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기는 사마의 더봄 평전 시리즈 1
친타오 지음, 박소정 옮김 / 더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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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에게 큰 임팩트를 줬던 사극은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으뜸을 꼽으라면 '사마의 - 최후의 승자'다. 이 드라마는 전작인 '사마의 - 미완의 책사'의 후속작으로, 나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한 수 아래로 취급하던 중국 사극을 새롭게 돌아보게 만들었다. 물론 중국 사극 역시도 명작이 많지만, 고질적인 단점으로 국내와 일본 사극보다 허구와 과장이 심하며, 무협지를 연상하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세트장의 부실함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드라마 사마의 역시 허구와 과장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을 내릴만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종래의 전쟁 위주의 삼국지 드라마들과는 달리,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흔히 정치 사극이라고 하면 따분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어려운 정치 사극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깊이를 더하여 제작하였는데,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도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작용했다. 만약 이 드라마를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드라마를 정주행으로 달릴 것을 살짝 추천해본다.

리뷰하려는 책 《결국 이기는 사마의》는 어찌 보면 드라마 '사마의'의 열풍 덕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를 다룬 저서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인물은 단연 제갈량이다. 제갈량의 저서, 제갈량의 평전, 제갈량을 모티브로 삼은 자기 계발서 등등 삼국지 도서 시장에서 제갈량을 다룬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다. 그런 제갈량을 최근 들어서 바짝 뒤쫓고 있는 인물이 조조다. 제갈량이 전통적으로 인기를 끌어모았다면, 오늘날 현대인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조조라고 할 수 있다. 조조의 실리주의적 정책과 과단성 등등은 오늘날 현대인의 처세에도 많은 귀감을 주고 있으며,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현대인과 비슷한 사고를 지닌 인물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조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조조 역시 오늘날 삼국지 도서 시장에서 소위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리해보자면 삼국지를 주제로 한 도서 시장은 그렇게 전통적인 제갈량, 그리고 현대의 조조가 주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보면 뜬금포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의의 정통 평전이 나왔다. 사실 사마의라는 인물은 삼국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크게 중요하게 인식되는 인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사마의는 제갈량을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에 가까웠다. 만고불변의 충신으로 추앙받던 제갈량의 라이벌이었기에, 그는 역사적으로 엄한 모함을 받았다. 사마의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간신, 왕위를 찬탈한 모반자 등등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데, 그의 라이벌인 제갈량과 매우 대조적인 이미지다. 이런 전통적인 시각은 오늘날 삼국지 도서 시장에도 은연중에 만연하고 있는데, 실리주의자인 조조를 새롭게 조망하는 움직임이 있다 하더라도, 사마의를 조망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후한 말, 그리고 삼국시대라는 난세를 실질적으로 종결지었던 사마의가 과연 제갈량보다 능력이 떨어진 것일까? 조조보다도 실리적인 측면이 떨어지는 인물인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 외에도 도서 시장에는 사마의를 조망한 책이 여럿 있었다. 그럼 여타의 다른 책보다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일까. 이 책은 온전히 사마의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는 '정통' 평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존에 있던 사마의를 다룬 책들은 자기 계발서 스타일의 책이 많았다.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온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라는 책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알기 쉽고,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그러나 단점을 꼽아보자면,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억지스러운 해석도 많은데, 처음에는 저자가 이끌어내는 교훈이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뻔하고 지루한 패턴이 반복이라 다소 지루하게 읽힌다. 그러나 《결국 이기는 사마의》의 경우, 그런 억지스러운 해석이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뻔한 결론과 통속적인 결론을 무리하게 이끌어내지 않는다. 사료에 나온 문헌들을 최대한 꼼꼼하게 해석하여 설명해준 뒤, 자신만의 생각을 간결하게 군데 군데에서 선보이고 있었다. 정통 평전과 자기 계발서 스타일의 책은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지만, 만약 사마의의 역사적인 행적을 고찰한다면, 평전 쪽이 훨씬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 외에도 평전 스타일로 사마의를 다룬 책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런 책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깊이다. 조금만 검색하거나 관심을 가져도 나올 법한 스토리를 엮어서 시중에 내놓은 사마의 평전이 수두룩하다. 그렇기에 삼국지에 대해서 빠삭하게 아는 마니아의 입장에서는 종래의 사마의 평전에서 깊이 있는 시각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 책은 종래의 다른 사마의 평전들과는 다르게 사마의의 일생을 '깊이 있게' 조망하고 있다. 저자의 필법은 조곤조곤하며 차분함을 더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저자의 설명은 삼국지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사마의를 깊이 있게 조망하고 있으며, 저가가 분석하는 해설 역시도 대체적으로 공감을 샀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지만, 능력만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이나 역사적 위인을 살펴보면 능력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처세가 뛰어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적으로 사마의는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중 처세력으로 봤을 때 단연 탑 급이다. 사마의가 싸워온 상대들은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다. 조조, 제갈량, 손권 등등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굵직한 인물들이 사마의와 대립했다. 그러나 그런 영웅들과의 싸움에서 사마의는 결국 이기고 최종 승리를 차지한다. 그렇기에 그의 일대기를 읽다 보면 정치적 처세와 식견 등등에서 귀감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 많았다. 인간은 좋던 싫던 무리를 짓고 살아야 한다. 무리가 이뤄지면 필연적으로 권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이런 권력에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대한 부분은 삶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두툼한 사마의의 인생을 읽으며 나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고 읽었고, 이 부분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끝으로 이 책의 저자는 무조건적으로 사마의를 옹호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사마의는 개인적인 처세가 매우 뛰어났지만 권력을 얻은 뒤 그 권력을 시대 흐름에 맞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마의는 경쟁자인 제갈량과 조조에 비해 한수 아래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은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한실 부흥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사마의의 통치에는 그런 철학이 결여됐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에 걸맞은 사명이 있기 마련인데, 유능한 지도자는 획득한 권력을 그러한 시대정신에 부합하여 시대를 개선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마의는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그 권력을 '바람직하게 사용'하는 방법까지는 몰랐던 것이다.

마치 이는 일본 전국시대의 노부나가,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차이점과도 흡사한데,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자신이 통치하는 국가 철학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통치를 살펴보면 그런 통치 철학이 두 영걸에 비해 뚜렷하지 않다. 이에야스가 내세운 구호는 그저 '도쿠가와 가문의 통치 체체'였고, 어쩌면 그런 단순함 덕분에 현실에서 최종 승리를 가져왔을지도 모르겠다. 정리해보면 역사의 최종 승리자라 할 수 있는 사마의와 이에야스의 승리 배경은 어쩌면 '단순함'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이상이 있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는 특정한 사상이나 생각은 필연적으로 호불호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랬기에 노부나가는 부하에게 살해당했고, 히데요시 역시 과도한 이상에 사로잡혀 조선을 정벌하여 패망을 자초했다. 제갈량은 한족 부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촉한을 이끌었고, 그것에 매달려 자신을 희생했다. 그러나 사마의나 이에야스의 정치는 이런 라이벌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상이 있어도 그 이상이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망상에 가깝다.(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이 대표적인 예) 사마의나 도쿠가와에 통치에서 보듯, 이상이 결여된 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바람직한 지도자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이상을 가지고 현실을 개선해나가는 인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런 인물은 역사적으로 흔하지 않다. 바른 지도자, 명군이 드문 이유는 어쩌면 이런 복잡한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쪼록 두툼한 평전을 통해 얻은 것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올해 읽었던 역사 평전 중에 가장 뛰어난 책이 아닐까 싶다. 2018년 드라마도,  역사 도서도, 나에게 있어 가장 최고는 '사마의'니, 올 한 해는 나에게 있어 '사마의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삼국지를 좋아하거나 사마의를 깊이 있게 조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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