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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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3》의 내용은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1,2,3차 중 가장 치열했던 2차 포에니 전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책은 로마를 괴롭혔던 문제적 인물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등장과 알프스 진군으로 시작하여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굴복시키는 부분에서 끝맺고 있다. 지금까지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어왔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과장하자면 로마사 = 전쟁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포에니 전쟁은 지금까지 로마가 성장하기 위해 치러왔던 전쟁들과는 급이 달랐다. 포에니 전쟁은 양국의 국력이 가장 융성한 시기에 일어났으며, 어느 한쪽의 우열도 쉽게 논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치렀던 전쟁이 소규모 전투였다면 포에니 전쟁은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마와 카르타고 두 강대국은 번영을 위해 지중해와 스페인 영토를 자국의 영향력에 두려고 노력했기에 세력권 충돌 이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3번의 큰 전쟁이 벌어졌다. 그랬기에 양국은 서로에 대한 원한이 깊었으며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입장에서도 카르타고의 입장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전쟁이었다. 카르타고는 1차 포에니 전쟁 패전 이후 이를 갈며 국력 신장에 힘을 쏟았고, 한니발이라는 뛰어난 군사 천재를 앞장세워 철천지원수 로마를 이기기 위해 치밀한 복수를 준비했다. 로마 역시 전쟁 초기 카르타고 군의 카운터펀치에 제대로 휘둘려 국토가 유린되지만, 파비우스의 지연전술, 마르켈루스의 시리쿠사 점령 및 소규모 게릴라 공격, 스키피오의 스페인 세력권 탈환과 카르타고 급습 등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끝내 승리를 쟁취한다. 1,2,3차 포에니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 바로 2차 포에니 전쟁인데 《리비우스 로마사 3》 번역본을 통해 독자는 로마와 카르타고의 긴박한 상황,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영웅적인 업적, 전쟁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처 방법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포에니 전쟁의 주역인 두 나라인 로마와 카르타고는 군대 운용 방식이 무척 상이했다. 로마의 경우 군대는 기본적으로 자국민이 주력군을 담당하고, 식민지나 동맹 도시에서 파병된 군사들을 보조 인원으로 활용하였다. 반면 카르타고의 경우 주력군을 용병으로 구성했기에 로마에 비해 소속감이 떨어졌다. 용병으로 구성된 카르타고 군대였기에 군의 규율을 다지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카르타고의 지휘봉을 잡은 장군은 카리스마가 뛰어난 용장 한니발이었다. 한니발은 엄격함이라는 채찍과 물질적 풍요라는 당근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소속감이 결여된 용병 군대를 적절하게 컨트롤했다. 그 결과 포에니 전쟁 초반에 카르타고군은 승전을 거듭했고 로마군은 연이은 패배를 겪으며 실의에 빠졌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로마의 다양한 인재 활용이 부각되었는데, 카르타고의 경우 한니발 원톱 체제로 전쟁을 수행했지만, 로마의 경우 지연전술을 주로 사용하며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던 파비우스, 지속적으로 게릴라 부대를 활용하여 한니발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로마의 검' 마르켈루스, 패기 있는 기상과 비범한 전략을 구사했던 스키피오 등 시기와 상황에 맞게 필요한 인재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했다. 그렇기에 하나의 뛰어난 장군에 의존했던 카르타고는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던 로마를 이길 수 없었으며, 한니발의 패색이 짙어지자 승리의 여신은 필연적으로 로마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리비우스를 비롯하여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포에니 전쟁의 승리 원인을 분석할 때 가장 먼저 손꼽는 것이 '로마의 정의감'이다. 그러나 이는 '강대국의 시야에서 바라본 자문화 중심주의'가 아닐까? 역사는 기본적으로 승자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사관의 기록도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로마식 정의관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중화주의'였다. 비슷한 시기 중국의 한나라에서도 자신만의 문화를 중심으로, 으뜸으로 여기며 다른 이민족들은 오랑캐로 여기며 배척했는데 로마식 정의관도 이와 매우 흡사했다. 따지고 보면 로마와 카르타고, 그리고 한나라와 흉노는 세력 확장과 그에 따른 이득을 두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탐욕과 욕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이 시기에 강대국들은 자국을 발전시키겠다는 욕망의 충돌 사이에서 이기는 것이 곧 정의고 패배하게 되면 몰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에 카르타고와 흉노는 패배하여 멸망했고, 로마와 한나라는 '정의'로운 문명국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럼 로마의 승리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바로 다양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였고, 두 번째는 바로 자국민 중심의 군대를 구성하였기에 카르타고 군에 비해 소속감과 의무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바로 한니발의 군대가 탐욕과 욕망, 풍요에 길들여져 기강이 빠진 이유인데, 로마의 세력권 중 환락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카푸아에서 겨울을 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카푸아는 로마의 목전인 캄파니아 지방의 맹주였으며, 로마의 오랜 우방으로 활동하던 도시였다. 그러나 한니발의 위세에 로마를 배신하고 카르타고 정복군에게 온갖 환락과 쾌락을 선사했다. 탐욕스러운 용병이 주축이었던 카르타고군은 카푸아의 환락에 전의를 상실하였으며, 그 결과 날카로운 기세를 잃어버리고, 전투의지 역시 무뎌졌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주축이 되는 인물은 한니발과 스키피오다. 두 장군은 당대 최고의 전술가였으며, 나라의 국운을 책임지고 싸운 용장들이었다. 또한 이 두 인물은 해설에서도 언급했듯 가족들 역시 포에니 전쟁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한니발의 아버지는 1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 군대를 지휘했던 하밀카르 바르카였고, 스키피오의 아버지도 1,2차 포에니 전쟁 때에 로마군을 이끌고 활약했던 장군이다. 한니발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로마에 깊은 복수와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키피오 역시 아버지에게 조국을 위해 카르타고를 무찌르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두 인물 모두 전투에 대한 투지, 그리고 적군에 대한 깊은 적대심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장군의 스타일은 무척 달랐는데, 한니발은 카리스마를 내뿜는 외향적 장군인 반면 스키피오는 온화하고 인덕을 갖춘 덕장에 가까웠다. 또한 한니발은 자신의 욕망과 용병들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스키피오는 부도덕한 행위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여기까지 보면 리비우스가 한니발보다 스키피오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리비우스는 스키피오의 온화한 성품 때문에 일어난 문제점도 꼬집고 넘어갔다. 한니발은 군사들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관리하여서 휘하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키피오 부대에서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스키피오의 도덕적이고 온화한 성품이 통솔에 있어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리비우스는 로마 사람이며 《리비우스 로마사》는 기본적으로 로마의 위대함을 부각하기 위해 쓰인 역사서다. 만약 리비우스가 로마의 치부를 감추려고 했다면, 스키피오에 단점을 숨기고 한니발을 더욱 악독하게 서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비우스는 한니발의 장점도 인정함과 동시에 스키피오의 단점들을 최대한 공정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객관적인 서술 덕분에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있어 리비우스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1~10권, 초반부는 온전하게 전해지는데 왜 그 뒤의 내용은 파편으로 전해지는 것일까. 10권 이후에 전해지는 내용은 21 ~ 45권이 전해지는데, 방대한 내용 중 왜 하필 21 ~ 45권만 전해지는 걸까?' 생각을 거듭한 결과 내 나름대로 추론을 해서 결론을 내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 ~ 10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 덕분인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을 바탕으로 하여 쓰인 책이기에, 이를 읽은 서구의 지식인들이 원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비우스 로마사》 1 ~ 10권을 소중하게 보관하지 않았을까.

 

그럼 21 ~ 45권은 왜 전해지는 것일까? 21권의 시작은 한니발의 등장인데, 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30권에 이르러 전쟁이 종결 나면서 2차 포에니 전쟁이 마무리되는데, 이 사이의 내용은 비교적 온전하게 내려져오고 있다. 왜 2차 포에니 전쟁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일까.

 

좁은 식견으로 이유를 판단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 시기의 내용은 무척 재미있다. 예로부터 역사서는 딱딱하고 지루한 서술이 많은데 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룬 리비우스의 글은 역사서가 아닌 전쟁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표현과 수사가 생동감 있다. 또한 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두 주인공 가문을 주축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거대한 메인 플롯과 더불어 다채로운 서브플롯들을 설정하고 있어 읽고 즐길 거리가 풍부했다.

 

두 번째는 2차 포에니 전쟁은 중요성이다. 앞서 서술했듯 로마에게도 카르타고에게도 2차 포에니 전쟁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 전쟁의 승패로 인하여 식민지 확장정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느냐, 국가의 멸망이냐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로마의 발전단계는 여러 시기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활발하게 진행한 것은 2차 포에니 전쟁 이후부터였다. 그랬기에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는 '로마 제국 탄생의 밑거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그리스 지역에서 간을 보며 신경을 거스르게 했던 마케도니아를 정벌하는데 그 과정을 담은 내용이 30 ~ 45권에 나와 있다. 그렇기에 전체 로마사의 비중에서 2차 포에니전쟁은 무척 중요했고 그랬기에 이 시기 기록이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역사적 패자인 한니발에 대해서 깊이 동정하는 것은 어쩌면 리비우스의 생동감 있는 필력 덕분일 것이다. 만약 《리비우스 로마사》의 2차 포에니 전쟁의 내용이 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니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을 다룬 문헌으로는 폴리비우스의 《역사》와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 정도인데, 폴리비우스의 책은 번역본도 없으며 서술도 무미건조하여 리비우스의 글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영웅전》의 경우 안타깝게도 2차 포에니전쟁의 중심인물인 스키피오를 서술한 부분이 없어졌다. 그런 점에서 한니발은 적국 출신이지만 2차 포에니 전쟁을 심도 있고 디테일하게 묘사한 리비우스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2차 포에니 전쟁을 가장 디테일하게 표현한 고전은 《리비우스 로마사》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번역본 기준으로 1000쪽에 육박한 거대 벽돌 분량이지만 내용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기에 독서에 빠진 날들이 무척 즐거웠다. 남은 번역본은 4권 로마와 지중해 세계인데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로마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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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세트 - 전4권 리비우스 로마사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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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새해, 인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만한 대작이 완간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뻤다. 그 주인공은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로,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기존에 출간된 1,2권을 포함하여 남은 3,4권을 동시에 발간하면서 총 4권의 세트 전질을 완성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로마의 역사서 중 가장 권위 있는 작품이자 고전으로 마키아벨리를 포함한 서구의 지식인, 명사들에게 필독서 또는 애독서로 손꼽는 책이다. 책은 150권으로 기획됐지만 저자인 리비우스는 141 ~ 142권을 쓰다가 사망했다는데, 완성되지 못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부분은 1~10권, 그리고 한니발과 스키피오 장군의 싸움을 다룬 21권 ~ 30권(국내 번역 단행본 3권 분량), 그리스 정복을 다룬 31 ~ 45권(국내 번역 단행본 4권 분량)이다.


1,2권을 읽어본 바, 리비우스는 역사가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작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문장과 수사가 아름답고 표현 역시 무척 세련됐다. 그는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역사서에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과 수사를 덧붙여 맛깔나는 표현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는데, 이런 점은 동양의 역사 아버지이자,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사마천의 필법과 비슷하다. 사마천의 《사기》 역시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작품과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문장을 자랑하여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의 탈을 쓴 문학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리비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두 저자는 각각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역사가로 손꼽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동양 문화 영향 덕분에 《사기》의 중요성은 널리 알려진 반면, 《리비우스 로마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서구의 《사기》'라고 할 수 있는 《리비우스 로마사》가 완역됐으니 이는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우리나라 인문학 수준을 한층 격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깊이 있게 탐독하여 재해석하고 정리하여 《로마사 논고》라는 책을 완성한다. 마키아벨리는 방대한 《리비우스 로마사》 중에서 초반 부분 즉 1권 ~ 10권까지의 내용에 집중했는데 주된 내용은 로마의 건국과 이탈리아 대륙 통일을 다루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건국 과정과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리비우스 로마사》를 토대로 하여 강대국들의 먹잇감이 되어 사분오열된 중세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 있는 리더와 정치체제를 희망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각각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에 담아냈다. 이렇듯 마키아벨리에게 《리비우스 로마사》는 지적인 영감을 선사했던 중요한 고전이었다.


이번에 완역된 번역본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자면 1권은 로마의 건국, 왕정의 폐지와 공화정의 수립을 다루고 있고 2권은 도시국가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새롭게 출간된 3권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1,2,3차 포에니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2차 포에니 전쟁을 조명하고 있다. 3권을 통하여 카르타고의 용장 한니발과 로마를 구원한 스키피오의 무용담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4권은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동쪽 그리스 지역을 정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체제로 들어선 로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서구문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그리스와 로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담은 역사 고전들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룬 유명한 고전으로는 그리스의 시작과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다루고 있는 책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다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리스 반도 전쟁 직후의 긴밀한 시기를 다룬 크세노폰의 《헬레니카》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대 서양 문명은 그리스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꽃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로마는 그리스의 정신, 뛰어난 철학과 자유를 추구한 제도를 이어받은 국가로 고대 서양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중 로마의 초창기이자 공화정 시기, 제국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담은 고전이 오늘 소개하는 《리비우스 로마사》다.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로 인하여 로마 제정으로 들어선 시기를 다룬 책은 타키투스의 《연대기》, 그리고 《역사》가 대표적인데, 수에토니우스의 《열두명의 카이사르》도 참고할 만하다. 로마 제정의 전성기에서 쇠망사를 다룬 고전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유명하다.

시간의 흐름으로 시대를 서술한 방식(편년체 - 앞에 설명한 고전들은 모두 편년체다)이 아닌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서(기전체)는 그리스와 로마 영웅을 서로 비교하여 우열을 논한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비교 영웅전》이 있다.

이렇듯 《리비우스 로마사》는 로마 역사의 초반부를 다루고 있는 고전이기에 무척 중요한 책으로 인식됐다. 《리비우스 로마사》가 완역되어서 우리는 리비우스의 수려한 문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기존에 번역된 서구의 유구한 역사 고전들과 비교 분석을 할 수 있게됐다.


2019년에 완역된 역사 고전 중에서 《리비우스 로마사》와 견줄 만한 책이라면 반고의 《한서》를 꼽을 수 있는데, 두 책 모두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번역이 되지 않았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중요성은 앞에서 누누이 언급했으니 생략하고, 《한서》는 사마천의 《사기》를 계승한 역사서로 동양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손꼽아온 역사책이다. 두 책은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제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리비우스 로마사》는 고대 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로마의 부흥기를 다루고 있으며, 《한서》는 고대 동양 문명을 대표하는 한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다. 두 책을 비교, 대조하여 읽으면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동질감과 이질감을 피부로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대작을 접하게 되니 기분이 설렌다. 1권과 2권은 읽어봤기에 연휴를 맞이하여 3권을 읽어나가고 있다. 3권과 4권 역시 자세하게 읽은 뒤 개별 리뷰 포스팅도 작성할 예정이다. 분량은 방대하지만 시간을 들여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므로 조바심을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읽어나갈 생각이다. 새해 좋은 양서와 함께 시작하게 되어서 기분이 매우 좋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분들, 그리고 로마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감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에서 《리비우스 로마사》의 전질 요약본(Periochae)도 단행본으로 번역하여 출간했으면 좋겠다. 앞에서 언급하다시피 《리비우스 로마사》는 14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저술됐지만 초반부만 전해지고 있는데 없어진 내용을 모두 요약한 글도 전해지고 있다. 번역본 4권 말미에 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지만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차라리 단행본 하나를 더하여 요약본까지 총 5권으로 세트를 구성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후에 요약본이 번역되여 출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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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제거하는 비책 - 위대한 역사를 만든 권력 투쟁의 기술
마수취안 지음, 정주은 외 옮김 / 보누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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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무척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이라. '굳이 정적을 제거하면서까지 나의 안위를 도모해야 할까?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끝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나는 한나라의 역사를 다룬 고전 《한서》를 완독하고 있는데, 한나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름난 명신이나 충신보단 간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단 한나라뿐일까? 인류사를 통틀어서 고려해볼 때, 좋은 위인보다는 악인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 이어진 이래, 지역과 문명을 막론하고 악을 적극적으로 권장한 케이스는 전무했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종교 안에 흐르는 관념은 보편적으로 선을 추구했다는 소리인데, 냉정하게 살펴볼 때 인류사가 과연 선하게 흘러갔는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사는 '악의 연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타락과 부패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도대체 그토록 선하고자 노력하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익을 탐내는 마음, 즉 탐욕이 주요한 원인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이권이 많은 곳에는 타락한 인간들이 들러붙어서 극단적인 이윤 추구를 위하여 추악한 행위들을 자행했다. 오늘날에도 여러 조직에서는 권모와 술수를 부리며 사내정치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선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 고결하고 아름다운 정신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선하게 바라본다고 해서 남도 나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태도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무조건 착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을 두고 멍청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럼 어떻게 처세를 하며 살아야 할까? 핵심은 착하게 살 건 나쁘게 살 건을 떠나, 나를 공격하려는 상대의 권모를 읽고 미리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인배들이 주로 사용하는 권모나 술책 등등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정적을 제거하는 비책》은 당나라를 살았던 내준신의 《나직경》을 골자로 하여 재해석한 책이다. 내준신은 측천무후 집권기에 총애 받던 권신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정적들과 선량한 충신들을 모함하여 권력을 유지했던 소인배였다. 그는 자신의 권모술수를 작은 책 한 권으로 만들어 정리했는데, 그 책이 바로 《나직경》이다. 당시 권모술수로 보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 측천무후인데 《나직경》을 읽고 '짐도 여기에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하니 이를 통하여 그 내용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책은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나직경》 원문을 재해석한 경구가 앞에 위치하고, 이에 따른 역사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나는 사례들의 80%는 알고 있어서 두꺼운 쪽수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독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살펴본 바, 《나직경》의 원문은 분량이 매우 적은 편인데, 본서는 《나직경》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재구성한 뒤 역사적 사례를 붙였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중국사에 대해서 지식이 없는 분들에게는 동양사와 권모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책을 통하여 《나직경》을 살펴본 바 그 내용은 무척 악랄했다. 날조, 기만, 사기, 횡령, 권모, 술수, 형벌 등등 조직생활에 있어 온갖 기술적인 모략들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내준신은 소인배 중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였다. 요즘의 표현으로 치자면 소위 '네임드 간신'이었던 셈이다. 그런 거물이 정리한 권모술수 비책인 만큼 깊이 있게 음미해 볼 만한 내용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예시나 사례 중심의 글을 무척 싫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권모술수를 가까이한다는 것을 두고 비천하고 비열하다며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중국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윤리고 둘째는 권모다. 선악으로 구분해보자면 백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윤리고, 흑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권모였다. 여기서 윤리를 담당했던 사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의 유가, 그리고 묵적의 묵가를 꼽을 수 있다. 권모를 상징하는 사상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병가, 외교학의 종횡가, 그리고 법가인데, 이 세 가지 사상은 도가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고대 이래로 중국을 다스렸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국경 밖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농경 민족인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확한 농작물인데 그들은 오랑캐라고 불리는 유목민들이 쳐들어와 물자를 약탈해가는 것을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중국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오랑캐를 이길 방법을 생각했고 최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면서 중원에는 다양한 권모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권모술수는 중원 국가의 발생 이래로 대대로 발전, 계승되어 왔던 사상이기에 그들의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중국을 꿰뚫어보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주로 구사했던 권모에 대해서 깊이 있게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내준신의 《나직경》 역시 중국 중세의 권모술수를 종합한 도서이기에 탐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권모의 필요성을 생각해보자. 상대가 나를 술수로 압박하는 데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술수를 부린 상대도 나쁘지만 이를 파악하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렇기에 각박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기 위해,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모술수를 배울 필요가 있다. 본서의 제목처럼 권모를 활용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것은 지나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지키는 칼로 사용할 순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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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깟디마 The Muqaddimah - 이슬람 역사와 문명에 대한 기록
이븐 칼둔 지음, 김정아 옮김 / 소명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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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놀랐다. 1200페이지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꺼울 줄은 몰랐으니까. 놀라움을 뒤로하고 책을 열어보니 여백과 같은 꼼수(?)도 없이 빽빽한 글로 채워져 있었다. 분량도 벅차고 보기만 해도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설레는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무깟디마》. 이슬람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역사서라고 칭송받는 책. 동양에 《사기》가 있고, 서양에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면 이슬람에는 《무깟디마》가 있다. 역사를 전공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이고, 역사를 떠나 세계의 위대한 문헌으로도 유명한 이 저서가 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슬람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문명의 주류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서양이다. 근대 식민지 시대, 서구 열강은 다른 대륙들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문명을 은연중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대다수 국가들은 좋던 싫던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서구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이슬람 문화는 서구문명의 근원을 이루는 가톨릭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대립했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양 문명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린 시절 나는 《무깟디마》의 편역본인 《역사서설》을 읽었다. 《역사서설》은 《무깟디마》를 축약하여 번역한 영역본을 한국어로 이중 번역한 책인데, 책에 담긴 이븐 칼둔의 논의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기에 나는 은연중에 완역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근 원전 완역본이 개정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고무됐다. 새롭게 완역된 책을 접하고 천천히 읽어보니, 이슬람은 역시 유구하며, 뛰어난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칼둔이 살았던 시대는 14세기로, 이 당시 우리나라는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였다. 내가 놀란 점은 14세기에 아랍인들이 인지하고 있었던 세계관이다. 칼둔은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적도와 위도를 중심으로 문명이 나눠진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기후가 사람의 행동을 규정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14세기를 기준으로 볼 때에는 굉장히 앞서있는 생각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 조선이나 중국의 역사가들은 왕조의 유지와 효율적인 통치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칼둔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법칙을 고찰하고자 노력하였기에, 생각의 폭이 훨씬 넓다고 볼 수 있겠다.


칼둔이 살았던 시기, 이슬람 문화권은 동양과 마찬가지로 군주정 국가가 많았다. 《무깟디마》 역시 문명에 본질이 왕조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나아가 동양의 사가들과 마찬가지로 군주의 바람직한 통치에 대해서도 밝혀놨는데, 핵심 개념이 바로 '아싸비아'다. 왕조를 건국하기 위해서는 특정 부족이 아싸비아를 가져야 한다. 아싸비아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면 연대의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단순한 연대의식을 넘어 사회를 주도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 등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아싸비아를 보는 순간, 나는 불현듯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비르투가 떠올랐다.


두 개념은 지도층의 역량과 리더십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무척 비슷하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혈통이나 혈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 개인의 자질과 역량에 집중하는 반면, 아싸비아는 군주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혈통, 가문, 그리고 가신들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비르투를 통하여 국민 개개인의 비르투 정신을 고취시켜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반면 이븐 칼둔은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세력이 아싸비아를 오로지 독점해야 하며 군주가 아싸비아를 상실하게 되면 가신이나 인척 등등의 아싸비아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왕조의 교체가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에는 여러 아싸비아가 존재할 수 있지만, 가장 강한 아싸비아를 가진 집단이 왕좌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아싸비아 이론은 왕조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의미하는 '순환론적 사관'으로 이어진다. 왕조의 순환론적 사관으로 살펴볼 때, 아싸비아는 동양의 천명사상과 흡사하다. 동양에서는 집단이 천명을 얻으면 나라를 개국할 수 있고, 천명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도 칼둔 역시 통치계급이 아싸비아를 잃게 되면 왕권을 빼앗긴다고 했으니, 두 개념은 무척이나 닮았다.


《무깟디마》를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료의 비판적인 시각을 주장한 것과 다르게 종교의 권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 문헌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문헌들을 두고 칼둔은 비판적인 시각보다 종교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소극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마 당시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는 절대적이었기에, 칼둔은 현실의 상황을 고려하여 종교에 대해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 같다. 이런 칼둔과는 다르게 마키아벨리의 역사관과 정치관은 무척 개방적이다. 마키아벨리는 당대에 주류 세력이었던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역사와 정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 종교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고 현실 정치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아무튼 무척 방대한 저작을 통하여 14세기 이슬람 문화와 사회 구조를 소상하게 알 수 있었는데, '세계 3대 문명'이라는 문구처럼 아랍과 이슬람 문화는 무척 뛰어났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이런 명저들이 하나둘씩 발간되어서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하루빨리 종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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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치요 - 세상을 다스리는 360가지 원칙
말레이시아 중화문화교육센터 엮음, 하영삼 외 옮김 / 도서출판3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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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책을 접했다. 그 책은 바로 《군서치요》인데, 중국의 제왕학 정치고전이다. 고전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를 꼽자면 첫 번째가 역사고 두 번째가 정치학이다. 동양의 정치고전들은 군주정에 기초하였기에 제왕적 리더십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개인적인 취향 덕에 국내에 출판된 메이저, 마이너 중국 정치고전을 대부분 섭렵하였는데 《군서치요》는 처음으로 접하는 책이라 굉장히 뜻깊었다. 이 책은 중국의 정관치지를 구현한 당 태종 이세민 시대에 만들어졌다. 태종은 어수선한 난세의 시기, 부친인 당 고조의 패권전쟁에 앞장서서 종군하였으며, 끝내 부왕과 형, 동생을 제압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무력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었지만 무력만으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치를 지향했다. 그런 일환에서 현신들에게 정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 것을 명하였고 그 결과 탄생한 책이 바로 《군서치요》다.


내용적으로 볼 때 《군서치요》는 기존 제왕학 텍스트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먼저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을 풀어낸 것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문헌들, 가령 《논어》, 《노자》, 《한비자》, 《사기》 등등과 같은 고전에서 통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구들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재구성하여 편집한 책이다. 《군서치요》에 인용된 책은 유가의 경전, 제자백가 철학서, 역사서, 그리고 그 외 정치학 고전 등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그렇기에 중국 고전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군주는 사무가 많았기에 치국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렇기에 현신들은 방대한 고전 속에서 왕에게 필요한 구절들을 엄선하여 《군서치요》를 완성한 것이다.


또 주목할 점으로는 다양한 사상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치사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는 유가의 왕도와 성악설을 바탕으로 하는 법가의 패도로 나뉜다. 역대 중국의 제왕들은 왕도와 패도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왕도, 즉 유가의 이론만을 신봉했다. 그렇기에 중국의 제왕학 고전들은 대체로 주류 사상인 유가 쪽으로 치우쳤다. 《군서치요》 역시 유가를 중심사상으로 설정하기에 기존 중국의 제왕학 이론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유가와 대조적인 법가와 도가 사상 텍스트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당나라 시대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가 꽃피운 점인데, 그렇기에 이 시대에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었다. 《군서치요》 역시 이런 개방적인 사회에서 제작됐기에 다채로운 사상의 고전들을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흔히 당 태종을 상징하는 제왕학서로 《정관정요》를 꼽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정관정요》는 당 태종의 행적을 기록한 역사책이고 《군서치요》는 신하들이 당 태종의 정치를 돕기 위해 편찬한 정치교본이다. 그렇기에 당 태종의 정치인 정관치지를 알기 위해서는 태종이 애독했다는 《군서치요》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두 책의 관계는 마치 법조문과 판례라고 볼 수 있는데 《군서치요》가 조문이라면 《정관정요》는 판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왜 《정관정요》가 유행하고 《군서치요》는 생소한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정관정요》는 고려 광종 이후 왕들의 정치 교과서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두 번째 《군서치요》의 원문은 세월을 거치면서 중국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마 한반도에는 《군서치요》를 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에서 《군서치요》가 사라지기 전, 일본의 학승이 《군서치요》 전질을 필사하여 일본에 보관했는데 이를 통해 천황가, 쇼군, 야심이 있는 다이묘들은 《군서치요》를 탐독하며 당 태종의 정관치지를 배우고자 노력했다. 에도 막부를 개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장서가로도 유명한데, 그 역시 《군서치요》를 통해 정치의 요체를 배웠다고 한다.


이번에 나온 《군서치요》는 원문 중 요긴한 구절 360개를 추려서 번역한 책이다. 덕분에 《군서치요》를 국내에서 접하게 되어 기쁘지만 완역이 아니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책의 원문은 65부 50권 50여만 자로 방대한 분량이라서 완역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단행본 출간을 계기로 완역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자들은 민주시대를 사는 오늘날, 왕조시대의 통치론을 탐독하는 것을 두고 시대착오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책을 직접 읽고 나면 우려가 기우였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동양 정치학은 타인을 다스리기 이전의 나를 돌아봐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치인 이전에 수기가 우선이다. 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예의와 도덕과 같은 정신문화가 사라지는 요즘,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군서치요》는 민주 시민의 내면을 돌아보는데 참고할 수 있는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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