딘가 아쉬움이 가득했다. 백제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떠났던 나에게 다가왔던 백제의 첫인상은 이렇듯 충격 그 자체였다. 


3. 고고학과 역사학의 상관관계

파편만 가득한 백제의 잔상에서 나는 어떻게 백제를 느껴야 하는가. 어떻게 백제의 모습을 복원해야 하는가.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와주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도록이나 큐레이터는 백제의 파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한 뒤 일반인에게 축척된 지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둘 다 한계가 있다. 도록은 가격이 굉장히 비싼 편이라 쉽게 구매할 수 없고, 큐레이터의 설명 역시도 관심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여행자 입장에서 하루 종일 박물관에 머물며 여유 있게 유물을 관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나저러나 유물을 통해 백제를 느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럼 유물을 통하지 않고 백제를 느끼면 될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사료가 적은 고대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고고학과 깊은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해 내려오는 텍스트가 제한적이기에 우리는 내려오는 파편을 통해 당대의 사회를  재구성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역사학의 발전 역시도 고고학의 발견과 연구의 토대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전해지는 사료가 적은 한국 고대사 연구는 고고학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백제 탐구의 근본적인 핵심은 전해오는 유물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고고학적 연구 성과나, 고고학의 흐름은 일반 대중에게 흔히 공개되지 않는다. 왜냐면 풀어내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백제에 대한 고고학적 동향이나 연구 방법 등등은 웬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야 알기 어렵다. 백제에 대한 무지, 백제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근본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백제에 대한 고고학을 다룬 대중서가 나왔다. 책은 국립박물관 큐레이터가 애정으로 쓴 백제 이야기였으며, 책이 다루는 백제의 모습은 역사적인 관점보다, 고고학적 관점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나와 같이 백제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백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고고학적 지식을 갈구하는 일반인에게 적합한 교양 인문서였다.


4. 백제 덕후의 애정 어린 백제 이야기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평범한 관점으로 보자면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조금 더 들어가보면 그의 관심은 오로지 백제만을 향하고 있기에 굉장히 독특하다. 오늘날의 용어로 저자를 표현하자면, 백제 덕후라고 할 만하다. 저자는 박물관 큐레이터란 직업을 가지면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백제에 대한 고문학적 연구를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백제를 대상으로 한 논문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다. 자처해서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부여로 내려갔으며 지금은 익산 미륵사지에 전시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이야기의 중심은 늘 백제였다.

인생에 있어서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매우 축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몰두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평생을 걸쳐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았으며 거기에 인생을 몰두했다. 그래서 열정 어린 저자의 삶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런 저자였기에 그의 책을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열정'이다. 그의 글, 그의 치밀한 연구, 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감정 하나하나에는 백제에 대한 열정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용을 떠나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감정이 들었다. 마치 하나의 대상에 몰두하여 빚어낸 장인의 작품을 마주하는 느낌.

책을 통해 전반적인 백제 연구의 동향을 읽을 수 있었으며, 백제에 대한 일본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 탐구 여행 때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들의 사연과 연구동향을 읽을 때마다, 부여로 떠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억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가장 애정 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는 금동대향로 발굴 에피소드를 읽으며, 박물관에서 느꼈던 향로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2 아스카 나라》를 읽고, 백제와 관련된 아스카 지역을 언젠가 떠나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일본과 백제에 관련된 내용을 읽으니 가 본적 없는 아스카 지역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졌다. 저자의 열정 어린 이야기는 그렇게 내 안에 백제에 대한 애정을 자극했고, 향수를 자극했다. 글의 문장은 평이했지만, 다루고 있는 분야가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평이한 문장이더라도 일반인이 읽기에는 부담으로 느낄 수 있을듯싶다.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부류는 세 부류다. 첫 번째, 백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 두 번째 박물관이나 고고학에 뜻을 두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 세 번째 백제 문화권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 특히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저자의 열정 어린 태도를 보면서 많은 부분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의 깊이와 감동은 지식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조금 더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관광 도시는 도시마다 내세우고 있는 테마가 있는데 부여와 공주 일대는 바로 백제 문화가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도시를 탐방하는데, 배경 지식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간다면 여행을 좀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백제 문화권 여행을 앞두고, 사전 예비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이 책은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지식 생산자와 지식 소매상, 그리고 지식 도매상

요즘 독서 시장에 유행하는 인문학 작가들은 지식 소매상들이다. 유시민, 채사장 등등의 지식 소매상은 전문성을 지닌 지식들을 일반인이 먹기 좋게 가공하고 압축하여 선보인다. 이런 지식 소매상들과 비교해서 저자는 전문성이 뚜렷하다. 저자는 대중에게 글을 쓰기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글을 쓴 적이 많다. 그래서 저자는 지식 소매상이 아니라 지식 생산자에 가깝다. 그런 전문가가 자신의 생산물을 가공하여 대중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저자는 책 말미에 자신을 비롯한 큐레이터들을 이렇게 칭한다. 지식 생산자와 지식 소매상의 성격을 둘 다 가진다고. 다른 큐레이터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저자의 경우는 지식 소매상이 아닌 지식 도매상에 가깝지 않을까. 소매는 2차, 3차적인 유통을 거쳐서 판매하는 것인데, 도매는 유통과정을 최소화하여 판매하는 것이니까, 저자가 쓴 책 내용의 대부분은 저자의 활동에 기인한 것이기에 소매라는 단어를 붙이기보단 도매라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번 책을 계기로 기회가 된다면 백제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나 활동을 정리하여 독자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나는 저자의 기약 없는 약속이 기다려진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저자의 열정 어린 백제 연구를 백제를 사랑하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 굉장히 응원하고 싶다.

이런 좋은 양서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전라도의 이름 모를 택시기사 아저씨 덕분이다. 그 아저씨를 다시 보게 된다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 번째. 오늘날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서 갈등은 백제와 신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현대 정치인들의 편가르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물론 삼국 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갈등이 깊었지만, 그러한 갈등은 통일 이후로 희미해졌고, 고려, 조선시대에 와서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에서 특별히 감정적인 갈등이 있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오늘날 동서 갈등의 원인은 현대의 정치적 시각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를 알기 위해 아저씨가 언급한 백제를 나름 성실하게 공부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두 번째는 감사하다는 인사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백제에 대한 애정은 어찌 되었던 아저씨로부터 비롯한 것이기에, 이런 멋진 신비의 왕국을 소개해 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푹푹 찌는 날씨가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백제의 숨결이 있는, 공주와 부여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 아마 첫 방문과는 다르게, 이제는 황량한 느낌을 받지 않을 것만 같다. 파편밖에 안 남은 흔적의 도시지만, 현실의 황량함을 넘어서 온전한 백제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마구 샘솟는다. 이 근거 없는 믿음이 확실한지 아닌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올 가을 즈음에 다시 한 번 백제의 고도를 방문하려고 한다. 아마 그때 나의 한 쪽 손에는 이 책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6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6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 많고 탈많은 재위 6년의 《태종실록》을 읽으며, 나는 새삼 약소국의 입장을 생각했다. 이해에 태종은 명나라 때문에 체면을 심하게 구긴다.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카리스마가 뛰어난 태종이더라도, 명나라에 비춰보면 그저 변방 약소국의 '패왕'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명을 상대로 국방을 넓히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여진 세력을 쉽게 명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명의 사신이 갑질하는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물론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함과 동시에, 뒤로는 명의 사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노력했다. 감정적인 그였으나, 역시 냉혹한 국제관계 앞에서는 이성적인 두뇌로 외교에 임한 것이다. 이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정도전의 말대로 태조 시기에 북벌을 했으면 어땠을까.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하나는 신생국가 조선이 과연 전쟁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또 하나는 과연 조선이 요동으로 침략하면, 명에서 싸우던 연왕 세력과 건문제가 연합할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설사 요동을 잠시 차지하더라도, 훗날 중국을 통일한 연왕 주치에 의해 역풍을 맞이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태종은 젊은 시절 명을 방문한 경험이 있으며, 그때 명의 민심과 명의 문화 수준, 국방을 세심하게 관찰했을 것이다. 거기다 훗날의 영락제인 연왕 주치도 직접 만나보지 않았던가. 아마 태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에 두고 '명과 싸웠다간 도리어 조선이 손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과 영락제 주치는 매우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차이라면 태종은 조선의 왕이었고, 영락제는 명의 황제였다. 애초에 물려받은 기반 자체가 달랐으며, 영락제는 명나라의 초절정기를 열었던 전쟁 군주였다. 그랬기에 태종은 자신의 성격을 죽여야만 했다. 만약 태종이 조선 중기의 군주였다면 어땠을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국방이 강했을 때에는 늘 중원이 분열되었다. 만약 태종이 명청 교체기의 분열된 중원 시대에 조선의 군주였다면 분명 조선을 한층 더 팽창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실록 기록을 살펴보면 태종은 그럴 공산이 다분한 군주다. 그러나 이방원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황제가 하나로 통일한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는 중원에 만족하지 않았던 군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과의 싸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냉혹한 국제 현실 속에서, 그는 조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약소국의 자존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시대의 냉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읽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강대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괴테는 권력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지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쉽고, 통치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어렵다.' 이를 내 식으로 풀이해보자면 그렇다. 지배라는 것은 그저 권력을 통해 타인을 부리는 것만을 뜻한다. 통치라는 것은 자신의 권력에 책임을 지고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지배는 쉽다. 그저 타인을 힘으로 억눌러 내 뜻대로 부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통치는 어렵다. 타인을 이끌며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태종 이방원은 얼핏 보면 전자에 가깝다. 그의 권력은 그저 지배만이 전부인 것 같다. 물론 그의 권력에는 지배에 대한 속성도 내재한다. 근대 이전의 권력은 태생적으로 '지배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권력이 지배만을 지향한 것은 아니다. 그의 권력은 지배와 더불어 통치의 속성도 내재하고 있었다. 그는 숱한 정쟁 속에서도 민본을 잊지 않았다. 신하들과 싸우는 도중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대목이 많았으며, 일탈이라 할 수 있는 사냥을 하면서도,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한 권력을 가졌고, 충분히 백성들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였지만, 늘 백성을 무서워하고 조심히 생각했다.

 현실적인 정쟁에도 능하면서,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정쟁에 능숙한 지도자이기에 매우 부담스럽겠지만,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민생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지도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읽었던 태종은 이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군주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한우의 태종실록 : 재위 5년 -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이한우의 태종실록 5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르 봉의 《군중심리》는 심리학 책이지만,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 책을 히틀러가 애독하여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겠는가. 르 봉은 이 책에서 지도자는 군중을 이끌 수 있는 신념과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두 태종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태종은 정치적으로 민생안정이라는 목표를 왕권 강화로 이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신념은 왕권 강화였으며, 그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엄을 세웠던 군주였다. 또한 르 봉은 지도자란 논리와 이성적인 측면보다 과장과 감정적인 측면으로 군중을 사로잡는다 했는데, 태종 역시 마찬가지다. 태종은 노회한 다수의 기득권 신료들을 제압하는데 있어, 이성과 논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성적인 측면으로 신료들을 설득하고 굴복시켰지만, 때로는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나, 우격다짐과 같은, 감정적인 측면에 호소하여 신료들을 움직였었다. 흔히 책상물림이나 서생들은 지도자는 늘 지성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것은 그 시대 유학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태종은 그러한 이성의 영역과 감성의 영역을 섞어서 신료들을 다뤄왔다. 사실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것에는 이성적인 측면보다 감성적인 측면으로 호소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이를 강조했고, 태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재위 5년에서 돋보이는 태종의 모습은 바로 이성과 감성의 변덕이다. 여러 상소문 중 형벌이나 범죄, 그리고 토지제도와, 군사에 대한 글을 볼 때 그의 두뇌는 한없이 이성적으로 바뀌었다. 복잡한 탄핵 사건을 보면 문서 그대로를 믿기보다, 자신이 풀어놓은 정보통과 비교하여 치밀하게 분석한 뒤, 결과가 관련 기관의 내용과 상이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정확한 보고를 요망한다. 더불어 국경과 관련된 일에도 그는 이성을 유지한다. 여진을 두고 소리 없이 명과 싸울 때,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른 국제정세를 이성적으로 분석하며, 명과의 외교전에 임한다. 우리는 늘 조선시대를 사대의 나라, 명에게 찍 소리도 못 낸 조공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시대는 몰라도, 태종의 시대에는 여진의 통치권을 두고 명과 소리 없는 외교전을 팽팽하게 펼쳤다. 물론 이 결과는 물자와 영토가 빵빵하고 국제적으로도 위엄이 있는 명이 이겼지만, 어쨌든 조선은 쉽게 여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태종이라는 군주는 명을 무조건적으로 받들지도 않았고, 나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명과 맞선 셈이다. 이러한 태종의 북진정책을 이어받아, 세종 대에는 여진을 개척해 국토를 넓혀 현재의 국경을 유지하게 됐다. 아마 태종 시대에 명의 황제가 영락제가 아니었다면, 태종 대에 여진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국경을 북쪽으로 더 넓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태종은 국가 중요 사안과 국방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그럼 그가 감성적으로 변할 때는 언제였나.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2월이다. 태종은 궁 밖으로 나갈 때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사냥을 했던 군주다. 사냥을 접할 때에는 거의 탐닉하다시피 집중했는데, 이전할 한양 수도를 둘러본다는 핑계로 2월 한 달을 사냥에 매진한다. 그의 사냥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의 감성은 여가를 즐길 때만 보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민생을 걱정할 때에도 나타나는데, 가뭄으로 시달리는 백성들을 보며 그는 한없이 감정적으로 변했다. 오죽했으면 한 계절이 끝나도록 조회를 보지 않아서 대간들이 소를 올릴 정도였으니, 얼마나 예민하게 신경 썼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가뭄도 심하고 덮친 격으로 재해까지 심했던 한 해였다. 그래서 태종은 지방에 구휼을 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다 했다. 그뿐 아니라, 매년 여름만 되면 옥에 있는 죄수들이 더위에 피해를 입을까봐 석방하거나 신경을 쓰라는 내용이 많은데, 이런 부분으로 미뤄봐도 그가 아주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감정적인 모습은 종친들과 공신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을 과도하게 감싸주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모습에서 완벽해 보이는 그도 결점이 있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태종은 이성과 감성, 냉정과 열정을 야누스처럼 넘나들며, 통치했던 군주였다. 차가울 때에는 그 누구보다 차가웠으며, 뜨거울 때에는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이성과 감성에 충실했던 태종은, 어떨 때 이성적이어야 하는지, 어떨 때 감성적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간혹 어리석은 지도자를 보면 이성적이어야 할 때 감성적으로 대응하고, 감성에 호소해야 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자의 결점인데, 태종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 역시도 이성과 감성을 잘 못 적용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컨트롤하였다. 그래서 태종은 일을 잘 아는 군주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